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엔 여름이 좋고,
여름엔 겨울이 좋고.

겨울은 겨울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by 김유난


난 좀 이른 출근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면서 해가 길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출근하는 길이 밝아진 것을 체감한다. 출근길에 "아 이제 좀 따뜻해지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근데 문득, 요즘에 내가 "좀 따뜻해지면 더워지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더울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스쳐가듯이 하는 생각이지만, 점점 더 더위와 추위를 못 견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여름 가장 더울 때는 얼른 시원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겨울 가장 추울 때는 얼른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여름 중 가장 더운 기간, 겨울 중 가장 추운 기간은 빨리 지나가야 하는, 인생에 필요 없는 시기라고 생각하듯이..


어차피 여름과 겨울은 결국 오는데 말이다.


하지만, 여름은 여름대로 매력이 있고, 그 미칠 듯한 더위를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과정 자체가 내 인생이었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면 또 땀이 나있는 습함, 땀이 너무 나서 옷이 젖고 살에 닿을 때 그 찝찝함,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도 잡히지 않는 갈증, 매일 아침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 번거로움까지도 내 인생의 소중한 과정 중 하나였다.


한여름에 먹는 수박, 시원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하는 독서, 미칠 듯이 땀을 내며 운동하고 찬물로 하는 샤워, 하루 종일 땀에 찌들어 있다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틀고 이불 안에 눕는 것,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수상스포츠 등등. 모두 그저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소중한 나의 일상이다.


반대로 겨울은 겨울대로의 맛이 있다. 베일 듯한 추위와 칼바람, 몇 겹을 입어도 뚫고 들어오는 추위와 매일매일 입었다 벗는 옷들, 두꺼운 옷들로 하루 종일 무거운 나의 몸, 난방을 틀어도 서늘한 내 방 등 하루하루 그저 겨울을 버텨내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소중한 나의 일상이다.


건물 위에서 볼 수 있는 흰 눈으로 뒤덮인 도시, 한 겨울에 사 먹는 따뜻한 어묵 국물, 온수 매트 위에 이불 덮고 까먹는 귤, 완전히 무장하고 타는 스키, 보드, 한 겨울에 추워서 서로 꼭 안아주며 나누는 온도 등 겨울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일상들이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인데 봄, 가을만 기다리며 여름과 겨울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여름과 겨울은 올 텐데 말이다. 덥고 추운 나라로 여행도 가면서 나는 왜 그리도 여름과 겨울을 싫어했을까. 이제는 소중한 여름과 겨울 하루하루를 즐겨볼 생각이다.

마치 매일매일 여행을 온 기분으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려 할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