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퓨처에이전트 Apr 02. 2020

서울은 나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1인지식기업가로 산다는 것

  2006년 7월 식품제조기업인 (주)대상에서 편의점기업인 (주)보광훼미리마트(현 BGF리테일)로 이직을 한 후 서울생활을 접고 경남마산의 영업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편의점 기업의 특성상 현장경험을 위해 직영점 생활부터 시작했지만 동기들과 달리 편의점 운영경험이 있었던 나는 고속으로 신점오픈담당이 되었고 얼마 뒤 가맹점관리를 하는 슈퍼바이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 입사지원을 할 때부터 나름 예상했던 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지만 문제는 어떻게 다시 서울로 올라 갈 것인가였다. 짧은 서울생활이었지만 주말마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왜 서울서울 하는지 하나씩 깨달았으며 이미 서울에 푹 빠져 있던 나였기에 반드시 기회의 땅인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업지점의 부장님께서 신입사원들과 점심식사를 하시다가 대뜸 '서울로 가고 싶은 사람 있냐?' 고 물어 보셨고 당시 신입 5명 중 나를 포함해 3명이 손을 들었다. 이런...서울로 가는 것도 경쟁이 붙을 판이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편의점 현장경험이 있었던 나였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슈퍼바이저 업무를 맡아서 경남지역 편의점들을 관리하던 어느 날 조직 인사개편이 있었고 당시 부장님과 과장님 등이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난 것이다. 그리고 부장님께서 나를 불러서는 다시 한번 '서울에 꼭 가고 싶냐?' 고 물으셨고 나는 망설임 틈도 없이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서울의 신생팀으로 발령이 난 과장님을 따라 다시 한번 서울 입성에 성공했고 여전히 기회의 땅 서울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불후의 명곡에서 노브레인이 부른 패티김 서울의 찬가

 처음 서울 입성 당시 무대는 봉천동, 구로동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거처는 월세를 아끼기 위해 함께 서울로 올라 온 선배 두명과 한양대 인근 왕십리 작은 원룸에 마련했고 근무지는 본사가 위치한 강남구 선릉역 인근이었다.


 강남이라고 해서 내게 특별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직장생활과 함께 자기계발의 기회도 풍부했고 부의 상징인 강남지역에서 근무하면서 재테크에 관심도 가져 종잣돈도 마련했고 나름 동기부여가 더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입사하면서 꿈꾸고 있었던 상품기획자(MD)가 되기 위해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MD아카데미 유통교육원을 알게 되어 일주일에 2~3번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물론 신생팀에다 아직 신입사원인 내가 저녁에 학원을 가기 위해 칼퇴를 하는 걸 보고 있는 팀장님과 선배들의 심기는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 빵꾸내지 않고 업무시간에 몰입해서 일하며 피해는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에 인사고과평가는 팀에서 나만 D를 받고 말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신입사원 시절 나는 어떻게 보면 조직이 좋아할 만한 직원은 아니었다. 자기계발 하겠다고 칼퇴를 하질 않나, 업무 많다고 팀장이 지시한 일을 거부하질 않나, 게다가 술을 싫어했던 나는 선배들의 퇴근 후 한잔도 곧잘 거부하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1980년생이니 나름 밀레니얼 세대다^^ 


 그렇다고 내 일을 대충하거나 업무의 질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분명 그때는 아직 조직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건 잘못이다. 하지만 늘 머릿 속에 남아 있던 아버지의 구조조정에 대한 기억때문인지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차피 당신들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진 않을 거 아니냐?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생존하기 위해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순 없다' 라고 스스로 외쳤다.


 대신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 시간도 갖기 위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개선하고 혁신하려고 애썼기에 오히려 회사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행이 군에서 행정병이었던 나는 기본적으로 업무처리 속도는 빨랐고 기존 방식대로 하는 것도 싫어해 늘 변화를 추구하면서 업무생산성을 끌어 올렸다.


 신입시절 매장의 각종 용도품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할 당시 직접 손으로 디자인해서 개발했던 빨대, 젓가락, 숟가락 꽂이와 직접 업체를 발굴해 도입했던 티슈통은 요즘도 편의점에서 볼 때마다 뿌듯하다. 다만 수년이 지났지만 변화가 없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는데 아마 지금은 더욱 개선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편의점 운영당시 불편했던 점을 생각해 2008년 개발한 다용도 소모품 꽂이

  결과적으로 신입사원이었지만 자기계발도 하면서 팀내에서 나름 큰 업무개선 프로젝트들을 맡아서 처리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사내 축구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상품본부 팀장님의 눈에 띄어 전략적으로 준비했던 MD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그렇게 원했던 MD가 되었지만 MD업무의 대부분이 상품기획보다는 각종 잡무에 클레임처리 및 거래처 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유통서비스업의 특성상 납품업체들과의 거래협상시 갑의 위치에서 강하게 압박해야 할 때가 되면 성격상 매우 힘들었을 정도로 나랑은 안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도 나름의 성과라고 하면 늘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고 새로운 시도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를 데려와 주신 고마운 팀장님이었지만 아니다 싶은 건 아니라고 과감하게 말하는 성격은 그때도 버리지 못했다.


 한번은 PB아이스크림을 개발해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 클레임 발생시 곤란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포장디자인에 들어가는 회사로고를 빼자는 팀장님의 의견에 PB상품은 우리만 판매하는 상품이고 회사로고가 들어가야 고객이 믿고 더 사지 않겠냐고 주장해 결국 로고를 박아서 출시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 긴 조직생활은 아니었지만 직장인으로서 그래도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당 팀에 있으면서도 조직 전체의 상황에 관심이 많았고 첫번째 회사에서도 두번째 회사에서도 인트라넷에 자주 아이디어 제안을 하거나 정보를 올리고 다른 팀동료에게 아이디어나 정보가 있으면 공유하기도 하면서 조직내에 나를 알리려고 노력했고 그런 노력 덕분에 업무 외적으로도 각종 TFT에도 차출되어 프로젝트를 함께 했었고 일본어 덕분에 선배들부터 가는 해외출장 기회도 먼저 얻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신개념점포TFT에서 함께 했던 팀장님이 계시던 전략기획실로 자리를 옮겨 신개념점포개발 및 신규사업기획 업무를 하면서 국내외 유통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대한 시장조사도 하고 각종 박람회 관람도 하면서 산업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고 조직내 최초의 임원보고용 유통산업전망보고서(5~60페이지)를 혼자서 작성해 발간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때도 미래전략기획 업무역량을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 고등학생때부터 독학으로 공부하던 미래학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미래예측 전문가과정(미래학자 최윤식)을 발견해 사비를 털어 주말을 반납하면서 듣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의 강의와 책이 동기부여가 되어 결국에는 나의 조직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1인지식기업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독립선언을 하고 말았다.    

 

 어쨌든 서울은 나에게 짧은 시간에 조직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으며, 각종 최신 비즈니스 정보를 박람회, 세미나, 모임 등을 통해 최대한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서울로 왔기에 대학 1년 후배인 지금의 아내와 더욱 가까워졌고 결국 결혼해서 소중한 딸아이도 얻고 지금의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으니 서울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기회는 잡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서울을 떠나 경기도를 거쳐 활동 편의상 국토의 중심인 세종시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거리라 심리적으로는 전혀 멀지 않은 곳이 서울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서울을 무대로 활동할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울은 늘 그 자리에서 수많은 새로운 기회를 위해 도전하는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테니까 말이다.  

아내와 딸 (와온해변 일몰 구경하며)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기회는 그렇게 다 날아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