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만남 두 번째 이야기
재호는 교회를 떠났다. 안 좋은 일로 떠났건 아니고 매형의 교회 개척을 도와주기 위해 잠시 옮겼었다. 이년 동안 다른 교회를 다니는 동안 재호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갔다. 담석을 오래 가지고 있던 재호의 어머니는 담석을 제거한 후에도 건강이 그렇게 좋아지지를 않았다. 집도 다른 동네로 이사했다.
재호에게는 세 명의 누나가 있다. 재호의 부모는 늦게 본 재호를 빨리 장가보내고 싶어 했다. 어머니 건강도 안 좋았고 게다가 재호는 삼대독자가 아닌가? 직장을 들어가자마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보라는 성화가 시작됐다. 짧은 시간이지만 선도 보고 소개팅도 하고 여러 명을 만나보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귀어 보자 무작정 들이대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만남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1993년 열한 번째의 만남을 가지자 재호는 좀 짜증이 났다. 지쳤다고 할까? '그냥 이 여자랑 결혼해 버려? 뭐 남녀 사이가 별게 있겠어? 살다 보면 정도 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선으로 만난 여자다. 하지만 둘이 동갑이라 말 놓고 편안히 친구처럼 몇 번을 만났다. 여자 부모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고, 재호도 싫다 좋다 부정도 안 하니 재호 부모도 이제는 짝을 만났나 보다 생각했다. 중매쟁이도 한 껀 올리나 싶어 양가 부모의 상견례까지 주선하고 이러다가 재호는 정말 그녀와 결혼까지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 * * *
인숙은 계속 그 동네에 살면서 같은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이제는 친구도 제법 생겼고 청년부의 임원까지 맡게 되었다. 인숙이 이 교회를 다닌 이유는 인숙의 아버지 때문이다. 그 교회 목사님이 인숙의 고향인 울산에 들렸을 때, 인숙 아버지가 그분 대접을 하면서 서로 연이 닿았고, 인숙 학교가 교회 근처다 보니 그곳에 다니라고 적극 추천을 하신 것이다. 학교 졸업하고 굳이 그 동네에 살지 않아도 될 인숙이 계속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이유는 교회 때문이었다.
* * * * *
1993년 12월 5일
그날도 인숙은 청년부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청년회실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재호가 들어왔다. 무슨 사정이 있다고 교회를 옮겼던 재호가 얼마 전에 다시 청년회로 돌아온 것이다. 인숙은 재호를 볼 때마다 고개 돌려 자기에게 인사하던 사람 좋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재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은 인숙은 재호가 좋게 보이지많은 않았다. 선배 언니와 사귀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또 인숙의 동기와도 한번 사귀었다가 헤어졌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바람둥인가...? 어울리지 않게.
"오빠. 직장 들어갔으니까 한 턱 내야지. 언제 한번 밥 얻어먹으러 가야 되겠네." "그래? 언제든지 와. 올 때 전화하고."
재호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인숙의 친구가 농담 삼아한 소리에 재호는 선선히 응락하며 명함까지 돌렸다. 자기에게까지 명함을 주는 재호를 보고 인숙은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었다. '직장 들어갔다고 유세 부리나? 촌스럽게 명함은.'
* * * * *
교회에 다시 돌아갔을 때 재호는 인숙을 보고 조금 놀랐다. 재호가 회장을 맡고 있을 때 몇 주 나오다가 보이지 않던 인숙이 지금은 청년회 임원이 되어있었다. 교회에 와서 말도 없고 조금은 도도해 보여 제대로 말 한번 붙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캐주얼한 옷차림에 좀 더 쾌활해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예뻤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재호는 또 겉으로 담담한 척을 해야만 했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가고 있을 때, 혜인이가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물론 혜인이는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겠지만... 직장 들어갔으니 한턱내라는 소리에 재호는 당장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인숙도 포함해서. 그러면서 속으로 외쳤다.
"미안하지만 다들 전화 안 해도 돼. 사실 이건 인숙 너한테만 주는 거야."
인숙이가 전화를 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재호는 양가 상견례까지 한 여자와 인숙을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살다 보면 정이 들 거라는 마음에 지금까지 왔는데...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떠밀리듯 흘러가던 마음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