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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Dec 22. 2016

글 쓰기의 단계와 패턴

쉐아르의 글 쓰는 법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 같은 개인 매체에 글을 써 보면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기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글 쓰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렇기에 정답처럼 제시할 수 있는 글 쓰기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이의 글 쓰는 법을 참조하고 소홀히 한 점을 깨닫는 것도 글쓰기를 향상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쓸 때 거치는 일정한 단계가 있고, 자주 사용하는 패턴이 생기더군요. 예전에도 제가 글 쓰는 법을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글을 쓰며 조금 나아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글을 쓸 때 거치는 단계와 사용하는 패턴을 정리해봅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주 대상이지만 그 외의 글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0. 준비작업

'Finding Forrester'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숨어 살던 천재 작가 포레스터는 제자 자말에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쓰기 시작하라고 합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권하는 영화입니다.) 타이프라이터에 손을 올려놓고 쓰기 시작하면 생각이 저절로 따라온다는 거지요. 맞습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줄에 딸려 나오듯 떠오르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머리 속에서 생각하며 글을 준비합니다. '생각이 넘쳐흐를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제가 만족할 수 있는 글이 나옵니다. 대부분 전체적인 구성을 머리 속에 잡아 놓습니다. 주제와 논거를 정하고, 간혹 시작하는 문장과 마무리 문장까지 미리 정하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 보면 변경될 때가 많지만 원래 구상했던 요소는 버리지 않고 사용합니다.    


당연히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책을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혹은 일상생활에서 글의 소재나 주제를 얻습니다. 항상 대여섯 가지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르면 Things라는 태스크 매니저에 '쓰기:'로 시작하는 태스크를 만들어 둡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죠. 요즘은 글을 몇 군데 보내다 보니 이 과정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생각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는 글 쓰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1. 생각 정리하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서 구성이 잡히면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정도의 분량은 한 번에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더군요. 또 생각을 바로 글로 쏟아내는 게 좋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얼마 전부터 스크리브너(Scrivener)를 사용합니다. 블로그 글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놓고, 이것 저것 모두 모아둡니다. 다른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인덱스카드를 지원하기에 생각이 흩어지기 전에 잡아두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스크리브너 이전에는 마인드맵을 사용해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정리 작업의 중요성은 커집니다. 소설이나 시리즈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군데에 모아놓고, 앞 뒤의 글을 쉽게 참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문적인 글쓰기 툴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 조사 및 팩트 체크


이 단계가 필요 없는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실이나 주장을 담으려면 꼭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검색하면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 정도의 노력 없이 잘못된 사실이나 주장을 적는 건 지독한 게으름입니다. 


민감한 글을 쓸 때는 특히 조심합니다. 저도 주장이 강한 편이라 한 편으로 쏠리기 쉬운데 최대한 양쪽을 다 고려하면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양비론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양비론은 비겁한 글을 만들어냅니다.) 한쪽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반대쪽을 충분히 고려함으로 글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올바른 주장이라도 잘못된 사실을 담는다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3. 초벌 작성하기

생각이 충분히 익었다 싶으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을 쓰는 순서야 사람마다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간혹 결론을 먼저 쓰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처음부터 순서대로 쓰는 걸 선호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글을 쓰면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 나오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미묘한 희열을 느끼죠. 머리 속에 감추어져 있던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아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는 것 같거든요. 


제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의식하기보다는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니 '아 이렇게 쓰는구나'하고 느낀 것이 더 많습니다. 


최대한 문장을 짧게 씁니다. 여러 줄 넘어가는 문장은 거의 없습니다. 길어야 열 단어 정도에서 끝은 냅니다. 이렇게 쓰면 생각이 더 간결해지는 것 같습니다. 단정적으로 들리는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서평이나 리포트 형식의 글에는 맞지만, 소설이나 에세이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단문 위주로 쓰는 소설가도 있으니까요.  

단락을 적당하게 나눕니다.  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소주제만 들어갑니다.  내용이 달라지면 단락을 나눕니다. 또한 하나의 단락이 다섯 줄을 넘지 않도록 합니다. 일곱 줄 넘어가는 긴 단락은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내용이 변경되면 일부러 단락을 나눕니다. 

