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떤 무기도
너를 상하게 하지 못하고,
너에게 맞서서 송사하려고 일어나
혀를 놀리는 자를 네가 모두 논박할 것이다.
"나의 종들을 내가 이렇게 막아 주고, 그들이 승리를 차지하도록 하겠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새번역 사54:17)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일이다.
겁쟁이 쫄보였던 나는 곧잘 드센 아이들의 먹잇감이었다.
하굣길에 어떤 남자아이가 나에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미운 말을 해댔고
여지없이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어디에선가 모르게 큰 언니가 나타났고
어떤 새끼가 울렸냐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언니의 광기를 목격한 그 녀석은
잘못 걸리면 큰일 나겠다 싶은 표정으로
서둘러 하교하는 아이들 무리 속에 몸을 피하는 걸 보았다.
그날 언니는 나의 히어로였다.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서로에게 히어로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말하지 않고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는 것.
이때 약간의 허세를 가미해도 좋다.
(또 너한테 뭐라 하면 가만 안 두겠다. 뒷산에 묻어버리겠다 등등)
나를 위한 허세가 아닌 누군가를 위하는 허세는 주님도 살짝 눈감아 주시지 않을까?
이사야 54장 속 천하무적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둘도 없는 히어로의 모습이다.
너를 공격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지만
누구든 패할 것이며 그 적들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이 어떤 물리적 언어적 공격을 한들 완전히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건 뭐 금수저도 아니고 다이아몬드수저 같다.
그분의 백성이 될 때 결국은 어떻게든 승리하게 될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허언, 허세와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그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은 늘 동일하시지만 그 약속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성품과 태도가 이야기의 결론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순종으로 약속을 성취하고 승리하는 해피엔딩을 쓸 것인가?
나의 탐욕을 좇아 패망하는 새드엔딩으로 막을 내릴 것인가?
* 삶으로 : 새드엔딩으로 가는 함정에 빠지게 하는 나의 죄와 허물(두려움, 조급함,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정죄)을 주님께 내어놓자.
주님 품에 안겨 승리의 기쁨을 누릴 미래를 꿈꾸며 미리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