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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22. 2021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런 말 하지 않으려면?

2005년 오늘,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그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찬물 세수를 하다, 전두엽을 툭 쏘았다. '’내가 왜 베를린에 있었지?’' 먼 기억이 아닌가. 나도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 어쨌건 곰곰이 생각에 찾아가 보니, 영광스럽게도 누군가 그곳에 보내줘서였기 때문이었다. 굳이 원한 건 아니었지만, 해외에 공짜로 체류한다는 사실이 물론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근데, 너무나 오래되어서 이제 기억의 동토층쯤에 영구히 얼어버렸을 것 같은 그때가 되살아나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북극에 천만년 동안 숨어있었을 잔혹한 바이러스 따위를 살려낸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글을 써보련다.


2005년 베를린에 가게 된 이유는 그냥 ‘속도’ 때문이었다. 속도라고 말하면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서 조금 덧붙여보자면, 2004년 창업경진대회에서 입선한 덕분이었다. 대체 창업경진대회와 베를린, 그리고 속도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게 연관이 있어야 한다. 지금 그걸 어떻게든 연결해야 글이 그럭저럭 모양을 갖출 테니까. 그게 글을 쓰는 작가의 의무일 테니까.


창업경진대회 소식을 듣고 한 달 동안 고심하다, 이틀을 남겨놓고 제안서를 제출하자고 결심했다. 음, 100페이지 짜리 제안서를 이틀 만에 작성한다? 우습고도 황당한 제안을 스스로에게 슬쩍 던져봤다. 주판, 아니 내 타이핑 속도를 감안해본다면 그럭저럭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제출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리고 거짓말처럼 통과됐다. 결선까지 행운이 계속 이어졌다. 맙소사! 금상 수상이란다. 부상으로 베를린과 이태리 견학까지.


그렇다. 이 모든 사건, 거짓말 같은 일들이 단 이틀의 제안서 작성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돌아가서, 내가 왜 속도를 언급했냐고? 그 이유는 단 이틀 만에 속전속결로 100페이지짜리 제안서를 완성해냈던 나의 무지막지한 속도를 자랑질하기 위해서 3문단을 할애한 것이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갈지 모르니, 심호흡이라도 한 번 들이키고 다음 문단을 읽어주시라.


아무튼, 지금 ‘속도’라는 중요한 단어를 언급했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이 단어를 지독하게 혐오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참 웃기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속도 덕분에 가까스로 낙제 인생을 모면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 같은데, 보은을 입은 속도를 혐오한다니.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사실 따지고 보면 속도를 혐오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속도를 자발적으로 낼 것이냐, 타의에 의해서 속도를 강요당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는 속도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혐오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내가 재직하던 회사의 대표는 늘 ‘속도’를 강요했다. 신제품 출시를 위해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를 무렵, - 음, 그 개발은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늘 막바지 상태에 머물렀지만 - 모지리 같은 개발자들에게 늘 속도를 강조했다. 제품을 경쟁자보다 빨리 출시해야 한다고, 우리는 찐따들이니까 배의 노력을 해야 똑똑한 놈들의 속도를 앞지를 수 있다고, 그리하여 집에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며 나아가 아예 합숙을 하라고 강조까지 했더랬다.


문제는 늘 속도였다. 늘 남들보다 뒤에 있다는 그의 논리에 따라면 우리는 그들의 뒤통수 냄새나 맡고 살아야 할 운명이었으니, 어찌 우리가 그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으랴. 하지만 나는 용감하면서도 무모할 듯한 자세로 이마를 그에게 들이대고 싶었지만, 태생이 찌질이인 관계로 겉으로는 무한 긍정하는 표정을 짓고 그를 대해야만 했다. 그런 인지부조화 상황이 발생하면 나의 겉과 속을 동시에 관찰하는 이중인격자와 같은 심정으로 세상을 개탄하거나 나의 몹쓸 충성심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먹고살아야 하는 노릇이었으니, 속도전에 불길이라도 지피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척’을 꽤 잘 해냈다. 꽤 잘 해내는 것처럼, 속도전을 잘 감당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는 썼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뒷날은 물론 생각하지 않았다. 창업경진대회 이틀 전에 제안서를 쓰기 시작한 인간이 무슨 미래를 생각하며 일을 했을까. 단순하게 그 순간만 모면하자는 전략,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걸로 하나를 덮는, 덮밥 전략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때의 모토였으니까.


그 문제적 회사에서 퇴사한 이유로 나는 ‘속도라는 단어를 ’를 떠들고 다닌다. 물론 그 속도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다. 나를 더욱더 가속하도록 가혹하게 몰아치는 말이 바로 속도라는 단어다. 생각해 보니 ‘속도’는 관점의 차이였다. 내가 주인이냐, 손님이냐 두 가지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다. 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앞으로 내달려야 하는 지금, 구불구불 울퉁불퉁 고갯길인지, 고속도로인지 앞을 볼 수 없는 길을 달려야 하는 지금, 나는 불확실하더라도 나로부터 시작하는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스스로 진단해 보면 나는 속도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늘 나에게 느려터졌다고 꾸짖기만 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보통 수긍하고 살았으니 꽤나 자존감이 낮게 살았던 모양. 그러나 관점을 바꿔서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비로소 인정하고, 나 자신을 분명하게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지금, 내가 굉장히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빠르게 내달리면 더 빠르게 볼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달리면 달릴수록 빠르게 달릴 재주를 선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1%쯤은 확실하다. 어떤 능력이든 자주 사용하면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나는 더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속도 때문에 희생된 무수히 많은 어떤 것들이다. 그 어떤 것들은 사라졌거나 기회를 박탈당했다. 나는 그것들을 어디에서 흘렸는지 알 수 없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그 어떤 것들을 흘리고 다닐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미 폭주하는 기관차 그 자체니까, 몸으로 빨리 달릴 수 없으니까 마음으로 하는 일이나마 빨리 달려서, 더 많이 빠르게 공장처럼 찍어내야 하는 게 그나마 내가 내세울 만한 장점들이 될 테니까, 그 장점들이 어디엔가 흘려 사라진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보상이 될 테니까. '어느 항구를 향해 갓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노를 젓는다면 바람조차 도와주지 않을 거라'라는 철학자 세네카의 말처럼, 다만 빠르게 가더라도 항구는 제대로 찾아가기를 바라 마지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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