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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0. 2021

모방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삶을모방하는일이란?

일상이 따분해지는 이유는 늘 같은 것만 반복해서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같은 지하철역, 같은 버스 정류장, 같은 직장, 만나는 사람조차 매일 똑같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도 거의 같은 패턴을 되풀이한다. 


‘지난번에 요청드린 버그는 수정됐나요?’, 

‘마감 꼭 지켜주세요’ 


이런 업무적인 대화 말고, ‘오늘 점심은 설렁탕 어때요?’ 이런 대답이 필요 없는 일상적인 말도 많이 차지하지만. 그래서일까 가끔은 귀를 막거나 입까지 봉쇄하고 싶어 진다. 열려있는 모든 것들을.


비슷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다르게 느끼고 싶다고 마음에게 애걸복걸 매달린다. 여행이라도 하듯 낯선 길로 빠져서 배회하기도 하고, 엉뚱한 버스에 올라 잠시 낯섦과 썸을 타기도 한다.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고 처음 보는 표지판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감옥에서 마침내 탈옥을 실행한 사람처럼 방황을 꿈꾸면서도 소동은 어느새 마음 안에서 마무리되는 것이다. 아무리 멀어져도 결국 나는 집으로 향해야 하는 운명이니까, 유별난 하루를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제자리를 찾아야 하니까.


같은 일상에서도 다름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다름보다 의미를 캐내는 것이 더 큰 화두가 될지도. 어제와 흡사한 장소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미세한 균열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삶은 조금이라도 다른 의미를 환기시켜주지 않을까? 애써 내가 찾으려 하지 않아도 어딘가 보석 같은 하루가 열려있을 거라고 속삭여 주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은 타인을 모방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시학을 읽으면서도 문장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모방’이라는 단어 하나는 건진 기분이 들었다. '모방'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진공청소기'를 언급했던 앤 라모트의 말뿐만 아니라, 모방에 관련된 모든 에피소드가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진동하는 듯했다.


누군가를 모방한다는 건 그의 삶에 조심스럽게 발 하나를 걸친다는 것과 비슷하다. 단순히 호감을 가진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모방. 늘 안테나를 길게 뽑아 놓고 사는 나는, 어디서든 살아있는 이야기를 훔치려 했다. 훔친다는 건 타인의 삶을 내 영역으로 옮겨온다는 말을 뜻하기도 했다. 합법적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관찰함으로써 나의 단조로운 삶에 여백을 잠시 부여하는 것, 나는 정말 진공청소기가 된 것만 같았다.


타인의 삶을 복사하면서도 나는 이야기에 독창성을 어떻게 추가해야 할지 고민한다. 타인의 수많은 삶이 나에게 융해되면서 정체 없는 우주가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모방과 모방이 비벼지다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가 열리기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을 생산하는 원천일지도. 책을 통해서도, 세상의 온갖 형태의 지식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세계는 타인의 삶을 모방하는 것으로 재창조된다. 모방은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내 삶도 새롭게 배우도록 만든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타인의 삶으로 사유의 지평을 한걸음 넓혔으니까. 매일 반복하는 말에도 진리가 숨어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물론 삶은 늘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보편적이다. 어쩌면 중간쯤에서 방황하다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방은 비극까지 흉내 내도록 나에게 채찍질을 한다. 마치 그리스 무대 위에서 주인공의 비극을 구경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수많은 타인처럼 나는 타인의 삶에서 슬픔을 끌어내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타인의 비극은 결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럴만한 공감의 깊이도 부족하고 타인의 삶을 노래할 자격도 우리에겐 없다. 그럼에도 모방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천체가 만들어내는 부조화와 조화 사이에서 가끔 깨달음이 찾아오는 그러니까 '앎'이라는 걸 배우게 될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다름으로 견인하는 파란 알약일지도 모르니까.


다행인 것은 현재의 나는 최악을 모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최악과 최선, 밝음과 어두움, 무의미함과 유의미함, 그 최전선에서 나는 매일 줄타기 중이지만, 위험조차 모방하다 보면 이 지긋지긋하고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날 거라는 사실을 믿으니까. 나는 그렇게 더럽혀진 나를 세탁하고 깨끗한 나를 태어나게 만든다.


나의 삶은 안정된 궤도로 돌아가는 중이리라. 과거에 소모한 비슷한 삶을 다시 살아보려 하고, 철없이 모방하려던 구태의연을 답습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오늘처럼 글을 쓰면서도 과거 어디선가 소비한 패턴을 다시 반복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다. 연민과 공포의 감정이 동시에 찾아오는 걸 막을 수 없지만.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어제를 매일 비판하며 사는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기억력이 감퇴되는 편이 좋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게으름과의 싸움, 의지박약과의 싸움, 자가 복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게 숙제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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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기 테마 : 문학적 감수성 기르기 (참고 서적 : 어린 왕자)

  - 8기 테마 : 실용적 글쓰기 (12가지 실용적 글쓰기 훈련 기술 제공)

  - 9기 테마 : 쓸데없는 글쓰기 (12가지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쓰고 나면 도움되는 글감 제공)

  - 10기 테마 : 철학자 이해하기 (한 명의 철학자 깊이 공부하기 : 비트겐슈타인 편)

  - 11기 테마 : 우주로 나아가기 (참고 영화 : 인터스텔라)

  - 12기 테마 : 진정한 행복이란? (참고 영화 : 행복을 찾아서)

  - 13기 테마 : 나는 누구인가? (참고 서적 :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 )

  - 14기 테마 : 신과 영웅, 상상력의 원천 (참고 서적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 15기 테마 : 부자 되기 (참고 서적 : 돈의 속성)

  - 16기 테마 : 역사 (참고 서적 : 향후 업데이트)

  - 17기 테마 : 건강 (참고 서적 : 향후 업데이트)

  - 18기 테마 : 4차 산업혁명 (참고 서적 : 향후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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