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서평
캘리그래피 모임 - 마음을 새기는 시간 - 을 오픈한 지 , 그러니까 캘리그래피 독학을 시작한 지 4달이 지났다. 캘리그래피를 왜 시작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한 번 써 보고 싶은 게 전부였달까."라고 마음이 부끄럽게 대답한다. 그래서 그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독학은 계획대로 진행이 잘 되는 편이냐고. 그러면 마음은 다시 "쓰다 보니 캘리그래피가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적어도 알겠어. 지독하게 따라 쓰면 어쩌면 캘리 작가 - 이를테면 배정애 작가? - 처럼 비슷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이젠 희망 같은 게 하나 생겼다고 할까."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글을 쓰는 일이든 캘리그래피로 글씨를 쓰는(그리는) 일이든 무엇이든 따라 쓰는 게 출발이 된다. 누구나 처음엔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막막한 편이다. 그럴 땐 고민에 심취하지 말고 실행하는 게 훨씬 낫다. 난 그런 면에서 늘 따라 쓰는 게 배움의 전초전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돈도 그다지 많이(추상적이지만 2만원쯤?) 쓰지 않아도 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 한 권, 캘리를 잘 쓰고 싶다면 캘리그래피 연습용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물론 캘리그래피는 펜이 추가되겠지만, 펜도 처음엔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천 원짜리 스펀지 붓펜도 충분하니까. 제발 장비에 욕심내지 말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캘리그래피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물론 모임을 통해서 사람들과 함께 시작했으므로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끈기,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했다. 5달째, 거의 매일 빠짐없이 캘리에 손댔으니 적어도 어제 보다는 성장하지 않았겠나.
캘리그래피에 빠지다 보니, 배정애 작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캘리그래피계에서 유명한 작가들이라면 배정애 작가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란다. 그렇다면 그는 캘리계의 시조새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나는 배정애 작가를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의 책을 내 생애 캘리그래피 두 번째 독학 책으로 선정한 이유도 유튜브에서 본 그의 차분한 설명 때문이었다. 그때 구입한 책이 '캘리愛처럼 쓰다'였다. 그 책은 아직도 따라 쓰는 책 중의 하나다.
모임 채팅방에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정의 작가의 책을 두고 같이 공부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함께 따라 썼다는 이야기. 그러다 모임을 함께 운영하는 분이 수채 캘리를 언젠가 모임에서 시도하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수채화? 학창 시절에 숙제로 마지못해 그리던 풍경화, 그런거 따위를 취급하겠다는 건가? 색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진창 욕을 들어먹었던 그 공포의 수채화란 말인가. 거부감부터 들었다. 미술 시간은 언제나 공포 그 자체가 됐으므로, 내 인생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특히 물감과 물을 배합해서 세상을 농도로 표현하는 일은 공대생의 감수성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쪽 계통은 다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임에서 수채화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캘리의 세계가 아닌 그 시절의 공포의 세계로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 북로그 출판사에서 블로그를 검색하다, 내 글을 보고 서평 제안을 해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책은 배정애 작가의 신간이었다. 3초쯤 고민했을까? 지금이야말로 수채화 세계에 다시 도전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마음이 소심하게 외쳤다. 서평 제안을 수락하자마자, 바로 물감 검색에 돌입했다. 동료분께 자문을 구한 후, 처음이니까 비교적 저렴한, 그러니까 만 원 이내의 물감과 워터 브러시를 구매했다. 두 가지 물품 구매에 소요된 비용은 약 2만 원 내외, 역시 가볍게 출발하는 게 먼저다.
수채화 물감으로 글씨를 시작한 이유가 그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배정의 작가의 소심한 발언과 함께 나의 도전이 시작됐다. 배정애 작가는 마음껏 연습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발견하게 되고 나아가 몰랐던 재능까지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역시 의심보다는 믿음을 충전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다.
이 책은 1. 감성 가득, 수채 캘리그래피. 2. 작고 귀여운 수채화로 포인트 주기. 3. 풍성한 그림 곁들이기. 세 파트로 구성된다. 각 파트별로 배정애 작가의 글씨체와 화려하게 수놓은 색감을 보고 따라 쓰기만 하면 된다. 참 쉽다. 거짓말이 아니다. 공대생도 따라 할 수 있다면 당신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루 한 장씩,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 열 장 이상씩 따라 했다. 된다, 안 된다 부정하지 말고 따라 쓰기만 줄기차게 지속하면 된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도저히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수채화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고백한다면 너무 드라마틱한 결론처럼 보일 테니까, 그런 말보다는 수채화에 더 이상 겁을 내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 수확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이 좋은 것은 더 잘 써지도록 배려한 두꺼운 수채화 용지의 사용 때문이다. 수채화는 물감과 물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물을 많이 머금으면 얇은 종이는 뒷장으로 번져 찢어지거나 색감 표현이 제대로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반 재질과는 달리 두꺼운 용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색감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이 책으로 꾸준하게 연습한다면 나도 당신도 두려운 수채화의 세계에 적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루 한 장씩, 꾸준하게 연습해볼 것을 권장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멋진 수채화 캘리를 선물해줄지 누가 아는가.
* 이 서평은 북로그컴퍼니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