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만남 세 번째 이야기
월요일 아침. 재호는 자신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명에게 명함을 주며 연락하라고 한 것인데, 꼭 인숙이 자기에게 연락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한턱 내라고 한건 인숙이 아닌 인숙의 친구였는데. 그래도 재호는 인숙의 전화를 기다리며 오전을 보냈다.
당연하다는 듯이 기다리던 전화가 왔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은 인숙이 아니었다.
"오빠. 저녁 사준다고 했죠? 언제 가면 돼요? 나 뭐 부탁할 것도 있는데... 수요일날 괜찮아요?"
인숙의 친구였다. 너 밥 사주겠다고 명함 돌린 것 아닌데... 어쩌나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재호는 수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금요일에는 선으로 만난 정희를 만나기로 했다. 수요일, 금요일 각각 여자와 만날 약속이 있지만 이게 뭔가. 전혀 기쁘지가 않다. 집에서는 약혼식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정희. 갑자기 정희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호는 벌써 헤어짐을 예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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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인숙은 재호가 준 명함을 꺼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편안한 인상을 주는 재호. 자기에게 명함을 주면서 "꼭 연락해"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던 재호에게 밥 한 끼 얻어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이번 주에는 언제 시간이 비나? 오늘은 늦게 끝나고, 수요일도 늦고... 마침 화요일은 수업이 다섯 시에 끝났다. 그래 내일 정도면 좋겠네 하고 인숙은 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인숙인데요? 연락하라고 하셨죠? 어때요 내일 저녁에 저 일찍 끝나거든요."
"내일 나도 아무 일 없는데. 잘됐네. 그럼 내일 여섯 시에 만나."
재호가 너무 선선히 응낙을 해서 오히려 인숙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 남자는 할 일도 없나? 뭐 이렇게 좋아해? 뭐 어쨌든 저녁 한 끼 얻어먹게 됐네? 비싼 것 사 달라고 해야지...' 재호와의 만남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도 인숙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신선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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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숙의 전화를 받은 재호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인숙이와 첫 만남을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김칫국이다. 분명히 상대는 밥 한 끼 얻어먹자는 것일 텐데... 그래도 재호는 인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뭘 할까? 어떤 모습으로 나갈까?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재호는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키도 작고 얼굴도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를 좋아할까? 인숙이는 나보다 키도 큰데? 그런 걱정도 들고... 어쨌든 걱정반 기대반으로 재호는 화요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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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화요일. 기다렸던 화요일이었지만 재호는 아침부터 우울했다. 아침 일찍 인숙이 오늘 못 나가겠다고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될 수 있는 데로 실망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담담한 억양으로 통화를 마쳤지만, 재호는 왠지 자기에게 오던 기회가 다시 멀어져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나한테 그런 행운이 오겠어하는 마음도 들고 어쨌든 우울한 하루였다.
점심 후에 팀장이 재호를 불렀다.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울산 근처 언양으로 출장 계획이 잡혔다. 일주일이다. 다음주에는 인숙이 시간이 된다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주 두 주 지나가 버리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인연이 아닌가?
재호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겨우 며칠 지내고서 서로 목숨을 걸만큼 사랑할 수 있는가? 그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려놓은 상대방의 허상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주위의 방해 없이 계속 사귀었다고 해봐? 아마 둘이 서로 싸우다가 성격차이로 헤어졌을걸? 적어도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사계절은 같이 보내야지.
하지만... 둘이서 밥 한 끼 먹은 적 없었지만... 인숙과 흐지브지 되어버린다면 재호는 평생 아쉬움 속에 지날 것 같았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적어도 운명이 정한 그 사람을 만날 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지 않을까? 인숙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인숙과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을 더욱 더 아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