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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19. 2020

나를 찾아 떠나는 길

 오디오북

글은 아래 오디오북으로 시청하시거나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주말 동안 넉넉하게 쉬지 못했다. 항상 똑같은 출근이 시작되는 월요일, 피곤함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닐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따라다녀도 될 것 같은데... 몸은 회사를 향했지만 마음은 계속 집에 머물고 싶었다. 어쩔 수 없었다. 생존 투쟁에 나서야 하는 나는 평범한 직장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반갑지 않은 풍경이 다가왔다. 아직 세상은 어둡고 정돈되지 않은 듯했다. 최악의 먼지가 얼굴을 에워쌌다. 나는 검은 위세에 압도당했다. 어지러움에, 피곤함에, 그리고 매서운 먼지 들에 갇혀서 그들이 질러대는 불규칙적인 함성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신해철의 가사처럼 질문은 변함없이 떠돌아다녔다. 나는 무엇을 찾기 위해 이 세상에 왔고 그것을 의식하며 잘 살고 있을까. 걷기만 한다면 대답은 슬쩍 아침 창가에 내려앉은 이슬처럼 찾아 오려나.


가을과 겨울 경계에서 나는 말없이 불안하게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나에겐 여러 개의 길이 매일 태어나고 소멸했지만, 기억에 남은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직장, 다른 길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한 길에 고정되면서도 불가항력적인 선택에 강요를 받으면서도 가끔은 다른 생각을 했다. 이 길로 지금은 내가 곧장 나아가지만, 언젠가 나는 다른 선택을 할 권리가 생길 거라고, 그 믿음이 현재 나에게 실존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내 일생에서 줄기차게 한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조금씩은 굳어진 지각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낙엽을 밟았다. 말라서 일까. 낙엽은 잔뜩 성이라도 난 것처럼 바스락 바스락거렸다. 나는 구름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낙엽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았으나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재앙이었으리라. 어쩌면, 그들에겐 가을 이맘때쯤이면 늘 겪어야 하는 익숙함 같은 것이었으리라.


언젠가 다시 돌아올 버스를 기다리고 지나가는 차들을 무신경하게 쳐다보다, 한쪽 손으론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위아래로 컨트롤하며, 젊은 도시인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라도 빠져 보는 것이다. 버스가 도착했다. 카드를 꺼내고 또 태깅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않았다. 내 자리는 과연 이곳에 존재하는 걸까. 몇 년을 반복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내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그곳에 정착하고 본래의 나를 되찾는다는 것, 그런 숙제를 오늘은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피곤한데, 안경 너머는 축축하고 흐릿해져가는데, 나를 완성하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한데…


줄을 서서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서 있을 수 없으므로 내려가고 다시 또 어느새 오르는 물결을 탔다. 나는 흐르듯 걸어갔다. 검은 물결이 빠르게 흘렀다. 지하철엔 그 어떠한 감동도 기쁨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맹렬한 속도와 태연한 가르침과 엄숙한 고개 숙임만이 살아 숨 쉬었다. 심지어는 통증을 느낄 수조차 없으니 피곤까지 날아가 버렸다.


내가 얼마나 걷는지 파악하려고 걸음수를 세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추적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게 되지 않을까. 정신적인 세계에서 나마 어떤 심층적인 위치까지 진입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것이 깨달음이 될 리는 없겠지만 사유의 언저리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날은 회사에서 벗어나 지방으로 이동했다. 나는 내 생활 반경과 분리될 수 있었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카페에 앉아 글이라도 한 편 쓰자고 결심했다. 적당한 소음, 발걸음들, 빵 굽는 소리, 메뉴 주문하는 소리, 마우스 슥슥 움직이는 소리가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플랫폼으로 진입했다. 기차에 올랐고 내 자리를 찾아 천천히 꿈틀거렸다. 고요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주위를 살폈다. 살아 있는 모든 감각들이 정지되어야 한다고 재촉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주위에서는 오직 기차음만 잔잔하게 흐를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모든 소음을 제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내 존재는 상실될까. 나는 더 무가치해질까. 무의 세계를 향해 급속도로 가라앉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주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떤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글을 조심스럽게 읽었다. 차분하게 잠을 자는 것처럼 오직 글에게 정신을 투자했다.


창밖엔 지나가는 세계가 있었다. 하나의 질서가 규합되고 다시 몰락됐다. 먼 곳을 바라보며 더러운 세계에 숨은 순결한 모습을 거꾸로 떠올렸다. 깨끗함과 더러움, 나에겐 그러한 이분법적인 세계가 늘 공존했다. 두 가지 세계는 서로 규합되지 못했다. 서로를 적대시했다. 숨을 쉬다가 다시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숨이 정지되듯, 장면은 이유 없이 전시되다, 거두어졌다.


도착지에서도 나는 길을 따라 정숙하게 이동했다.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과연 자유란 게 있을까, 되물었다. 주변에서 온갖 소음들이 질러를 교란시켰다. 이 좁은 세계에서 내가 기댈 곳은 가끔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마치 극명한 대조를 이루듯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에서 서로의 시선을 교차해나갔다.


직원들의 차를 타고 나는 목적지로 이동했다. 역시 그곳에서도 창밖은 유효했다. 무사히 도착해서 기쁘다는 감정보다 오늘은 또 어떤 의무에 내 자유를 박탈당할 것인지 두려웠다. 하루는 늘 두렵다.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긴장감 덕분에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가 힘을 발휘하겠지만, 나는 이런 만족스럽지 못한 순간조차 매일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피곤함에 빠졌다. 회색빛 대기 속에서 거짓일지도 모르는 삶의 숱한 대결 구도에 맞서면서도 나는 결국 엄숙하게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처럼 끌려다닐 것이리라.


낯선 출장지 사무실에 앉아, 짐을 풀고, 업무 환경을 설정해놓고 기다렸다. 업무의 개시를 위한 나팔소리 같은 것들을, 잠들어버린 의지를 정신 차리게 할 어떤 에너지의 활동을 기다렸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하염없이 기다리면서도 생각에 빠진 나의 생각을 그렸다. 생각은 노트북처럼 생겼을까, 네모난 책상처럼 생겼을까. 몇 시간 전, 기차 안에서 바라보면 바깥 풍경처럼 뿌옇기만 할까. 내 머릿속에 덮인 자욱한 것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 하루도 마감됐다. 김천을 떠나 나는 다시 서울로 향해야 했다. 플랫폼을 지나 이동하며, 나는 서울에서 보게 될 파랗게 개일 일상을 찾으려 애썼다. 물론 세상은 내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규제와 규칙 속에서도 나는 자유롭게 상상을 그치지 않으며 자연계의 위세를 뛰어넘으려 했다.


또다시 고요하게 나는 나만의 기세를 찾아갔다. 걷고 서기를 반복하다, 다시 어느 순간을 기다렸다. 30분 가까이 잠 들었고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었으며 문득 반가운 서울에 별안간 도착했다. 또다시 걸었고 나는 곧 안식의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루는 그렇게 똑같이 반복됐다. 익숙하고도 낯선 장면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지만 나는 겁에 질리지 않고 침착하게 하루를 마감했다. 나는 저항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진리를 숭배하는 사람처럼 도시의 삶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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