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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퓨처에이전트 Mar 25. 2020

평생 장사는 안 하기로 결심했다!

1인지식기업가로 산다는 것

  아버지가 명퇴를 당하고 퇴직금 사기까지 당한 상황에서 어렵게 편의점 창업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일매출 150만원을 예상했던 매출은 일 5~60만원이 고작이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추락할 수가 있는 건지...


 나중에 직접 편의점 회사에 취업을 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대한민국 편의점 평균 일매출은 150만원정도였다. 그러니 개발담당자들은 일단 무조건 예상매출제시는 150만원이 기본이다. 그리고 어차피 장사는 열어봐야 알지 누구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우리 편의점은 상권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100m 아래에는 지하철역이 있었고 위로는 각종 스포츠행사가 열리는 종합운동장이, 뒤로는 주택가에다가 주변에는 수많은 학원들과 독서실이 가득했고 가게 바로 앞은 버스정류장이었다. 누가 봐도 될 만한 자리이긴 했다.


 그런데 오픈하고 돌아보니 주변에 이미 운영 중인 편의점만 5개가 있었고 창업 전에 몰랐던 슈퍼마켓이 바로 옆 건물 2층에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대학 재학 중이라 창업준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진 못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는 직접 상권조사나 관련 공부없이 개발담당자 말만 믿었던 것 같다.

최근 지도에 당시 편의점 상황 표시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5년 계약은 했고 해지하고 싶어도 창업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결정은 우리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대학3학년을 마치고 이제 취업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 나는 휴학을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팔자에도 없을 편의점 야간근무에 투입되고 말았다. 아니 이게 내 팔자였나 보다. 그렇게 꼬박 1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자정부터 다음날 낮12시까지 부모님과 교대할 때까지 야간근무를 섰다. 아버지, 어머니 6시간씩, 나 12시간 이렇게 얼어 죽을 24시간 편의점은 한겨울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야간근무 서다 찍어 놨었던 그때 그 편의점


 재밌는 건 아버지의 첫번째 창업이었던 칼국수체인점 오픈 때도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장우동전문점을 권했지만 무시당했고 이번 두번째 창업인 편의점 오픈 때도 대학생이었던 내가 매일 신문을 보면서 보고 있던 아이템인 죽집을 부산대학교 앞에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결국 무시당했다.


 그 당시 지금 잘 나가는 본죽도 막 시작할 때였고 본죽은 이화여대 앞 죽집에서 시작했었다. 그래서 직접 알아보다가 죽이야기라는 브랜드에서 부산대학교 앞에 점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미 편의점 계약을 하신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 부산대학교 앞에 누군가가 오픈한 죽집은 날개를 달고 성장했고 우린 편의점 해서 죽을 쑤고 말았다. 지금도 죽은 저출산고령화시대에 이유식에 환자식 등의 수요증가로 꾸준히 잘 되는 아이템 중에 하나다. 안타까운 건 얼마 전까지 어머니는 본죽 점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셨다ㅜㅜ 참 인생이란....

 사실 편의점에서 알바 없이 셋이서 근무해도 이래저래 빼고 우리 손에 남는 건 고작 100여만원이었다. 셋이서 그냥 어디 가서 알바를 하는게 낫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가 가게랑 집이 멀어서 창업 초기인 2004~5년 한겨울에는 몇개월 동안 창고에 전기장판 깔고 밥솥 갖다 놓고 셋이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로 배를 채우면서 교대로 근무를 서곤 했다.


 나중에는 결국 가게 근처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야간 근무를 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내가 터널에서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 죽을 뻔 했기 때문이다. 참 명도 길다. 아마 나는 분명히 오래 살 것 같다.

  어릴 때 난 죽을 고비를 두번 넘겼는데 한번은 형들 따라 무단횡단하다 음주운전한 오토바이에 충돌해 공중 2회전을 하고 쓰러진 후 몇시간 만에 깨어나서 살았다. 부모님 말씀이 깨어나자 마자 나는 사라진 신발부터 찾았다고 한다. 이런 알뜰한 녀석!


 또 한번은 초등학교때 처음 자전거를 산 날 외식하러 가는 길에 브레이크 잡는 법을 모르고 내리막을 혼자 내려가다 4차선 차도 바로 앞에서 슈퍼 아저씨가 나만 낚아 채 주셔서 살았다. 수년이 지나 가족들과 차를 타고 놀러 가는 길에 길가에 있는 그 사장님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서야 나는 감사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하는 팔자인데...아직도 살아 있는 걸 보면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편의점 야간근무 당시 창고정리하면서...그래도 애는 참 밝다 ㅋㅋ

   어쨌든 아버지는 첫번째 창업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 만큼은 성공하길 기대하며 준비를 했지만 그럴꺼면 처음부터 아는 사람을 통해 창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람을 통해 투자도 하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친구, 가족처럼 가까운 지인들은 신뢰하기 마련인데 사실 그들도 직장을 다니다 보면 살아남기 위해 결국 회사가 이익이 되는 일을 할 뿐이다.


 우리 가족 편의점 창업 후 예상 외로 저조한 매출에 창업을 후회하고 있을 때 그 지인은 승진을 해서 본사로 발령받아 부산을 떠난 상태였다. 정말 피가 거꾸로 솟을 뻔 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통해 두가지는 제대로 배웠다. 남의 말만 듣지 말고 모르면 스스로 알아 보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과 식당, 편의점 두번의 자영업 간접경험을 통해 장사는 평생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자영업을 하는 분들 중에도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서 차별화된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돈도 버는 이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가게를 공짜로 준다 해도 안 할 거다. 그 이유는 식당과 편의점을 함께 운영해 보고 관련 공부를 하면서 알 게 된 것이 일단 어떤 매장이든 장사가 안 되도 힘들고 장사가 너무 잘 되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요즘 포방터 연돈 사장님 아마 스트레스 많이 받으실 거다. 사실 맛집이라고 가 보면 어디 웃으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던가? 한두명은 있다. 그런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장사에 미친 거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을 거다. 직원 쓰면 되지 않냐? 그리고 사장은 편하게 돈만 벌면 되잖아. 일단 사람쓰는게 제일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ㅋㅋ 그러니 안 해 본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문제는 주인이 신경을 쓰지 않고 손을 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이미 그 가게는 망해 간다고 봐야 한다. 직원은 절대 내 가게라고 생각하고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어떤 장사를 하든 제대로 할려면 주인이 늘 거기에 매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도 돈 쓸 시간은 없고 그런 인생은 절대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장사도 어쨌든 돈 벌어서 편하게 놀고 먹을려고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 잘 되든 안 되든 놀고 먹을 시간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얼마 살진 않았지만 내가 살아 보니 돈 부자보다 시간 부자가 더 낫고 돈 부자에 시간부자까지 되면 제일 좋다^^ 물론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다면 돈부터 벌어야겠지만...뭐 그냥 내 생각은 그렇다!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은퇴 후에

삼각김밥을 파시겠습니까?

치킨을 튀기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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