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퓨처플레이 FuturePlay Sep 14. 2021

세상은 바뀌는데
내가 속한곳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FP In-sight 석종훈 파트너| 도전이 이끈 곳에 스타트업이 있었다

퓨처플레이의 In-Sight 전달하는 연재 시리즈 'FP In-Sight'  
퓨처플레이 member들의 스타트업 씬과 업(業)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활짝 오픈합니다.

이번 주 In-Sighter는 퓨처플레이 Operation Group Lead를 맡고 계신 석종훈 파트너의 시선입니다.



퓨처플레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석종훈' 청와대 중소벤처비서관을 마치고 퓨처플레이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전한 기사 제목이었다. 3년 동안 공직에 있었지만, 정보통신 담당 기자, 포털 전문 경영인, 몇 차례의 창업 등 주된 활동 영역이 스타트업계였으니 '돌아온' 건 맞다. 그런데 회사 안팎에서 여러 사람들이 "왜?"냐고 물어왔다. '(다른 공공분야에서 일하지 않고) 왜 스타트업계로 돌아왔느냐? 민간 업계 가운데에서도 액셀러레이터 업계, 그 가운데서도 퓨처플레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출처: flaticon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 일과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공직 생활을 했더라도 돌아갈 곳은 '당연히' 민간 분야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런데 '왜?'냐는 질문을 받고 나니 퓨처플레이에 합류하기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꿈은 '기자'였다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뉴스와 화제, 정보의 중심에선 인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멋져 보였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중-고교 시절 교지를 만들었고, 대학에서는 학보사 편집국장까지 지냈다. 그리고 86년 기자 시험에 합격해 경향신문사에 입사했다. 


당시 기사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오른쪽 기사, 오른쪽 두 번째 줄, 두 번째 이름이 '석종훈'/ 출처: 경향신문)


이때까지는 '도전'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기자 생활 3년이 지날 무렵, 조선일보에서 이직 제의를 받게 됐다. 가장 많은 독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기사의 영향력은 결국 '독자수'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한편으로 이직에 따른 두려움도 컸다. 지금은 기자들이 소속 언론사를 바꾸는 일이 흔하다. 당시에는 수습기자로 입사한 언론사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드물었다. 남들도 별로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나? 그곳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냥 안정된 이곳에 머무는 것이 최선 아닐까? 도전이 가져올 달콤한 열매와 감수해야 할 위험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회사를 옮겼다. 인생의 항로를 바꾼 결정적 순간이었다. 


도전을 결행하는 것은 성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있다. 다행히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했고, 95년에는 정보통신팀장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보화를 선도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마침 벤처 붐이 일기 시작해 스타기업인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그 주역은 인터넷과 벤처 기업이 될 것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첫 번째 도전의 성공에 자신감이 붙었다. 


정보화 사회의 시작을 알린 기사 전면 (출처: 조선일보)

인터넷이 가져오는 변화의 물결은 거침이 없었다. 엔터테인먼트가, 상거래가 속속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어떻게 될까? 지면에서는 '정보화는 앞서가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미디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침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1년간 연수할 기회가 있었는데, 인터넷 미디어가 대세가 될 것이 확실했다. 돌아와서 그런 변화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상은 바뀌는데, 내가 속한 곳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또다시 도전을 꿈꾸었다. 마침 지인이 실리콘밸리 지역의 기술, 기업, 자금, 사람의 동향을 다루는 온라인 미디어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솔깃했다. 그러나 '포기할 것'이 만만치 않았다. 국내 최대 일간지 기자라는 자리는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고,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직장인으로서의 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영어도 서툴고, 프로그래밍도 모르면서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마침 주위에서 여러 사람이 속속 벤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넉넉한 투자금까지 선뜻 내주는 사람도 있었다. 첫 번째 도전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던 것에서 용기를 얻었다. 2000년 1월 가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2000년 4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나스닥이 폭락했다. 스타트업 현장의 정보에 대한 수요가 뚝 끊어졌다. 1년 만에 회사를 접었다. 이듬해 남은 돈을 털어 이민, 유학, 관광, 사업차 미국으로 오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플랫폼 'CometoUSA.com'을 시작했다. 9월 911 테러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Nobody CometoUSA'가 됐다. 도전은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실행이 뒤따라야만 의미가 있다. 여기에 시기도 적절해야 하고, 운도 필요하다. 


