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나 B보다 더 큰 C가 있다고 말하는 책
"이름 붙이고, 경계 짓고, 회피하는 다수로부터 나는 자유로운가? - 우리 안에 감춰진 시선에 관한 고백"
뒷 장에 쓰인 부제를 보고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짐작하게 된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고발하는 글?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지는 잘못된 시선에 대한 반성. 그런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시선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하고 있다. 고발하거나 반성을 요구하기보다 저자가 살아온 삶을 잔잔한 이야기에 담겨 전해진다.
저자는 영국 남자인 토니와 국제결혼을 해서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애린이와 린아 두 딸과 함께 지금은 영국에서 결혼이주 여성으로 살고 있다. 혹은 저자는 토니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애린이 린아 두 딸과 함께 영국에서 살고 있다. 두 번째 문장도 충분할 텐데 우리는 보통 첫 번째 문장으로 누군가를 소개한다. 특별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특별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우리가 소수자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제 이름이 아닌' 집단으로 불리는 소수자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공부한 후 다문화 청소년, 결혼이주 여성, 북한 출신 이주민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 또한 본인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2년 동안 영국 생활을 했고 최근에 다시 영국에 가서 소수자로서 살고 있다. 조력자 혹은 관찰자로서의 경험과 스스로 소수자가 되어 지낸 경험을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가 '다름'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다르게' 여겨지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양한 이야기 속에 담아낸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계속 증가하고, 또한 '다문화'로 분류되는 국제결혼 가정의 수도 크게 증가했다. 어떤 다문화 가정의 경우 결혼을 통해 이주한 사람(주로 여성)과 그 자녀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제도의 개선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배려로 인해 더 힘들 수도 있다. 또한 다름에 대한 불친절로 상처받는 아이들도 많다. 이는 북한에서 내려온 탈북인에게도 적용된다. 언제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데서 오는 불편함. 왠지 움츠려 들고 숨게 만드는 다른 사람의 시선(혹은 그런 시선이 존재한다는 의식)으로 인해 이들은 힘들어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어떤 '집단'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관점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한 '개인'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적한다. 예를 들어 북에서 방금 내려온 이주민의 경우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정착하고 나면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보는 주위의 시선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탈북인이 남북 화해와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깨에 지우는 짐도 부담이 된다. 다문화 가정이든 탈북인이든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 대하기를 소수자들은 원하고 있다.
영국에서의 이주민으로서의 저자의 경험과 한국 내 탈북인의 경험을 비교한 네 편의 글은 이 책의 정점이다. 두 경험 사이에 차이는 없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소수자가 될 수 있고,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기에 존중이 필요하다. 어디에서 왔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전의 기억을 부정하라 요구할 수 없다. 탈북인 혹은 다문화라는 집단으로 불리지만 개개인 모두 각자의 이름이 있고 경험이 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소수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더라도 세상을 향한 더 큰 담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가 속했거나 오래 접한 다문화 가정과 탈북인을 넘어 모든 소수자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추상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기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머무르는 쪽을 택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의 키워드가 '이야기'라 말한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나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날 때 설렘을 느낀다. 다문화 혹은 탈북인이라는 집단의 하나가 아닌 영국에서 만난 북한동포 K 씨 혹은 러시아에서 온 첼로 선생 A의 이야기를 만날 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나의 이야기도 발견했다. 한국에서 30년을 살고 미국에서 20년을 살았다.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되었을 법도 한데 아직도 한국 말이 편하고 한국 음식이 입에 맞는다. 2세로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던 큰 애는 동양인 친구가 하나도 없고,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친 둘째는 친구의 대부분이 동양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떻게 적응하더라도 소수자라는 의식이 없어지지 않기에,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울림이 크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글로벌 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다름을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기독교 서적은 아니지만) 이 책을 한국의 주류 개신교에 권하고 싶다. 한국인의 유별난 집단주의에 근본주의적 해석까지 더하여진 한국 교회만큼 폐쇄적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그려놓은 좁디좁은 원에 들어오지 않는 모든 이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다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배웠으면 한다. A에 속하냐 B에 속하냐 나누려 할 때 이 둘을 아우르는 더 큰 C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