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난 2년간 농학 공부를 마쳤다.
편입을 하면 4년간 전공 커리큘럼을 2년 동안 배워야 하기에
교양수업을 들을 여유가 거의 없다.
채식주의자인 나는 애정하는 식물에 관한 수업만 쏙쏙 골라 수강해 왔는데
마지막 학기가 되자 그동안 미뤄왔던 동물 관련 전공을
어쩔 수 없이 몰아서 공부하게 되었다(축산학, 가축사양학, 반려동물학).
그런데 예상외로 정말 흥미로웠다.
대부분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가축화된 소, 돼지, 닭 또는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 고양이 정도로 국한된 범위의 동물에 대해 배웠지만
인간 외에 다른 종에 대해 이렇게 체계적이고 깊이 공부해 본 적은 없었다.
종마다의 분류, 습성, 소화생리, 질병, 인간의 이용성 등을 학습했다.
시험에 나올만한 핵심 내용은 아니지만 교과서 한켠 쉬어가기 코너에
토끼의 '자기 분식'습성에 관한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토끼는 '분식' 즉,
자신의 똥을 먹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떡볶이, 순대 같은 분식 말고).
토끼뿐만 아니라 비버, 기니피그 등의 소형 초식 동물에게도 관찰되는 행동인데
몸집이 작은 이들은 섬유소가 가득한 풀을 발효하고 소화시킬 충분한
장기 내 공간이 부족하다.
소와 같은 커다란 반추동물 같은 경우 위가 4개로 이루어져 있어
틈틈이 되새김질하는 행위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또 소형 동물일수록 신진대사가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양분이 신체에 충분히 흡수되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되어 버린다.
그래서 토끼의 전략은 첫 번째 섭취를 통해 공급받지 못한 양분을
다시 먹어 재흡수하는 것이다.
만약 집사가 토끼의 전략을 무시하고
똥을 깨끗이 청소해서 자기 분식을 막는다면
토끼는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처음 소화시킨 똥은 섬유질이 많은 단단한 형태이지만
그다음에는 무르고 점액에 싸여 반짝이는 포도알 같은 똥으로
필수 아미노산(단백질)과 비타민, 지방산, 다량의 미생물이 함유된
토끼에게 꼭 필요한 발효식이라고 할 수 있다.
토끼는 이렇게 4번까지
자기 분식을 반복하며
좀 더 '이븐 하게' 소화시킨다.
나의 지난 2년간의 농학 공부는 '첫 번째 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똥을 싸는데 자그마치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나의 지식은 여전히 엉성하고 치기 어릴 뿐이다.
'졸업이다! 드디어 다 쌌다!'하고 시원해하며 책을 덮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배운 지식을 소화시키기 위한 되새김질,
자기 분식을 시작할 때이다.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 취득이든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가
현장에서 직접 농작물을 가꾸거나 취재하는 건 어떨까?
아니면 딱딱한 텍스트를 말랑말랑하고 생생한
또 다른 콘텐츠(동화, 소설, 영상, 노래, 디자인...)로 재생산할 때
지식은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엉성한 지식도 반복적으로 접하고 익힐수록
촘촘하고 치밀하게 자리 잡히게 된다.
언젠가 완벽하고 이븐 하게 소화될
지식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