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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20. 2021

일상이 공허해질 때 그것에서 탈출하는 방법

신나는 글쓰기 5기 5번째 미션

  어둠만 한가득뿐인, 어둠 이외에는 그 어떠한 물질도 허락하지 않는 공간에 나 홀로 존재하고 싶었다. 흔들의자에 가만히 몸을 뉘었다. 앞뒤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심오한 무언가가 안정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반대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 흐름에 내 몸을 온전히 맡기며 의자와 내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됐다고 상상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야마하 RX-V3800 리시버에 마지막 전원을 공급했다. 소스는 Hdtracks에서 구입한 하이 퀄리티 음원으로 골랐다. 알반 베르크 콰르텟이 맡은 하이든의 ‘황제’ 현악 4중주 2악장이었다. JBL XTi-100, 30킬로그램의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떤 영향력이 미드레인지와 트위터 부근에서 산들바람처럼 새어 나왔다.


  삶이 공허해질 때는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바꾼다는 것, 그러니까 개선한다는 문장에는 기존에 나라는 인간을 위해 곤고하게 세워졌던 성역 같은 것을 무너뜨리는 뜻과 동일하다. 나를 쓰러뜨리고 그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기틀을 닦는다는 것, 과거는 잊어버리고 새로운 관념들로 내일을 채워야 한다는 위험한 이론만 남는 것이다.



  2악장이 끝나갈 무렵 오래전에 도입한 기기들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환경을 바꾼다는 결정엔 다소 충격적인 의지가 포괄되어야 할 것 같아서 내린 생각이었다. 2004년에 도입한 홈시어터, 그러니까 극장과 같은 환경을 집에 꾸민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바람에 나는 여러 낯선 시스템을 안방에 들였다. 야마하 리시버, 그리고 JBL로 도배된 6개의 프런트, 센터, 리어 센터 스피커, B&W의 10인치 서브우퍼, 샤프의 DLP 프로젝터, 암막천과 액자형 스크린, 고음질 음원을 지원하는 384K의 DAC, 보스턴의 프레즌스 스피커까지 모두 내 영역에서 자리를 비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환경을 바꾸겠다는 목적은 희생을 따르게 만든다. 정든 물건이 나 대신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결정은 앞으로 어떤 대가를 감당하게 만들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흐름이라면 나는 그 질서에 무방비하더라도 따라가면 그만이다.


  어제 모든 물건을 새로운 주인에게 넘겼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에 비해 작업은 순조롭고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멀리 인천에서 구매자가 차를 끌고 나타났다. 30킬로그램이 넘는 스피커와 리시버, 그리고 온갖 기기들을 맨몸으로 날랐다. 몇 번의 움직임 끝에 내 방엔 변화가 현실이 됐다. 관념적인 것들이 자리를 물러나고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제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타협이 필요했다. 기기들을 모두 팔아 치워버린다고 음악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고민 끝에 32bit/384Khz의 USB DAC와 보스턴 프레즌스 스피커는 남겨 두기로 했다. 그 물건들은 제물 의식에서 다행히 제외된 것이다. 작은 감각하나라도 남겨두려고.


  

  대부분의 물건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남은 물건은 계속 제자리를 지켜야 했다. 헤어진 물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될까? 부재된 자리를 부러워할까. 새 공간을 부러워할까. 물론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용의주도하게 모든 변화의 주체가 됐다. 어쩌면 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행세를 한 셈이었다.


  거의 모든 물건에는 이름 대신 가격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살아남은 물건들은 공간을 재편성하며 떠나간 물건의 여백을 채웠다. 잠시 후 어둠이 어김없이 내 공간으로 스며들어와 공허라는 타입의 밤이 다시 시작됐음을 알렸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나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들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밤이었지만 어떤 표층을 하나 제거해버린 부재의 섬뜩함이 어둠을 독차지했다.


  공허는 언제는 그렇게 다시 열릴 기세였다. 그것은 저 아래에서 우러나는 새벽의 안개와 같은 존재였다. 공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 어느새 삶이 공허해지고 어떤 생각이든 무기력한 모양으로 흡수되어 간다면 내가 시도하는 이런 작은 변화가 과연 어떤 긍정적인 작용을 해준단 말인가. 그리고 이 지독한 무력감을 떨쳐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가격 딱지가 붙지 않은 그러니까 존재감 없는 기대감을 버리고 내가 내린 모든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지만 어떤 논리도 탁월해 보이지 않았다. 헛된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길은 없다. 언쟁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러니 나는 움직여야 한다. 그게 지금 이 순간 내가 도모할 수 있는 모든 구원 활동이다. 공허를 물리치는 것보다 잠시 그것을 휴화산쯤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나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여기저기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어둠 한가운데서 보이지도 않는 먼지 따위를 쓸어버리겠다고 이곳저곳을 쓱쓱 문질러 댔다. 손바닥과 책상이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나는 더 매끄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 공하하다면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든 물건을 내다 파는 일이건, 방안의 모든 먼지를 제거하는 일이건, 가구들을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변화를 시도하는 일이건, 그 활동이 신통치 않더라도 나는 어둠 속의 공기를 뒤흔들며 행동에 나선다.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다. 몸이든 마음이든 말이다.




https://youtu.be/9cjgHYwYj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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