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분명 가고 있었으나
어디로 가는지 길을 놓쳐버렸을 때
나는 낙타의 휘어진 곡선을 한참 생각했다
생각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형체도 없고 말하자면 자국도 묻지 않은
이름 모를 파도에 산산 조각나면서 나는
시장에서 숨져버린 낙타의 옛 추억을 주억거렸다
삶이란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어쩌면 난도질당한 러셀의 철학 개론
몇 백 페이지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 조각쯤은 되겠지만
그런 추상적이거나
누군가의 정서적인 결핍이거나
때울 수 없는 신성한 것에 맞서는 것이든 나는
모래 폭풍에 맞서야 하는
사막의 사나운 그림자로 소환되고 싶었을지도
원인이 없는 원인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근원
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또 다른 아버지
수없이 들어왔지만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배다른 자식들
그것은 나에게 운명
운명은 가르칠 수 있다고?
운명은 그냥 운명이야
받아들이고 적어내려가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운명의 탈을 뒤집어 쓴 자유는
인식의 감옥에서 풀려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