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있고 똑똑하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어딘가 허술하고 취약한 사람이 끌릴 때가 있다.
타인에게 반사적으로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사람,
사람의 이면을 계산하지 않는 허술한 사람들 말이다.
내 고등학교 때 별명은 신천지 자석이었다. 오해하지 말라. 그냥 시내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그들에게 붙잡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15분간 매번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정말 많이 시달렸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한 젊은 여자분이셨는데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실례지만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아, 또 그들이구나. 이번엔 정말 속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단호하게 “아뇨, 바빠서요”라고 답하고 뺏던 에어팟을 다시 끼웠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이 근처 길거리에서 햄버거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라고, 이 동네가 처음이라 몇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 청년 사업자같은 분이신데 내가 오해했구나!’라는 머쓱한 마음과 함께, 그녀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가격은 그래도 수제버거일테니 프랜차이즈보다는 좀 비싸게 6천원 정도가 좋지 않겠냐, 이 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진 않아서 저쪽 거리가 더 좋을 거 같다는 등 말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녀가 감사인사를 하고 잘 헤어졌는가? 아니다, 초기 감이 맞았다. 햄버거 관련 질문에서 점점 내 엠비티아이나 진로, 나이와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물어보고, 급기야 전화번호 교환까지 요청했다. 말이 잘 통하고 대답하는 것을 보니 좋으신 분 같아 본인이 하는 외부 모임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거절하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허탈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몇 년은 더 지나간 그 거리에서 새로 생긴 수제 햄버거집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바보같았던 내 행동을 후회하는가?
아니다.
지금도 누가 햄버거 창업을 할 건데 몇 가지 질문에 답해달라고 날 불러세우면 멈춰 서서 들어볼 것 같다.
그럼 그때의 나는 왜 허탈했는가?
내가 바보같이 또 속아서가 아니라, 그자가 날 속였으므로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실상이 허탈했던 것이다.
그때의 난, 타인으로부터 단단해질 나를 왠지 모르게 꺼렸다.
지금은 저런 수법에 속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다양한 피해 사례가 넷상에서 많이 떠돌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구걸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 저래놓고 뒤에서는 멀쩡하게 잘 다닌다든가, 그 돈으로 밤에 술이나 마실거라든가, 그들에게 돈을 한 번 주면 계속 요구할 수도 있다든가, 직접 일해서 돈을 벌지 않고 평생 저렇게 살게 한다는 등의 똑똑한 사람들의 지당한 생각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무조건 시간이 없다고 하고 지나가’
‘저 사람에게 얼마를 기부하는 게 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건 그들이 직접 뭔가를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살게 하는 거야’
‘얼마 보태준다고 저 사람이 뭘 할 수 있는데?‘
그래 똑똑한 내 친구야, 너의 말이 맞다.
그래도 있잖아 나는
약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반사작용처럼
우선 연민과 자비심이 발동하고 보는 사람이 좋더라.
명확해보이는 정답들 속에서 그래도, 혹시, 그치만, 이라는 문을 개방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취약함.
그래서 공격받아 다칠 확률이 남들보다 높지만 어쩌다가 정말 좋은 것을 들일 수도 있는,
그런 위험에 취약한 사람들이 나는 좋고
나도 그러고 싶다.
세상 더러운거 다 알면서도 거지를 거지로, 가난한 자를 가난한 자로, 약자는 약자로 볼 수 있는, 취약한 자가 사실 가장 무모하고 용감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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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 햄버거 창업자는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