깨달았을 때는 치명상을 입은 뒤였다. 불안한 거주 자격, 줄어가는 통장 잔고로 마음은 불안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소식을 들은 한국에서 몇몇 제안이 왔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있었다. 다음 창업주 이재웅 대표는 "인터넷이 훌륭한 미디어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서비스를 통해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합류를 제안했다. 스타트업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인터넷 미디어가 성공할까? 또 도전하기로 했다. 



2003년 3월 '미디어다음'을 만들었다

당시 다음의 뉴스 페이지뷰는 하루 70만 뷰 정도였다. 연말까지 목표를 3000만 뷰로 정했다. 동료들이 동그라미 하나를 잘못 붙인 것이 아니냐며 목표를 낮추자고 했다. 자신 있었다. 그 해 말 하루 페이지뷰는 3700만 뷰로 올랐다. 토론 플랫폼 '아고라'는 인터넷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정보를 전하는 광장으로서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많은 동료들 덕분이었지만, '실리콘밸리 뉴스'의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실패로 끝난 줄 알았던 도전이 값진 자산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다음 대표이사 시절

6년 동안 다음에서 대표이사-이사회 의장을 거치는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을 벌였다. 지도 서비스는 성과를 거두었고, 동영상은 중도에서 접었다. 곧 모바일 서비스가 대세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승부를 걸 상황이 되지 못했다. 시총 1조 원 상장기업 CEO는 정말 그만두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런데 모바일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 창업해서 성공해 보겠다는 욕심이 다시 실리콘밸리로 이끌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지식 나눔 플랫폼 아이디어는 현지 VC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아이디어를 실현할 개발자를 합류시키지 못한 대가가 컸다. 




한국으로 돌아와 비슷한 사업을 계속하다 이번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청와대 비서관으로 옮겨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공공부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민간에서 공공부문으로 갔다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민간 쪽에서도 평가나 나빠지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본 터라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민간의 경험을 스타트업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실장실을 훈CAFE로!

민간과 공공 영역은 업무 방식, 조직문화, 이해관계 조절, 의사결정 속도까지 많이 달랐다. 그래도 민간의 시각을 공공에 이식하려 노력했다. 실장실을 '훈카페'로 만들어 직원들이 편하게 의견을 나누도록 했고, 젊은 공무원들로 주니어보드 '혁신만 열 번째'를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혁신을 추진하도록 했다. 제2벤처붐이 활성화되는 작게나마 기여하는 보람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도전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맡았지만, 모든 도전이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의미 있는 성취도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공직을 마친 뒤 퓨처플레이 합류 기회가 생겼을 때, 이 길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은 스타트업을 찾아내 잘 키우는 일은 유망하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좋은 인력을 발굴해, 키워가는 '휴먼 액셀러레이팅'을 키워보자는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퓨처플레이에 합류한 뒤 얼마 지나 경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30년이 넘는 지나간 일을 돌아보니 도전과 그 결과로 요약됐다. 기사 제목이 '부담 없이 도전하면 예상 밖의 인생이 펼쳐진다'로 뽑혔다. 이후 후배 창업자들을 만나면 "부담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고, 인생이 선물하는 예상 밖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이야기한다. '도전을 응원하고, 그 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곳, 퓨처플레이'. 최고의 도전 장소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석종훈 JongHoon Seok


경향신문 기자

조선일보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뉴스 창업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나무온 설립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

현 퓨처플레이 COO 및 파트너 







또 다른 인사이트가 필요하다면?

https://brunch.co.kr/@futureplay/168


매거진의 이전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플리'로 홍보하는 MZ세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