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퓨처플레이 FuturePlay Mar 25. 2022

진흙탕 정글에서 맘껏 즐기는 법

FP In-sight 김성도 리드_꿈공장 퓨처플레이의 성장을 돕습니다

퓨처플레이의 In-Sight 전달하는 연재 시리즈 'FP In-Sight' 
퓨처플레이 member들의 스타트업 씬과 업(業)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활짝 오픈합니다.

이번 주 In-Sighter는 퓨처플레이 Corporate Development Team의 김성도 리드입니다.





"여기는 정글이고 피바다예요. 유혈이 낭자한 곳입니다."


"여기는 정글이고 피바다예요. 유혈이 낭자한 곳입니다."


퓨처플레이에 합류하기로 하였을 때, 임원진 인터뷰에서 중희(퓨처플레이 CEO)가 한 말씀이다. 


"저도 나름 공공분야에서 민관협력분야로, 이후에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면서 조금씩 피바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잘 적응할 자신이 있습니다."


실제 정글 진흙에서 뒹군지 9개월차인 지금, 그 답은 조금 달라졌다. 




나의 어릴 적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유학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자상한 의사 선생님께서 왔다 가신 다음날 아픈 엄마의 몸이 많이 나아지시는 걸 보며 의사선생님이 마치 내 세상을 구해주는 슈퍼히어로처럼 느껴졌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슈바이처박사의 위인전기를 읽고서는 확신이 들었다. '의사가 되면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구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겠구나.'


몸이 약하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어 결국 의사의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는 그 목표만은 그대로였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하고, 불안한 국제정세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사회계열로 대학에 입학하였고, 전공을 선택할 즈음에는 제대로 법적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법학을 전공하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은 곳은 외교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였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당시만 해도 국제개발 협력에 큰 뜻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궁극적인 목표인 소외계층을 돕는 일이었기에 진심과 열정을 다할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각종 국제협력업무는 매일이 다이내믹하고 새로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서아프리카 지역에 각 분야 인프라를 다지기위해 아무도 가보지 못한 국가에 출장을 가는일도 잦았고, 매일 다른 국가들과의 국제협약, 계약과 분쟁을 다루기도 해보았다. 그러다 2015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프로젝트를 만났다. 



개발도상국의 문제를 해결할 기술 스타트업을 찾습니다


2015년, 나는 운명처럼 외교부 최초의 ‘개발도상국 문제를 해결할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지원하는’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코이카는 유엔에서 2015년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발표한 후 중요성이 높아진 의제인 ‘과학기술을 활용한 개발협력문제의 해결’을 위해 파괴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를 해야할 필요성을 내부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부사업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암암리에 돌아다닐 정도로 늘 비슷한 대기업들이 수주해가고,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며, 고만고만한 성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이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플레이어가 국제개발협력의 판에 들어오게 해야겠다는 당시 김영목 이사장님의 앞서나간 생각 덕분에 CTS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CTS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기술총괄팀, 역전의 용사들


개발협력만 해봤던 내가 스타트업에 대해서 뭘 알 수 있었을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코이카 최초의 영업사원이 되어, 많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인큐베이터, 창업지원센터 등을 돌아다니면서 자문을 구했다. 그 중 하나가 퓨처플레이였고, 당시 퓨처플레이 공동 창업자이신 한재선 CTO께서는 스타트업의 ‘스’자도 모르던 나에게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자상하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퓨처플레이에서 발굴한 초기 기술스타트업들을 많이 소개해주시기도 했는데, 덕분에 CTS 1,2기 선발 스타트업 포트폴리오가 정말 훌륭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뷰노, 만드로, 오비츠비트센싱 등이 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CTS를 통해 창업한 1개 기업에 퓨처플레이에서 후속투자를 하기도 했는데, 그 기업이 바로 최근에 상장한, 나와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주)노을이다. 


