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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Feb 11. 2018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미래 빚어가기 다섯 번째 이야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같지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의 옹야편에 나온 말로 많이 인용되는 경구입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똑똑한 자는 노력하는 자만 같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같지 못하다."


존 맥스웰은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에서 재능에 더불어 필요한 것으로 신념과 열정을 가장 먼저 제시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일에 대한 열정이 없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신념과 열정은 '일을 즐기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 신념과 열정이 필요하고, 또 신념과 열정을 불어넣을 일이라면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즐길 수 없다면 열심히 하기 힘들지요. 목표의식도 생기지 않고 하루하루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든가, 다른 사람을 이끌며 가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되어버립니다. 일을 즐기는 것, 모든 이의 소망입니다. 하지만 주위에 일을 즐기는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저만 해도 '일을 즐기며 하는 시간'은 있지만, 일 자체를 항상 즐긴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일주일에 한 번 아니 솔직히 훨씬 자주 하면서 삽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문제는 어떤 일이 즐길 수 있는 일이냐입니다. 이 분야를 다루는 책은 많습니다. 막연히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는 추상적인 조언부터, 구체적으로 그것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실천적인 지침서도 있습니다.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마커스 버킹햄은 '내가 강해지는 느낌을 주는 일'이 바로 그 일이라고 말합니다. <열정적 직원(The Enthusiastic Employee)>에서 데이비드 시로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을 강조합니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에서 한명석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 합니다. 결국 마음이 중요합니다. 또한 즐길 수 있는 일이 단순히 '기분이 좋아하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힘들지만, 그것을 통한 사회적 봉사를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대우가 너무 좋아 일은 싫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같은 길을 다시 가더라도 불만이 없다면 제대로 위치를 잡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거창하게 본다면 '무엇을 진정 원하는가?'는 '무슨 일을 하도록 태어났는가?'를 깨닫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의미'라는 낭만적인 해석도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이 일이 정말 내 일이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른 것 다 제쳐놓고 즐길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용어로 '소명'이라 부르지만 모든 이에게 이와 같은 '천직'은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반대하는 일을 택하라. 특히 마누라가 반대하면 더욱 좋다'는 식의 단편적인 가치관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좋아하니 좇아서 선택하는 것보다야 낳겠지만,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이 현재 일과 다르다면?


스티븐 코비의 <일곱 가지 습관>에 보면 회사의 중역 자리를 내려놓고, 목수일을 선택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하며 행복하게 삽니다.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내가 지금 제 자리에 있는가?'를 질문하고 '이루지 못한 어릴 적의 꿈'을 생각할 겁니다. 그중 몇 명은 현실을 박차고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 옳은 선택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하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한차례 갈등을 겪을 겁니다. 자신의 용기 없음을 한탄하겠지요. 퇴근길에 소주 한잔 들이켤지도 모르고, 별 것 아닌 것에 부부싸움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이 잘못되었을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현재 일을 내어 던지지 않는 것이 '우유부단'일까요?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책임감'이고 어떤 이에게는 '기다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진정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어려움을 같이 이겨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경우 단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책임을 마다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모습은 용기가 아닙니다. 그건 무책임입니다.


LensWork이라는 사진 잡지에서 흥미로운 글을 봤습니다. "창의적이려면(How to be creative)?"이라는 글에서 휴 맥리오드(Hugh MacLeod)는 '모든 사람이 창의적이다'라고 전제합니다. 누구나 어릴 적에 크레용 하나씩 쥐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말한 (창의적으로 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현재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원리를 'Sex and Cash'라는 자극적인 말로 표현했습니다. 좋아하는 일(Sex)을 하기 위해 생계수단(Cash)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존 트라블타는 펄프픽션 같은 컬트무비(Sex)에 출연했지만, 브로큰 애로우 같은 돈 되는 영화(Cash)에도 출연했습니다.


관점은 약간 다르지만, 중요한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항상 괴리는 있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의 갈등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과 지금 있는 곳 사이에 낭떠러지가 있다면 무작정 건너뛰기보다 다리를 먼저 놓는 것이 현명합니다. 더구나 책임져야 할 사람(가족)이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하구요.


그러면 멈추란 말인가?


'네' 혹은 '아니오'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먼저 자신과 협상을 맺어야 합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메꿀까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가장 나쁜 경우가 평생 꿈을 잊지 못해 미적대는 겁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게 그보다 더 낳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협상의 결과가 절벽을 건너뛰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절벽을 건너뛸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퇴한 이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경우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 위험부담도 크고, 희생해야 할 것도 큽니다. 반대의 선택은 '포기'입니다. '내가 뭘. 어쩔 수 없잖아'하면서요. 사람들은 매일 크고 작은 것을 포기하며 삽니다. 포기가 나쁜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임감 없는 '건너뜀'보다는 낳습니다.


어떤 경우는 맛보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영화 '즐거운 인생'을 기억하시나요? 꿈이 없이 살아가던 활화산의 멤버들은 어느 날 젊은 시절의 꿈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멋진 공연을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원하는 '그곳'으로 옮겨간 것은 아닙니다. 그곳을 경험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맛보기로 만족하고 다시 현실에 충실할 수 있다면요.


가장 이상적인, 또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현재 있는 곳에서 가고 싶은 그곳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절벽을 가로지를 수 있는 다리 놓기입니다. 단계적으로 하지만 멈추지 않는 전진입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작가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말을 했습니다. 말은 그렇지만 그의 인생이 '되는대로'의 삶은 아닙니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한 발자국씩 내디디다 보면, 꿈에 그리던,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곳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10% 아니 1%만이라도 영역을 확장하다 보면 어느새 이전과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김훈이 있게 된 기반은 그의 문학담당 기자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쓰면서도 그는 문학의 꿈을 키웠고, 그런 열정이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첫 문학 작품을 발표하게 만듭니다. 하워드 슐츠는 유럽식 카페에 대한 꿈을 잊지 않고 계속 시도했기에 스타벅스를 만들었습니다. 이해진은 25%의 꾸준한 자기 투자를 했기에 네이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로스쿨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특허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에서 변호사로의 변화는 절벽을 건너뛰는 정도의 점프로 보입니다. 하지만 낮에 일하며 밤에 공부를 함으로 다리른 놓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환경이 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한 학기씩 마치다 보니 어느새 직업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있는 곳과 가고 싶은 곳이 다르다면 결정해야 합니다. 포기하던가, 기다리던가 아니면 나아가던가. 나아가기로 결정했다면 꾸준해야 합니다. 그곳을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갈 수 있습니다. 당장 못 가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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