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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퓨처에이전트 Apr 25. 2020

기사딸린 차 타는 기분이 이런 거였어?

1인지식기업가로 산다는 것

  어릴 때 드라마 같은 걸 보면 부잣집 주인공들이 기사딸린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곤 했었다. 그리고 우리집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때 아버지가 은행지점장으로 승진하시면서 기사딸린 전용차가 나왔다. 업무용이긴 했지만 아침에 아버지 출근하실 때 얻어 타고 등교할 때면 나름 부잣집 아들이 된 것마냥 기분이 좋았다. 비록 내가 이룬 성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호사도 아버지가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당하는 바람에 얼마 가지는 못했다. 아이러니하게 아버지는 명퇴 후 퇴직금 사기와 창업실패로 가지고 있던 차도 팔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수십년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임원이라도 된다면 다시 한번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직장을 퇴사한 후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10년 전 강사가 되겠다고 스스로 들어갔던 교육회사에서 대표님 강의를 쫓아다니면서 오히려 내가 기사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스로 선한 일이라 창피한 건 없었다. 하지만 뒷 좌석에서 강의자료 다듬으면서 준비하시는 대표님을 보며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자극이 되어 더욱 열심히 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 중 부잣집 운전기사로 취직한 송강호

 결국 강사트레이닝 4개월 만에 독립해 1인지식기업가가 되었고 강의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어느 날 그러니까 내 나이 만32세에 거짓말처럼 기사딸린 차를 타게 되는 꿈같은 일이 일어다. 물론 내가 직접 고용한 운전기사는 절대 아니고 삼성전자로부터 강의요청을 받으면서 강사들을 위해 배차해 준 차였다.


 그래도 당시 전문운전기사가 딸린 오피러스가 아파트 현관 앞에까지 픽업을 하러 와 주었는데 그땐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내 차도 아니면서 말이다. 사실 그 당시 우린 차 한 대도 없던 시절이었고 나는 강의를 갈 때마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BMW족이었다. 그래도 BMW가 오피러스보다 건강에는 더 좋았다.

 그렇게 삼성전자에서 예정되어 있던 총5번의 강의 중 첫 강의만 그런 호사를 누렸고 이후 4번은 출근시간 교통체증으로 인해 남양주에서 잠실역까지 버스로 이동해서 배차된 차를 타고 강의장으로 향했다. 뭐 사실 강하게 요구하면 집앞까지 왔겠지만 내가 그런 요구를 할 정도의 위치는 아니었기에 그것마저도 감지덕지였다.

 이후로도 가끔씩 임원급 강의를 하거나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연수원에서 강의를 할 경우에는 감사하게도 전용차량을 집으로  배차해 주거나 택시를 역까지 보내주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나도 10년 전 잠시동안 기사노릇을 해 봐서 그런지 기사님들을 대할 때는 늘 조심스럽고 함부로 무리한 부탁같은 건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속시간에 조금 늦기라도 하면 드링크나 음료수라도 사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솔직히 강의 전후에는 목관리를 위해 말을 아끼려고 하지만 기사님들 중에는 꼭 말을 걸어오시거나 본인 이야기를 굳이 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주고 받다 보면 강의장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목이 잠길 때도 있다.


 그래도 그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또 느끼는 것도 많고 한참 나이도 어린 내가 단지 강사라는 이유로 깍듯이 대해 주시는 어르신들의 서비스 정신에 오히려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 분들은 싸인까지 받아 가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럴 때마다 부담 백배다^^ 그냥 내 이름 석자 밖에 적어드릴 게 없는데...ㅜㅜ

 가끔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기사님들을 만날 때면 한때 기사딸린 차를 타고 다니셨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한때 잘 나가던 은행원에서 모든 걸 잃고 법정파산자가 되었고 다단계에 빠져 살다 결국 그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싸우다 쓰러지셨다. 아마도 돈 때문이었을 거다.


 결국 요양병원에 누운 채 아들이 운전하는 차도 타기 어려운 몸이 되어버린 당신이 한없이 가여울 뿐이다. 다시 건강해 지실 수만 있다면 좋은 차는 아니지만 이제 매일 아들이 기사가 되어 원하시는 어디든 모셔다 드릴 수도 있지만 그저 꿈일 뿐이다.


 기사딸린 차보다 내가 기사가 되는게 이렇게 간절해질 줄이야...


 아버지! 어서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병원방문이 가능해지면 휠체어 기사라도 되어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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