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음반
정말 좋아하는 음반이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은 음반이지만, 소개하기가 약간 주저되는 음반입니다. 왜냐하면 시중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09년인가 BBC Magazine이라고 영국에서 발행하는 클래식 음악 잡지에서 부록으로 제공한 음반이거든요. 이제 막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음반도 사고 잡지도 사고 그럴 때 우연히 만난 음반입니다.
이 녹음 당시 파벨 하스는 이제 막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평균 연령이 30 정도였다고 하네요. 당연히 저도 이 음반을 통해 파벨 하스 사중주단의 이름을 들었고요. 하지만 이후 드보르작 현악 사중주 음반이 2011년 그라모폰의 올해의 레코드로 뽑히는 등 나오는 음반마다 주목받는 사중주단으로 성장했습니다. 올해도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야 워낙 잘 알려진 음악이기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베토벤은 평생 16개의 현악 사중주를 남겼습니다. 1번부터 6번을 초기, 7번부터 11번을 중기, 12번부터 16번을 후기로 분류합니다. 이 음반은 4번과 11번 그리고 16을 담고 있습니다. 초기와 중기, 후기에서 한 곡씩 선택했지요. 트랙 순서는 4번, 16번, 11번 이렇게 되어있네요. 16번이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이고 이 곡의 4악장이 마무리로는 참 좋기에 16번이 마지막을 마지막에 두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11번을 마지막에 둔 이유가 있겠지요.
파벨 하스 연주의 특징은 공격적인 연주입니다. 느린 악장이라도 너무 끌지 않고, 때로는 날카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쾌한 소리를 들려줍니다. 이런 특징은 이 음반뿐 아니라 그들의 다른 연주에서도 나타납니다. 젊은 연주자들이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베토벤의 모든 음악이 좋지만, 현악 사중주는 계속 파도 끝이 없는 우물과 같습니다. 처음 들어도 참 좋다는 느낌으로 즐겨 들을 수 있고, 오래 들어도 익숙해져도 계속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클래식 음악을 계속 듣다 보면 마지막으로 현악 사중주를 듣는다는 말이 있죠. 정해진 원칙은 아니지만, 그만큼 이 형식이 주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 굳이 피할 이유도 없지요. 언제든 즐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낯선 느낌을 주기에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가 대단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 16번의 4악장에 베토벤이 이런 메모를 남겼다고 하죠. "Muß es sein?" - "Es muß sein!" - ""Der schwer gefaßte Entschluß" (독어는 전혀 모르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 그래야만 해 - 어려운 결정이군.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던 베토벤의 모습이 곡 속에 보이는 듯합니다. 다른 멋진 연주도 있지만, 파벨 하스의 연주가 그 철학적 사유를 잘 담아낸다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이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파벨 하스 사중주단의 인터뷰를 보니 베토벤 현악 사중주를 당분간 집중적으로 연주한다고 하네요. 멀지 않아 이들이 연주한 베토벤 현.사. 전집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