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차, 목도리, 그리고

그와 그녀의 만남 일곱 번째 이야기

by 쉐아르

재호는 출장을 많이 다녔다. 다음주도 월요일 아침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평소에는 일요일 오후에 출장지로 내려갔는데 이번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토요일엔 선약 때문에 만나지 못했기에 오늘은 만나고 가고 싶었다. 갑자기 재호의 앞에 나타난 인숙.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일주일을 떨어져 있으면, 또 그렇게 갑자기 사라질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재호는 다른 동료를 보내고 혼자서 밤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열한 시 밤차를 타면 새벽에 도착해서 몇 시간 자고 일을 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열 시 반에는 서울역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 재호의 머리 속에는 인숙과 몇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계산을 하고 있었다.


* * * * *


일요일 오후. 청년부 회의를 마친 인숙이 재호를 만난 것은 여섯 시가 다 되어서였다. 인숙의 하숙집에 가까운 회색도시라는 카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교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카페이기에 선택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재호와 인숙은 두 번째의 개인적 만남을 시작했다.


직접 얼굴을 보면 쑥스럽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카페 문을 들어섰지만,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갑작스런 고백이 만들어낸 당혹감보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재호와 인숙은 할 이야기가 많았다. 재호는 인숙을 알아가고 인숙도 재호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재호는 인숙과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했고 인숙과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생각들, 미래에 대한 계획과 희망을 나누며 인숙도 재호도 서로에게 더 다가가고 있었다. 인숙은 재호에게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말란다. '당연하지' 재호는 생각했다. 재호는 인숙을 만난 후에 사랑 없는 결혼이라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난다. 재호가 기차역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여행 가방 하나 들고 길에 서 있는 재호. 인숙과 헤어지기가 참 싫다. 재호와 인숙은 한참 동안 그렇게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숙을 통해 재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을 배웠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 일주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시간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 * * * *


인숙은 여행가방 하나 들고 밤차를 타러 가려는 재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니 그렇게 길에 서서 망설이는 모습 속에 자신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재호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이대로 재호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재호에게 인숙이 추워보인다며 자기 목도리를 벗어서 재호의 목에 둘러주었다. 밤색 체크무늬 목도리였다. 소리를 내어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 모습이 재호에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요. 이 목도리가 오빠와 함께 있듯 나도 오빠 곁에 있을게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 * * * *


기차를 타고 밤에 여행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잠자리도 편하지 않고, 밝은 불에 타고 내리는 사람 때문에 편하게 잠을 잘 환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재호에게 그 여행은 어느 때보다도 기분 좋은 여행 중의 하나였다. 재호는 다시 한번 자기 목에 걸린 목도리의 감촉을 느꼈다. 재호의 맘에 더 이상 망설임이나 걱정은 없었다. 인숙이 재호의 목도리를 매는 순간 서로가 연결되는 것을, 평생 인숙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쉬운 것은 일주일 동안 인숙을 볼 수 없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 * * * *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이 갑자기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둘이 만나 얼굴 보며 시간을 보낸 건 두 번 밖에 안되지만, 마치 오랜 시간 같이 지낸듯한 사람. '벌써 정이 들었나?'하는 생각에 웃음 짓던 인숙은 앞으로 몇 번이라도 그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안쓰러워서, 사랑이 없는 결혼만은 말리고자 만나는 건데...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일주일 전에는 옆에 없었던, 아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람.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만남은 인숙의 평온했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이전과 다른 길. 새로운 시작. 그 길이 어디로 갈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이 재호와 평생 같이 하는 것이라면 거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목 주위가 허전해졌나 밤 공기가 차갑다. 하지만 인숙은 그 차가움이 오히려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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