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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04. 2021

불길한 변수들과 그것의 예고없는 폭력성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무라카미 하루기 <기사단장 죽이기>


지난주의 일이었다. 온라인 유료 특강을 앞두고 갑자기 심란해졌다. 신청 인원이 예상보다 저조해서였을까? 강의에서 자신감을 잃어서였을까? 아마도 둘 다,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강의로 딱히 목돈을 만지고자 목표한 것은 아니었으나, 신청자가 적으면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는 편이다. 강의를 연기시켜야 할지 강행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우려했던 것보다 시간이 경과될수록 신청자는 늘어났다. 만약 신청자가 10명 이하일 경우, 실시간 강의를 하지 않고 영상만 별도로 촬영하려 했으나 20명을 넘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결국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을 괴롭히던 어떤 형편없는 감정은 저절로 청산 절차를 밟아나갔다.


하루키의 문장처럼 먼 미래를 가정할 필요도 없이 단 하루, 몇 시간 아니 몇십 분 동안에도 불길함으로 포장된 변수들은 예고도 없이 점화되고 곧 폭발하고 만다. 불확실한 사건들을 실현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판정하고 그 사건이 미래게 갖게 될 하나하나의 결과를 잠시 엿본다거나 특히 부정적인 가능성의 구제 방안을 미리 구상한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말 그대로 어떤 사건들은 예측 불가능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닥쳐오며, 심지어는 그 어떠한 전조 현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예측 및 계획한다는 문장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늘 겸손을 망각하는 편이고 모든 사건을 열거해 놓고 나름의 가설과 추론을 내세우며 결과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단 1분 만에도 무너지는 편이 많지만… 게다가 결과가 벌어지고 나면 반성도 성찰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가정을 놓고 시뮬레이션한 절차 덕분에, 그 미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상황이 발생했어도 나름 대비했으니 후폭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쓰러지지는 않을지도.

그런 의식이 찾아오면 나는 내 안에서 어떤 기묘한 체계가 작동함을 알아챈다. 어둡고 침침하고 불안하며 두려움이 깃든 곳, 그 너머에서는 익살스럽고 유쾌하며 이유 없이 활기찬 곳이 어느 순간 득세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 그러니까 중립의 세계가 좌우의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결국 그 균형조차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하는 최악과 최선이 공존하는 곳.


결국 우리는 일어난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인이 있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났다는 건, 맞지 않는 레고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는 것과 비슷할 테니까. 그저 수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작은 구름 같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 맞물리고 부딪히며 모양을 맞춰나갈 테고 하늘에서 흘러갈 테니까. 그게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현명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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