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어머니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질문을 준비해
어머니를 인터뷰한 적 있다(현재 한없이 유보되고 정체된 계획이지만).
세 딸들이 모두 성인이 됐을 때
즉, 혼자만의 여유를 되찾았을 때
뭘 하고 싶으셨냐고 여쭸다.
엄마는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이제 겨우 아이들을 다 키웠는데
다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고?'
나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소원이지만
엄마는 언제나 사람을 품는 일을 계속 이어가셨다.
지금도 부모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바쁜 추수를 마치시면 내가 후원하는 보육기관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딱 맞는
귀엽고 탐스러운 사과알을 골라 보내시는 걸
잊지 않으신다.
넓고 따뜻한 엄마의 품은 결코 식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꼭 닮았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고대 영아살해, 유기, 거래는 합법적인 관습이었고, 중세시대 어린아이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여겼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을 소중히 대하지 못하는 통념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제활동에 방해가 되는 짐으로 여겨지거나(놀랍게도 모든 혐오의 대상화는 돈과 관련돼 있다),
가장 사랑받아야 할 장소인 가정에서
어른들의 은밀한 화풀이의 대상이 된다.
헬린이(초보 운동자), 주린이(초보 주식투자자) 등 어떤 분야에 있어
미숙함의 은유, 모자람의 비유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사회 통념에 예수님은 반기를 드셨다.
어린이를 친구로 초대하고 환대하셨다.
이들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가르치셨다.
아이들의 무능력과 무지,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온전한 신뢰, 겸손, 수용성, 유연성, 개방성, 감수성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꾸짖으며
아이들을 본받을 것을 명하셨다(마 18:3).
이 땅에서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이들을 편들어 주시는 주님이시다.
나는 어떠한가? 나의 관심은 빛나고 유능하고 탁월한 이들을 향해 있지 않은가?
불편한 눈높이에 있는,
쉽게 은폐되고 가려진 이들을 향해야 하지 않는가?
* 삶으로 : 산타보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울 보육원 아이들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카드 준비하기/ 아동부 아이들에게 반갑게 인사 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