글의 마무리는 보통 글의 주제를 강조하는 편이지만, 딱히 미괄식(?)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멋지게 표현한다면 열린 마무리라고 할까요. 글의 주제를 약간 비틀면서 끝을 냅니다. 주제를 다시 강조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서 끝을 내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바로 전 단락에서 옆으로 약간 빠집니다. 그때까지 이야기하던 내용과 약간 다른 내용을 언급하면서 제 경험이나 당시 화자 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드러커의 마지막 통찰' 서평에서  끝나기 전 삼성을 언급하거나, '반지성에 물든 기독교'에서 신념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하는 식입니다. 이를 통해 읽는 사람이 글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혹시나 생길 반론에 대한 일차 변론의 역할도 합니다.  

될 수 있는 데로 인용을 합니다. 그게 더 폼나거든요. ㅎㅎ 사실 폼나서 그런 건 아니고요. 제 표현이 아닌 경우 인용을 함으로 제 글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주장과 설득


저는 반론이 생길 수 있는 글을 종종 씁니다. (직업상 쓰는 글의 경우 90%가 반론이 따라오는 글 입니다만 ^^)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면서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반론을 무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반론이 제시되면 그에 대해 재반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론을 허용하는 글은 그만큼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민감한 글일수록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국정화 사태에 대한 단상'은 첨예한 주제를 따른 글입니다. 당연히 반론이 예상되는 글입니다. 그렇기에 예상되는 반론들 예를 들어 국정화 찬성도 다양한 의견 중 하나라는 주장이나 평향되지 않은 교과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한 재반론도 포함시켰습니다. 


가끔 둥글게 둥글게 빠짐없이 눌러버리는 ^^ 글을 쓰기도 합니다. 즉 예상되는 반론을 모두 다루면서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글을 항상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독자가 한정된 경우라면 모를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글의 모든 반론을 다 예상할 수도 없고, 예상되는 반론을 모두 다루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합니다. 쉽게 예상되는 반론만 다루고 약간의 여백을 주는 게 오히려 효과적입니다.     


5. 마무리 하기

초안을 다 쓰고 나면 몇 번씩 읽으면서 수정을 합니다. 아무리 초벌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도 다시 읽어보면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완벽에의 충동'을 쓴 정진홍 씨는 초벌을 쓰고 50번이 넘게 수정을 한다고 하더군요. 대단한 겁니다. 저는 그 정도로 참을성이 없기에 보통 두 번 정도 수정을 합니다. 한 번만 수정하고 글을 올리면 꼭 후회할 일이 생기더군요. 사실 두 번도 모자랍니다. 최소한 세 번 정도 수정을 해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수정할 때 다음의 점들에 신경을 씁니다. 

반복되는 단어나 표현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저는 '... 생각한다', '...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문장은 굉장히 지루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담는 글에 굳이 '생각한다'라는 표현은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문장을 조절하거나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를 선택함으로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필요 없는 단어, 문장, 혹은 단락은 지워버립니다. 대부분 초벌의 10%~20%를 줄여도 별 영향이 없습니다. 간결한 문장이 더 효과적입니다.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제 또 다른 문제는 사족을 붙이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등. 대화를 할 때는 간혹 필요할지 몰라도 글에서는 없는 게 좋습니다. 

일관성이 있나 확인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다든지 폰트나 글자 크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게을러 보입니다. 이에 더해 글의 흐름에 일관성이 있는지, 앞과 뒤에 충돌하는 이야기를 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6. 변형과 일탈


글을 쓰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평을 꾸준히 쓰다 보면 형태가 항상 같습니다. 작가와 책 소개하고 책의 내용 적고, 느낀 점을 적습니다. 분량도 거의 일정해집니다. 이럴 때는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는 겁니다. 저처럼 딱딱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은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감성적인 글을 써 보는 거죠. 읽는 책의 종류를 달리해보고, 맘에 드는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는 것도 좋습니다. 제 경우 김훈의 문체를 따라 했더니 일상의 문체도 약간 달라지더군요. 


===


전업작가가 아닌 이상 글 쓰는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잘하면 좋잖아요 ^^ 세상에 글 쓰는 것처럼 비용 안 드는 좋은 취미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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