노을 대표님과 사업계획서 작성 멘토링 중


CTS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선발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필연적으로 CTS 1-2기 스타트업 대표 및 핵심멤버와는 출장도 함께 자주 가고, 밤낮없이 서로 연락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동안 옆에서 지켜본 그들은 그간 수많은 방법들을 통해 코이카가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을 정말 새로운 시도와 방법으로 해결해 나갔고, 이것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총 인원수 4-5명정도의 작은 스타트업이 개발도상국에 가서 영리사업을 추진하면서도 더 많은 현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법과 IP, 내가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찾다


2018년 여름, 파트너로서 3년간 친밀하게 일했던 게이츠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에서 한국에 재단을 설립하고, 한국기업/연구소에서 국제보건문제를 해결할 기술의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며 창립멤버로 조인하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코이카에서는 필연적으로 보직순환이 이루어지는데, 2018년은 내가 혁신사업실에 재직한지도 벌써 3년째가 되는 해였으니 이제 정든 스타트업씬을 떠나야하는 상황이었다. 


노스웨스턴 에반스턴캠퍼스 앞에서

도저히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커서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RIGHT Fund가 한국에 안착하는 1년동안 창립멤버로 투자실장을 맡아 연구개발 공모사업을 추진하였다. 민간의 외국계 재단에서 투자실장으로서 일을 해보니, 법적 관계와 IP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보다 전문성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회사일과 병행하여 KAIST의 지식재산대학원과 시카고의 Northwestern University의 로스쿨을 다니게 된 계기이다. 


치열하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중, 시카고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일정이 점점 많아졌다. 당시만해도 원격근무가 흔치않았던 시절이고, 창립멤버가 매우 소수인 상황에 공백이 자주 생기는 것이 부담되어 아쉽지만 RIGHT Fund에 작별을 고하였다. 당시 CTS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하신 (주)노을의 대표님들과는 계속해서 교류가 있었는데,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니, 대표님들이 바로 이사한 노을의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이 업무는 성도 실장님밖에 할 수 없어요. 계속 재택이나 원격근무로도 할 수 있는 업무니 함께해요."


당시 내 상황에 너무나 상냥하고 달콤한 제안이었다. 전혀 고민도 없이 감사하게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2019년 11월부터 원격, 재택근무를 일찌감치 경험하게 되었는데, 같은 시기 내 인생의 가장 크고 행복한 사건이 터졌다. 노을에 입사하기 바로 전날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루말할 수 없이 기쁜 소식이었지만, 임신한 몸으로 시카고를 오가며 로스쿨을 다니기는 어려우니 학업의 꿈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덕분에 나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며 무사히 산후 조리원에서 논문을 써가며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미국 변호사시험도 유례없이 원격으로 치룰 수 있게 되었는데, 논문 제출 후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준비하다보니 낮에는 육아, 새벽밤에는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할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운좋게 초시에 미국 워싱턴 D.C.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제로투원이 마피아의 재질이라면, 저는 타고난 퓨처플레이 마피아입니다


코이카에서 CTS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론칭할때,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 두 분 계시다. 바로 퓨처플레이의 전 CTO셨던 한재선 그라운드X대표님과, 당시에는 D.Camp에서 CTS프로그램을 추진하는 파트너로서 함께 업무했던 진(현 진승훈 퓨처플레이 SEA 팀 리드)이다. 


2021년 복직이 가능한 시기가 도래했을 때, 감사하게도 친분이 있는 몇분께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주셨는데, 그 중 진승훈 리드가 제시한 비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진승훈 리드는 당시 퓨처플레이에서도 작게는 ESG를 키워드로 하는 사업이, 크게는 글로벌하게 B2O사업으로의 확장이 필요할거라는 큰 비전을 공유하며, 퓨처플레이에 합류해서 그런 자리를 만드는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었었다. 그러나 당시 퓨처플레이에서는 지금의 사업개발,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의 영업 역할을 담당할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오퍼가 그 영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돌고돌아 나는 퓨처플레이에서 사내 변호사로서 법무와 함께 결국 지속가능경영과 ESG투자를 담당하게 되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해외를 대상으로 하는 업무들을 맡게 되었다. 아무래도 진승훈 리드가 제시한 비전이 운명이었던 것 같다.


공공분야에 오랜시간 몸을 담으면서, '정책'을 통해서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CTS 프로그램, 스타트업을 통해 결국 사회에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것을 환원하고, 소외계층을 돕는 방안은 한 가지의 정답이 있는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번 종화의 FP Insight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교육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라는 문장을 보고, 여기서도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하는 동질감을 느꼈다. 


