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아르 Feb 07. 2017

종교 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친밀한 타자들과의 모범적 지적, 학문적 소통

세 명의 학자가 만났습니다. 모두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기독교 신앙 안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지금은 유신론 신학자(신재식 호남 신학 대학교 교수), 무신론 진화론자(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 학부 교수), 불가지론 종교학자(김윤성 한신대 종교 문화학과 교수)라는 꽤나 먼 위치에 서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 연구회'라는 공부 모임을 통해 만난 이들은, 종교와 과학이라는 공통 관심사에 관한 학문적 소통을 이어갑니다. 그 열매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네 개의 주제를 놓고 편지로 의견을 교환한 내용이 책의 중심 부분입니다. 편지라고 하지만 <프레시안> 연재를 염두에 두었기에 소논문이라 해도 될 정도로 풍성한 지식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이어서 세 명이 만나 나눈 과학과 종교에 관한 다양한 토론을 담았고, 연재하면서 독자와 댓글을 통해 나눈 대화와 더 읽으면 좋을 책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첫 번째 편지들은 과학이 종교에 건 도전과 이에 대한 종교의 답변입니다.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과학자의 질문에 신학자는 종교와 과학은 사이좋은 이웃이었음을 상기시키며, 종교와 과학은 서로 보완관계가 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종교학자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대한 기대를 더하며 첫 번째 주제를 마감합니다. 


두 번째 편지들은 첫 주제를 심화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과학의 일방주의가 중세 기독교와 다를 게 없다는 신학자의 반격에 과학자는 도킨스를 인용하며 오히려 종교가 사라져야 할 정신의 바이러스라 주장합니다. 종교학자는 진리는 과학이나 종교보다 깊을 수 있음을 말하며 과학이 진보해도 신비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지적합니다. 


세 번째 편지들에서 이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추구합니다. 종교는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과학자의 질문에 신학자는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다양한 시각을 설명합니다. 종교학자는 9/11 테러를 종교전쟁의 결과로 보는 피상적 시각을 경계하며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요청합니다. 


네 번째 편지들은 창조과학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창조과학이 과학에 대한 종교의 잘못된 대응의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입니다. 종교학자는 창조과학에 심취했다가 벗어난 경험을 나누고, 과학자는 창조과학이 사이비 과학임을 지적하며. 신학자는 창조과학의 신학적 이해가 초보적이고 오류에 가득 차 있다 설명합니다. 창조과학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이는 근본주의의 폐해에 세 명 모두 우려를 표합니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세 명의 대화 또한 흥미롭습니다. 종교가 보여주는 행태가 종교 밈(meme)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과학자의 주장에 대해 신학자와 종교학자는 지나친 단순화라 반박합니다. 종교 현상을 설명하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죠. 그럼에도 종교 또한 자연현상으로 볼 수 있고, 종교 현상을 과학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는 주장에 둘 다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도킨스의 종교 비판은 초보적인 이해에 기반했다고 불만을 표합니다. 이어 동물에게 영성이 있을지, 인공지능이나 외계인에게 종교가 있을지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눕니다. 


종교와 과학에 대하여 오랫동안 공부해온 신재식 교수의 추천 도서 목록은 유익하면서도, 제가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자괴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름 이 주제에 대해 신경 썼다 생각했는데 읽은 책이 별로 없더군요. 소개된 책을 차근차근 읽어볼 생각입니다. 


무신론자, 유신론자, 불가지론자 사이의 간격이 좁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설득할 수도 설득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돋보입니다. 든든한 자기 확신에서 출발해 더 넓게 보고 배우려는 모습이 학문적 소통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많이 담은 책입니다. 혼자서 찾아보려면 발품을 상당히 팔았어야 할 다양한 시각과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덕분에 제 시각도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무한 반복되는 닫혀있는 종교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대화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티븐 킹의 <The Stan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