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글 쓰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책을 내려는 이유는 뭘까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보여야 할 태도는 대체 무엇인지,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물음표 투성이에요. 어떤 세계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무지가 만천하게 드러나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오래도록(고작 5년 썼으면서) 글을 쓰면서도 글의 정체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예요. 더군다나 책은 더 넓은 세상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앞 작은 공원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에 분포 중이죠. 더 큰 무지를 드러내도록 우리를 무지의 무아지경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은 쓰면 쓸수록 더 분명해져요. 그러니 내가 얼마나 교만한 생각에 빠졌는지, 어떤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장밋빛 환상 같은 것들을 무참하게 부숴버리고 맙니다. 문제는 그걸 깨닫는다고 해도 성공은 다른 문제라는 얘기예요.
작년에 출간한 <한 권으로 끝나는 노션>이 베스트셀러가 됐죠. 제 인생 최초의 경험이 됐어요. 그 덕분에 소공동에 위치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전주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구청의 평생학습관까지 출강하게 됐죠.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긴 한데, 그 길이 내가 원한 것이었는지 불투명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경험하다 보니 어쩌면 그 길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마도 경험하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책을 쓰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각자 꿈꾸는 무대가 있겠죠. 저에게도 그런 무대가 있거든요. 하지만 그 무대라는 건 무언가를 자꾸만 상실하게 만들어요. 반대편에선 그 무대란 것은 무모함 또는 어리석음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미아' 이모가 센 강에 겁 없이 뛰어든 것처럼, 꿈꾸는 사람은 때로 차가움조차 무릅써야 하거든요. 바보가 되든지 아니면 미쳐가든지 상관없이 말이죠. 그러니까 작가에게 책을 쓰는 일이란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지라도 그냥 생각 없이 뛰어들만한 사건이 된다는 거예요. 제정신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 계속 펼쳐질 테니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아님 저 깊고 푸른 센 강에서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그러니 바보가 되는 일이 있어도 우린 미쳐갈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그 싸늘한 센 강에 겁 없이 뛰어들겠다던 용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죠. 내 몸이 차가운 기운에 수축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만 거죠. 여유가 찾아왔기 때문이에요. 배 부르고 등 따스해졌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니 현실로 회귀하려는 현상까지 벌어지고요. 그건 마음 밖의 일이라, 그러니까 몸이 만들어내는 공작이라, 어쩔 수 없이 그럴 때마다 주저하게 되더라는 거죠. 모든 각오가 되어 있음에도, 이미 센 강에 뛰어들 자신감이 충만했음에도, 어느 순간 다시 따뜻한 물을 상상하고 있더라는 거죠. 그 차가운 강물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고 여기며 말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느냐고요? 책이라는 결과물을 전제로 글은 쓰게 되면, 그렇게 될수록 우리는 점점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에요. 책은 꿈의 무대도 극적인 무대도 될 수 없어요. 그냥 차가운 '센' 강일뿐이거든요. 마치 그곳에 뛰어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는 건, 우리가 어리석다는 사실만 주지 시키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는 책을 쓸 필요가 있어요. 그곳이 센 강처럼 파랗게 차가울 지라도요. 자꾸만 편안한 곳에 안주하려는 정신을 깨뜨려 줄 테니까요. 극적인 무대가 되지 않을 지라도 저는 센 강에 뛰어들겠습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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