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식품으로서의 식물성 고기
비건(vegan)과 채식주의자(vegetarian)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채식주의자는 개인건강, 종교적 이유, 동물애호 등의 이유로 육류나 생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면, 비건은 이보다 더 확장된 개념입니다. 계란, 우유, 치즈처럼 동물을 이용해 생산한 음식도 먹지 않고, 동물 가죽 제품이나 동물 테스트를 거친 화장품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비건이 채식주의자보다 훨씬 적극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비건을 선택하는 이유가 동물복지나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기의식과 식량난 문제 해결에 동참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인구 증가 및 식생활 변화에 따라 전 세계 육류 소비가 2050년까지 7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생산 방법으로는 그에 상응하는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한편, 가축은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배출하고 토지 개간 및 비료는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자동차 배기가스보다 지구 온난화에 더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즉, 축산업을 확장하면 환경을 파괴시키고, 축산업을 축소하면 육류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현재 육류 생산 시스템으로는 향후 식량난 위기를 해결할 수 없고 기후변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의식 있는 사람들은 육류 섭취량을 줄이는 한편, 고기를 대체할 다른 식품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미 익숙하게 길들여진 고기, 햄버거, 소시지, 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죠. 스타트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고기를 대체할 식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기관 투자자들이 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
동물복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비건 인구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비건 인구는 2014년 150,000명(인구의 0.46%)에서 2019년 600,000명(인구의 1.16%)으로 5년 동안 4배 증가했고, 미국의 경우 2004년 290,000명에서 2019년 9,700,00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영국 조사; the Food Standards Agency (FSA) 및 the National Centre for Social Science Research 공동조사. 미국 조사; Ipsos)
현재 전 세계 비건 인구는 1%도 안 되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비건 시장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건은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비건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경우 3명 중 2명이 육류 소비를 중단하거나 줄였고(Reducing meat consumption in the USA: a nationally representative survey of attitudes and behaviours, 2015년 설문조사), 독일에서는 10명 중 1명이 육류 대체품을 구입했으며(Mintel, 2015), 중국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16년부터 육류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맥도날드, KFC, 버거킹, 던킨 등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도 육류를 대체한 메뉴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고, 심지어 아이스크림(하겐다즈), 맥주(하이네켄, 버드와이저 등), 패션(구찌, 샤넬, 버버리 등)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비건 제품을 만들거나 동물에서 얻은 원료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비거니즘(veganism)이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입니다.
채식주의자나 비건만 고기 대체제가 필요할까요? 돼지열병,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 여러 가지 가축 전염병으로 육류 공급에 비상이 걸리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인류 전염병인 코로나19로 미국에서 육류 수급에 큰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육류공급업체 생산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생산시설 대부분이 폐쇄됨에 따라 두 달 사이에 평소 돼지고기 생산량의 25%, 쇠고기 생산량의 10%가 감소해 육류대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코스트코(Costco)는 한 번 구매할 때 육류 3팩 이하, 크로거(Kroger)는 2팩 이하로 제한하는 등 대형마트는 일시적으로 구매 수량을 제한했습니다. 햄버거 체인 웬디스(Wendy’s)와 같은 체인업체들은 고기 공급 부족으로 일부 매장에서 햄버거를 판매하지 못할 정도로 육류 공급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육류 생산공장의 폐쇄로 가축농가 역시 피해가 컸는데요. 판매되지 못한 건강한 돼지를 미네소타주에서만 하루에 1만 마리씩 안락사 시켰다고 합니다. 코로나19는 결국 축산농가, 생산업체, 소비자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 되었고, 육류 공급부족 사태에 대비할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해결방법 중 하나로 고기 대체제가 더욱 주목 받고 있습니다.
현재 육류 대체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일명 ‘콩고기’라고 불리는 것처럼, 식물성 재료를 이용해 고기의 맛과 질감에 가깝게 만든 가공식품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동물에서 채취한 세포를 기반으로 실험실에서 배양한 육류입니다.
식물성 기반의 고기를 만드는 대표적인 업체는 비욘드 미트(Beyond Meat)와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입니다. 둘 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비욘드 미트(Beyond Meat)는 일찍이 비건 육류를 만들기 시작해 시장을 선점했습니다. 2009년 설립해 2012년 제품을 처음 출시했고, 현재는 월마트(Walmart), 타깃(Target) 등 대형마트와 Fridays, Dunkin 등 체인업체에 비건 고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와 세계 최대 육류 생산업체 중 하나인 Tyson Foods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2019년 상장 당시에는 15억 달러(1조 8,0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또 다른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는 2011년 설립되어, 2016년 전통적인 햄버거와 유사한 Impossible Burger를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죠. 최근 돼지고기 대체제도 개발했으며 닭고기, 유제품, 생선까지 비건 푸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타트업은 동물 호르몬, 항생제, 오염물질이 없는 더 건강하고 안전한 고기를 지향하는데요. 임파서블 푸드는 사육된 동물의 육류에 비해 96% 적은 토지, 87% 적은 물을 사용하고, 온실 가스 배출량을 89%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현재 15,000개 이상의 식당에 임파서블 고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육류의 분자 수준에서 특정 단백질과 영양소를 찾아내 식물성 성분으로 구현해내고자 연구 중인 임파서블 푸드는 지금까지 빌 게이츠를 비롯해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총 750,000,000달러(약 9,000억 원)를 투자 받았습니다.
세포 기반 육류를 만드는 선두주자는 2015년 설립된 Memphis Meat입니다. 심장 전문의 Uma Valeti와 세포 생물학자 Nicholas Genovese 박사가 의기투합해 설립했는데요. 동물의 근육에서 육류가 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세포를 채취해 동물의 몸 밖에서 자라게 하는 방법으로 실험실에서 진짜 고기를 재배합니다. 세포에 아미노산, 미네랄,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소를 적절하게 공급해 계속 세포분열하여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결과물은 기존 육류와 동일하지만 동물을 도살하는 대신 동물 세포를 재배해 육류를 생산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세포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되기까지 4-6주가 걸리는데요. 2016년에는 세포 기반 미트볼에 이어, 2017년에는 세포 기반의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2050년까지 10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사육된 가축의 고기를 대체할 식품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Memphis Meat은 빌 게이츠, 리처드 브랜슨을 비롯해 소프트뱅크, Tyson Food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총 181,000,000달러(약 2,000억원)를 투자 받았습니다.
비건 고기는 동물복지나 개인건강을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의 식량안보를 위해 필수적으로 개발되어야 할 식품분야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