2021년 7월 퓨처플레이에 합류하여 3개월동안은 중희께서 인터뷰에서 하셨던 말씀을 통감하였다. 피바다와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며 어떻게든 생존하려고 노력했다. 2021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현재의 법무, ESG와 Compliance, 해외업무 등을 중점으로 사내 변호사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업무는 많지만 돌고돌아 내 삶의 궤도를 다시 찾아온 기분이다. 의사, 국선변호사, 국제개발협력 종사자, 연구개발투자자, 바이오 스타트업의 어드바이저, ESG담당자…. ‘직업’은 다르지만 결국 소외계층을 돕고 사회에 내가 받은만큼 환원하겠다는 궁극적인 부름에 답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법무와 해외주주대응을 하다보니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지고, 퓨처플레이에 대한 애착이 스멀스멀 커지고 있어서 퓨처플레이에 합류한 이후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난 지금, 내 꿈은 많이 바뀌었다. 최우선순위는 내 아이가 미래에도 걱정없이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환경, 사회적으로 나은 미래가 필요하고 나는 그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퓨처플레이는 지속가능한 미래산업을 창출해내는 신기한 꿈의 공장이다. 이 꿈의 공장이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도록 옆에서 도우면서, 동시에 여기서 10년내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미래사업의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것이 나만의 비밀스러운 목표이다.


이제는 중희의 피바다 멘트에 대해서 이렇게 답해드리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걸 만들어내는 것이 제 경험이고 체질이에요. 제로투원이 마피아의 재질이라면, 저는 타고난 퓨처플레이 마피아입니다."




최근 상장한 퓨처플레이 포트폴리오사인 (주)노을과 김성도 리드의 깊은 인연을 담아, 작은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Q. 노을과의 인연이 깊으신데요.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스타트업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던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처음 이동영대표를 만난건 구글 서울스타트업 캠퍼스에서였어요. 당시 저는 CTS프로그램 홍보를 하고 있었어요. 굉장히 스마트하게 생기신 분께서 연속해서 매우 deep한 질문을 주시더라구요. 설명회가 끝나고 굳이 제게 찾아와서 명함도 받아가셨고요. 최근 저에게 말씀주시길, 본인은 그때 진짜 저한테서 후광이 비치는것 같았대요. 창업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고민이 많았는데 길을 열어줄 사람으로 보였다고 하네요(웃음) 이후 제안서를 쓰시면서 계속해서 연락을 주시고, 당시 서울대 실험실에 계셨었는데 실험실에 초청해주셔서 본인의 아이디어에 대해 엄청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이미 그때 이분은 사고를 쳐도 크게 치실 분이구나 직감했죠.

CTS 1기를 뽑을 때 정말 쟁쟁한 스타트업들이 많았는데, 이동영대표는 당시 아직 창업도 하지 않은 예비창업자였는데도 아이디어와 카리스마만으로 당당하게 지원기업에 선발되었고요. 이후 3년동안 캄보디아와 말라위 등 수많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함께 출장도 자주 다니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것을 가까이서 항상 돕는 입장이었다보니 약간 보모와 같은 감정으로 노을을 항상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노을은 그래서 항상 제게 특별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창업목적부터가  '말라리아를 퇴치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걸 만들어봤는데 우연히 개발도상국에도 괜찮은 물건일 것 같아요'라는 식의 접근과는 차원이 달랐죠.

Q. 노을이 상장을 했는데 감회가 어떠신가요? 앞으로 노을에 대한 기대감을 전해주세요.

배아파 낳은 자식이 존스홉킨스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정작 제 진짜 아기는 아직 2돌도 안되었지만요) 왜 의대 합격에 비유하냐면, 전도유망한 길의 '시작'에 오른 느낌이거든요. 대학졸업도 해야하고, 레지던스와 인턴을 거쳐 전문의 시험도 합격해야하고...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시작점을 통과했다는 기쁨이 있어요. 저는 노을이 혈액을 통한 질병 진단기법의 근본적인 혁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어요.








김성도 Sabinne Kim

미국 Washington D.C.주 변호사

• (주) 노을/ Global Business Advisor

• RIGHT Fund /(재)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 / Director of Investment Planning and Management / 투자기획실장

• KOICA  혁신사업실 과장

• Northwestern Pritzker School of Law / LLM

• KAIST / 공학석사

• 연세대학교 / 법학사

매거진의 이전글 창업가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정거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