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사과 과수원 일을 도우며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고
매번 쉽지 않은 것이
'가지치기'다.
더 혼란스러운 건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지치기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카오스 그 잡채!).
그래도 풍월을 읊는 서당개처럼
눈대중으로 대강 알 수 있는 건
어머니 편이 전정을 좀 더 많이,
확실히 하신다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아까운 마음에 잔뜩 남긴 가지들에는
자잘한 열매들만 가득했다.
그래서 새벽녘부터 노을 때까지 생활 스쿼트를 해가며
사과를 따고 또 따도,
붉은 사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는 열매에게 가야 할
영양분을 남기지 못하고 제 몸만 부풀린 게 그 이유다.
가지를 적게 남긴 나무들이 비록 개수는 적어도
굵직한 열매들을 탐스럽게 매단다.
그러므로 내가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21:43)
새벽 성내로 들어오시던 예수님은 배고프셨다.
마침 곁에 있던 무화과나무에서 열매 찾으셨으나
나뭇잎만 무성할 뿐이었다.
주님은 그 나무에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하시고
나무는 곧 말라죽어간다.
그 뒤에 연이어(위의 사건과 시차가 있을 수 있으나)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는데
'포도나무 주인과 농부'에 대한 비유가 오늘 본문 말씀이다.
농부는 제대에 맺은 열매를 주인에게 바쳐야 할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농부들은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려는 엄청난 야욕을 보인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처럼
이야기 속 포도원 주인도
탐욕스러운 농부들을 가차 없이 죽이고
다른 성실한 일꾼을 찾아 포도원을 맡긴다.
게으르고 탐욕 가득한 농부는 당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자기네 것인 양 뻔뻔하고 교만하게 행세하며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는 본래의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
나는 어떠한가?
기꺼이 시절을 좇아 순종과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복음의 열매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파리 같은
자기 자랑과 탐욕만 무성히 매달고 살아간다면
언제든 주님께서 나를 가차없이 잘라버리셔서
복음의 열매 맺을 기회를 박탈하실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리만 교만하게 주장하며
순종의 책임은 다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근신해야 할 때다.
올해도 1/3이 지나고 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열매를 꿈꾸고 바라며 노력하고 있는가?
오늘도 성실히 그 열매를 꿈꾸고 돌보아야 하는 농부로 부르셨음을 잊지 말자.
* 삶으로 : 이웃에게 안부 전하며 봄나물 부침개 나눠먹기 /
내년 출간 목표로 하는 책을 통해 복음이 유전되길 꿈꾸며 매일 성실히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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