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마다 차가운 흙을 밀고 올라온
힘찬 새싹을 볼 때마다,
나무가 새 옷을 갈아입듯
여린 새 잎을 낼 때마다,
이제 막 봉우리를 만든
튤립의 차갑고 고운 꽃잎을 매만질 때마다,
10년 전 처음 품에 안았던 아기의 감촉이 느껴진다.
서늘하고 여리고 촉촉한 꽃잎 같던 아기의 손.
실상 아기의 손에서는 고린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엄마라는 필터로 완벽 무장한 상태였기에
이렇게 예쁜 아기 손에서 어떻게 이런 냄새가 날 수 있을지
오묘하고 신비로울 뿐이었으며,
기저귀를 가는 찰나 내 얼굴에 뿜어대는 쉬야도
집안일로 지친 나에게 선사하는
깜찍한 퍼포먼스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와생동물처럼 누워있는 아기의 정수리에서 나는
땀쩔은 냄새도 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피톤치드였다.
부모라는 필터가 갖는 능력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다.
같은 걸 경험해도 전혀 다르게 보고 느끼게 한다.
보통 조건적 인간관계 속에서의 갈등은
서로의 이익을 주장하기 때문이지만
'무조건적'인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은 좀 다르다.
각자의 이익이 아닌 두 사람 모두
자녀의 이익을 두고 갈등한다.
자녀는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고
부모는 더 오랫동안 자녀에게 유익한 것을 주장한다.
자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살과 뼈를 깎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허비할 수 있으며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드는 보호 행동은 가히 본능적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7)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자기 자녀들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짝사랑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죄악에 허덕이는 자녀들을 훈계하시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분의 보호 안에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가르치셨지만
자녀들은 돌이키지 않았고 되레 선지자들을 죽였다.
결국 하늘 아버지는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셨다.
사망이라는 감옥에 영원히 사로잡힌
자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골백번도 더 죽으셨을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큰 위험, 두려움은 이미 지나갔다.
오늘도 내 가슴 속 십자가 나무에는
영생이란 여리고 푸릇한 새잎이 하나가 돋았다.
* 삶으로 : 오늘도 새 생명 주신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찬양드리기 /
복음이 필요한 이웃,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기 /
나에게 진짜 유익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 주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 믿음으로 감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