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결혼 준비 핵심정리

언제나 플랜B가 필요해

by 미래공원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던 시기에 결혼을 하려다 보니, 결혼 준비할 때 왜 웨딩플래너가 존재하는 것인지 크게 실감했다. 그리고 웨딩산업이 왜 이렇게 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느낀 바가 크다.

언제 이런 것을 해보냐는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잠재하고 있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일생 한 번"이라는 그 한정적인 의미로 좀 더 씀씀이에 너그러워지는 것도 같다.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과정일 뿐인데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매우 많은 챙김 요소가 존재했다. 그 규모와 정도는 물론 개인의 자율적 선택이지만, 남과의 비교가 당연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고심이 깊어졌다.

양가 상견례, 예단, 폐백 등 다수의 항목에서 합의 하에 간소화하고 생략하였다.

나름 합리적으로 작은 결혼식을 했다는 사람들의 후기들도 살펴보면서 내 상황에 맞게 간략하게 추려보았다.



(1) 살아갈 집

결혼의 준비는 '집'에서부터 시작했다. 결혼을 결심하고 가장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것이 집이었다. 이미 한국에서의 집은 생활의 장소보다는 투자의 개념에 가까워져 in서울의 집을 구하는 것은 높은 벽이 있었다. 당연히 서울생활권을 꿈꿔왔지만, 서울의 중심을 기점으로 물방울 파장처럼 점점 멀리멀리 퍼져나간 수도권의 끝자락에 집을 구했다. 역시 서울에는 내 집이 없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으로 평일의 삶은 버린 선택지였지만 지금은 이 지역마저 투기제한지역으로 묶여 버렸으니, 되돌아보니 여기도 매우 감지덕지이다. 인생은 정말 타이밍이다.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신혼부부 대출(아낌e)을 신청하였고 회사 퇴직금을 중간정산받아 자금을 끌어 모았다. 내 인생 중 내 통장에 이런 거금이 잠시나마 존재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살 집이 결정되고 나니, 이제 결혼이 보다 선명하게 그려졌다.


(2) 결혼식 장소

결혼식 참석 인원이 장소 선정에 주요 요소였다. 코로나로 인해 코로나 상황 추이에 따라 정부지침이 계속 바뀐 탓에 결혼식 당일에 취소되던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 참석인원은 직계가족 외에 증인을 해줄 각자의 친구 한 명씩만 초대했다. 그래서 10명 내외가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조용한 단독룸이 있는 음식점 위주로 알아봤다.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위치한 식당으로 사전 답사를 가보고 예약을 해두었었다. 그런데 우려했던 바대로 결혼식으로 예정된 1주일 전에 예약한 날에는 운영을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알아본 다른 장소가 다행히 가능하여 극적으로 결혼식이 치러졌다.

플랜B로 대비 해두길 잘했다.


(3) 기념사진 촬영

알아봐 둔 사진을 잘 찍는 사진관을 결혼 예정 한 달 전에 예약해두었다. 사진 촬영 시간은 30분도 채 안 걸린 거 같다. 전문사진작가님 덕분에 5개 정도의 구도에서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을 골랐고 메인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보정하여 파일로 주고 액자로도 받았다.

이후로도 매년 이맘때 이 사진관에서 똑같은 포즈로 우리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4) 청첩장

코로나 이전에도 청첩장은 종이와 모바일URL이 병행되기도 했는데, 결국 종이청첩장은 초대의 상징성이기에 지금 시대에는 모바일청첩장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결혼식날 초대를 하지도 못하는 이 상황에서는 지인에게 결혼을 알리는 용도로 셀프로 모바일청첩장을 만들었다. 사진관에 찍은 사진을 메인에 넣고 간단한 글귀를 담아 결혼식 2주일 전에 카톡으로 전했다. 결혼식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알린 결혼 소식에 주변에서 다소 놀란 반응이 많았다.


(5) 커플링

결혼의 징표로 웨딩링을 알아보자니 내 기준에서는 과했다. 굳이 웨딩링이 아니더라도 같이 낄 수 있는 커플링으로 찾아봐도 여기에도 역시 특수가 붙어 있나보다. 그래서 금은방에 가서 매우 심플한 금가락지를 맞추려고 했었다. 결국 고가의 웨딩링이 아닌 찾아본 커플링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으로 선택했다.

나중에 일상생활에서 손은 자주 사용해서 반지가 상전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손에 껴는 것보다 목에 거는 것을 택하고 백금목걸이줄을 따로 구매하여 반지를 펜던트처럼 끼웠다.


(6) 행사용품과 식순

결혼식다운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럼에도 필요한 요소들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부케, 케이크, 혼인서약 정도였다.

부케와 부토니에는 단골로 있는 꽃집에서 했다. 위치상 다른 곳도 알아봤는데 거창한 꽃이 아닌 꽃다발이면 되는데 '웨딩부케'가 되면 3만원이 15만원이 되는 기적을 볼 수 있었다. 웨딩프리미엄이 붙은 것 같다.

케이크는 떡케이크로 해서 남은 것을 가져가 냉동으로 보관하기 용이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하기로 하고 서로에서 하는 당부와 다짐의 글을 준비하여 낭독하였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10분 정도의 정돈된 분위기에서 준비한 행사를 치렀다.


(7) 답례품

그동안 다양한 답례품을 받아왔었다. 떡, 쿠키, 소금, 수건 등 다양한 답례품이 존재했었다.

코시국에도 적절한 수제비누를 답례품으로 선택했다. 사실 내가 좋아서 만든 수제비누였는데, 생각해보니 이걸로 답례품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이 발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는 아니지만 직접 만든 수제비누를 답례품으로 주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되었다. 이 비누는 여러모로 우리집에서도 잘 쓰이고 있다.


(8) 미뤄진 신혼여행

코시국이었던지라 결혼식 이후 짜잔하고 떠나는 신혼여행을 처음부터 계획하지도 않았었다. 코로나 상황이 잠잠해질 것이라 예상하며 그래도 그해 하반기에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괜찮아 나중에 가면 되지 뭐'라고 미뤄뒀다. 이렇게 2년간 코로나가 길어져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발목이 잡힐 줄 몰랐던 상황에서의 생각이었다.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면 코로나 전과 같은 사회통념 내에서는 이 결혼식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집안에서 둘 다 첫째가 아니어서 부모님 눈치가 덜 보였고, 불안한 시국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민폐가 되는 그런 코로나 시국이라 일반적인 통념이 무시되었다. 이런 부분에서 생각해보면 2% 정도는 코로나 덕을 본 것 같다.



원래였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모든 선택들이
코로나 말머리가 붙으면 이해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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