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 기술의 콜라보레이션 Job
디지털 컬러리스트(Digital Colorist)는 2000년 전후 영화 제작이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새로운 직업 중 하나인데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색상 조절을 통해 영화 장면에 최적화된 분위기를 살려 관객에게 스토리의 전달력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디지털 컬러리스트의 작업은 영화 제작 과정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영화가 편집된 후 컬러 입히는 작업을 하는데, 이를 ‘컬러 보정(color correction)’ 또는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낮에 촬영한 장면을 밤에 촬영한 것처럼 바꾸기 위해 빛과 색상을 조정하는가 하면,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영화에서 등장인물의 눈을 특정 장면에서 더욱 파랗게 만들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섬세한 색채 작업까지 모두 컬러리스트가 하는 일입니다. 창의적 예술감각이 필요하겠죠.
영화를 보는 관객은 색상조정 과정을 거쳐 영화가 탄생한다는 걸 잘 모르는데요, 관객이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디지털 컬러리스트는 예술적 재능과 IT 기술력을 모두 겸비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이 두 가지 능력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예술적이면 자칫 영화의 방향성을 잃을 수 있고, 지나치게 기술적이면 스토리의 전달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IT 기술 능력의 경우, 디지털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영화에 컬러를 입히는 작업이 많이 수월해졌는데요. 컬러리스트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은 Photoshop으로 시작하더라도 Premiere, After Effect 그리고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DaVinci Resolve와 같은 컬러 편집 소프트웨어를 익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전문가로 일하게 될 경우 전문 믹싱 콘솔에서 작업하게 됩니다.
예술적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만, 이에 비해 빛과 색을 이해하는데 장시간의 훈련과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컬러리스트 중에는 영화산업 경력자 외에도 사진이나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빛을 이용할 줄 알기 때문에 이 직업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빛과 색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영화 장면을 창의적으로 생동감 있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단순히 색채 감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능을 키워 업계에 입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공보다 중요한 것이 실력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컬러 그레이딩을 했고, 얼마나 능숙하게 표현할 줄 아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색채 기본 이론에 대한 이해, 색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 인간의 시각 시스템 작동 방식, 빛이 디지털 카메라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기술적 이해 등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합니다.
디지털 컬러리스트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장면이나 배우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입니다. 암실처럼 어두운 방에서 스크린을 쳐다보며 장시간 작업하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현업에 종사하는 디지털 컬러리스트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하기 가장 힘든 부분 혹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두 고객 혹은 감독과의 소통을 꼽았습니다. 한 컬러리스트는 자신의 사업 성공 비결이 ‘기술’이 아니라 ‘외향적인 성격’ 때문이라며 원활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고객 혹은 감독의 말을 이미지로 번역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죠.
컬러리스트는 영화 감독이나 촬영감독과 함께 일하는데, ‘이 장면에 이런 문제가 있다’, ‘이런 느낌으로 살려달라’와 같은 요구사항과 문제점 지적을 끊임없이 듣고 그대로 구현해내야 하므로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감독이 ‘이 장면은 더 밝아져야 한다’고 말하면 휘도(어떤 표면에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얼마나 들어오는가와 관련된 양)를 높이는 대신 채도를 높이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너무 따뜻한 느낌이다’라고 말하면 이를 수정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감독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찾아내야 하고, 때로는 전문가답게 거꾸로 제안을 해서 최상의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2000년 전후 생겨나기 시작한 디지털 컬러리스트는 초기에는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아는 것만으로도 수요가 있었지만, 요즘은 소프트웨어를 다루고 색상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보다 차별화된 전문가적 스킬이 필요한데요. 본인만의 창의적인 스타일을 만들고,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줄 알고, 기술을 다루는 실력이 탁월해야 한다고 합니다.
영화시장이 작은 한국에서 디지털 컬러리스트는 소수만 활동할 정도로 용어조차 생소한 직업이지만, 해외에는 Peter Doyle과 같은 존경 받는 컬러리스트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는 Harry Potter 영화 시리즈를 포함해 최고 흥행작 100위 영화 중 열 두 편을 작업했을 정도로 세계 영화시장에서 인정받는 디지털 컬러리스트입니다.
월트 디즈니 등 미국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는 한국인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꽤 있는데요. 디지털 컬러리스트 역시 감성과 기술에 강한 한국인들이 세계시장에 도전해 볼 만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photo copyright. gradekc, wbsl, blackmagicdesign, productionbeast
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직업 트렌드를 매주 월요일 아침에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