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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3. 2021

내가 예술인의 삶을 살게 된다면?

신나는 글쓰기 5기 미션 #2

  예술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이라고 네이버 사전이 말한다. 정리하자면 1) 예술이란 감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될 것이리라. 나는 현재 두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을까.


  나는 개발자다. 코드를 만지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의 예술적 대상은 코드의 집합체, 그것들이 모여 작동이 되는 하나의 어떤 통일적인 흐름 또는 체계라고 보겠다. 우리는(여기서 우리는 개발자의 무리들) 그 대상을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나와 때로 동일시된다. 내 그림자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때로 절름발이 같다. 이유 없이 절뚝거린다. 내가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가 만들었는데 내가 의도한 대로 반응하지 않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더 이상한 것은 다른 사람도 그 프로그램을 본래의 기능과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때도 있다. 예술의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얘기. 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와 기술력의 원천으로만 만들어졌을까? 사실 그건 무리가 따른다. 순수한 아이디어란 세상에 없으니까. 나는 그저 주위에 떠다니거나 어디에서 구경했을 법한 물건을 훔쳐와서 마치 내 것인 양 재포장하는 수준에 머무를지도. 그러니까 내가 만드는 모든 대상(프로그램)은 누군가가 만든 작품의 모조품이나 복사품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 인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부단히 만들고 파괴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리라. 그래, 나는 오늘 내 프로그램을 지워버릴 것이리라.


  물론 그런 과정은 나를 낙담시킨다.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의 우물(하루키 소설 속의 그 우물 맞다.)로 스스로 뛰어들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곤란스러운 상황, 혼란스러운 모멸감을 자주 겪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 연속적으로 복무하는 될 것이다. 왜 그런 열패감에도 코드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는 걸까. 무엇이 나를 이 세계로 이끄는 걸까. 어쩌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그 대상이 만든 강력한 중력이 원인일지도. 끌어당기고 미는 힘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무탈하게 살아가겠지만. 근데 그게 너무 어렵다.


  스탠퍼드 대학의 도널드 커누스 교수는 프로그래밍은 예술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아는 체 좀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미 예술을 하고 있는 셈이다.(그런데 이 쓰레기는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내가 만든 작품은 하나 같이 말썽이고 엉뚱하게 동작하는 편이다.(물론 가끔 예상과 빗나가게 잘 만들어진 것도 있다. 놀라울 뿐이다.) 웃긴 사실은 이러한 모든 한계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업계에서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단지 생존했다는 것이 큰 위안은 되지 않지만, 생존했기 때문에 다음 프로세스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 있기도 하다. 단지 그 가설 하나만으로도 내 삶엔 예술적 가치가 남아있다고 욕망을 계속 가져도 될까.


  코드는 컴퓨터 시스템, 그러니까 컴파일러가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커누스 교수가 이야기하는 예술적 프로그래밍의 가치는 가독성이 높은 코드다. 기계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모두 아우르는 것이 그가 말한 진정한 예술적 세계관을 가진 프로그래밍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문장의 의미를 문장 자체로서 이해하고 인용한다. 어떤 의미인지 오랫동안 읽어보니 얼핏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난 대부분의 것을 여전히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며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몸담았을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실토해야 한다. 나는 대부분을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이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될 수 있을까.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듯, 나는 앞으로도 무지한 상태에 머물며 가짜로 진보하며 살아갈 것인가.


  한 가지 분야에 마스터가 되겠다는 생각은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 어떤 분야에 깊이 몸담을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는 계속 나타난다. 그 무질서한 질서는 그동안 만든 곤고한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러니 나는 육중한 철벽 앞에서 겸손함을 내가 칭송해야 할 소신이라고 믿어야 하리라.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예술 작품, 아니 예술이라고 착각 중인 코드들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다. 코드를 보면 우아한 알고리즘이 무엇이고, 간결한 코드가 무엇이며, 최대한의 성능을 내는 자료구조가 무엇인지, 더듬거리며 추상적 사고를 할 것이다. 사고(考) 끝에 머릿속에서는 사고(故)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나마 뇌 정지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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