용서와 사랑

김기훈의 우표와 시가 있는 아침

by Kimkihoon


도스토옙스키(Dostovskii) 이렇게 말했다.
죄를 지은 것은 미완성이기 때문이라고
벌은 완성 짓기 위함이 아니라
미완성임을 단지 각인시키는 거라고

사람의 죄는 벌로서 타협하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 상대를 정하고 만든 벌은
죄를 용서하는데 가장 먼 거리에 있다.
그 죄를 진 사람을 멀리 때어 놀뿐
우리 모두 그 거리를 가늠하지 못한다.
단지 멀리 있다고 안심할 뿐
가까워질까 봐 항상 두려워한다.

선과 악은 늘 공존한다.
선이 악을 악이라 말할 때
존재의 가치를 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물어본다.
인간이 항상 악을 선이라
생각한 적이 없는지
외면한 적이 없는지

여기 모든 거짓된 것을 믿는 자가 있다.
스스로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다고
힘으로 믿는 자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물을 수 없다.
외냐면 우리 스스로 외면하며
죄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냥 침묵한다.
광주에서 그렇게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갈 때에도 우리는 숨죽였다.

저기 어느 청년이 있다.
자기 분노에 휩싸여 다른 청년을 찌른
그 청년은 자신의 인생을 젊음을 포기했다.
스스로 알았을까? 자신의 죄를?
분노는 죄를 만들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것은 적막한 침묵뿐이다.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를 느끼지만
죄는 벌로 침묵할 뿐이다.

어느 여인이 있다.
매일 등장하는 언론의 자극적인 죄
지능적이고 악랄한 범죄이기에
얼굴이 드러난 그녀

그 이야기를 팔아먹는 인간
그러나 갑자기 생각이 났다.
예수님이 한 이야기
누가 너희 중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죄인이다.
사회는 죄를 벌로서 단죄하지만
인간은 죄를 두려워하고
용서하며 반성해야 한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벌이 아니기에 슬픈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돌고 도는 것이 윤회라고
번뇌와 집착 죄가 만든 허울이
벌 받는 지옥을 만들었다고
그 지옥불이 뜨겁다고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 피우지만
자애롭고 아름답다.

죄는 벌로서 묻지만
사람은 용서로 말한다.
우리 모두 책임이라고
더 낳을 것이 없다고
용서하고 사랑하자
그래야 존재한다.

2019년 6월 25일 도스토옙스키(Dostovskii)의
죄와 벌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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