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와 한 집에 사는 어린이의 머릿속에는 포켓몬이 9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한다.
이 어린이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애니메이션, 게임, 종이접기, 친구들과의 창작 놀이마저도 '포켓몬'이 주제다.
같이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도
기승전 포켓몬 퀴~즈.
사실 나로선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간 아이를 온통 몰입하게 만든 다양한 캐릭터들을 떠올리며.
하지만 아이가 지금 하나에만 꽂혀있다는 가정으로 내 생각을 편집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의 중요한 일과는 출판을 의뢰한 선배의 35년 전 낡은 일기장을 타이핑하는 것.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일기장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혼재한다.
분노와 짜증, 후회, 귀찮음, 승부욕, 사랑, 감사, 설렘, 기쁨과 보람, 연민, 그리움...
나이가 어려도 아니면 어릴수록 다양한 감정을 투명하게 느끼는 엄연한 하나의 인격체이다.
하루를 보내며 만나는 사소한 사건들,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닌 길에서 우연히 지나치는 행인의 한마디에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자아를 형성하고 미래를 향해 가지를 뻗어간다.
생각보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담은 부분이 많았다.
'또 고생길이 열렸다.
잘 자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힘들다.
하나 틀렸다. 상장이 날아갔다.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싶다...'
어린이들에게조차 닭가슴살마냥 팍팍한 현실은 30여 년이 지났지만 더하면 더할 뿐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아무튼 결승전에 도착해 거친 숨을 고르듯,
일기 쓰기는 정신없이 달려온 하루를 마감하며 영혼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일기 쓰기를 습관화한 사람들의 내면은 놀랍도록 건강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지난 하루를 반추하며 나쁜 감정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숨결을, 긍정적인 감정들에게는 축하와 기쁨의 숨결을 더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잘 가꿔온 소녀는 자라 귀여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견고히 살아가고 있다.
더불어 그녀는 나의 흔들리던 20대, 누구보다 든든한 기댈 언덕이 되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을 숙고하는 삶, 내면의 자신과 깊이 연결된 사람은 미래를 향해서 또 타인을 향해서도 튼튼한 가지를 뻗어갈 수 있다.
나 또한 나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다짐 하나,
그리고 우리 아이의 머릿속에 포켓몬을 제외한 나머지 5%에 포함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편집(cut) 하지 말고,
더 큰 관심으로 들여다보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둘로 오늘의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