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글쓰기 5기 미션 #7 : 고흐, '수확, 몽마주르을 배경으로'
나는 어느 풍경 속에 있다. 물론 공간적, 시간적으로 그렇지는 않지만 편의상 그곳에 있다고 가정하며 글을 쓰련다. 대상에 몰입하는 것은 글쓰기에 있어서 다른 어떤 이론적인 접근 방식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저 그림은 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림을 볼 줄도, 화가의 의도를 분석할 재주도 없다.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특정 지점에서 획득한 어떤 심상을 포착해내려는 것일 뿐이다.
이 그림은 한적하고 넓은 밀밭을 담았다. 그리고 가을이니 만큼 풍요로움과 안락한 이미지를 안긴다. 노란 금빛 물결이 고흐의 시야 바로 앞에서 먼 설산까지 이어진다. 나는 저곳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곳이 무척 평화롭고 사람의 마음을 낮은 곳으로 임하게 한다는 사실은 이론으로 배우지 않아도 안다. 그런 면에서 그림은 사람의 어떤 정서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울림 혹은 메아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래, 고흐가 보낸 1888년의 메아리가 지금 나에게 도착 중이다. 대답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일방적인 메아리.
나는 생각한다. 대체,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에 머물렀을까. 가을의 수확을 그가 의도한 대로 적확하게 그려냈을까. 그래서 그는 충분한 만족감을 얻었을까? 아니라면 더 완벽한 자기만의 세상을 꿈꾸면서 그곳에 닿기 위해 더 진중한 노력을 펼쳐야겠다고 결심했을까. 이런저런 상상, 그의 마음속으로 녹아들어 가보는 것, 그것이 비록 무용하더라도 나는 일종의 어떤 장면과 장면을 넘나드는 체험을 하게 되니 그림은 못 그리더라도 나름의 그리는 것 같은 착란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도 저런 노랗게 물들이는 충만한 수확의 경험이 얼마나 자주 존재했을까, 과거를 회고해본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원색의 계통 그러니까 노랑, 파랑, 초록의 세계를 의식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해내본다. 그리곤 그 세계를 고흐의 몽마주르의 세계 속으로 편입시켜 본다. 마음속에선 그런 화학 작용이 끊임없이 발산한다. 나와 또 다른 나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세계, 그런 무수한 세계들이 중첩되고 두드러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예술을 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일까. 나와 나와 다른 세계를 분리시키는 것, 그리하여 나의 세계를 더 분명하고 확고하게 만드는 것, 언젠가는 내가 확장된 예술의 세계와 합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다는 것, 그런 세계일까. 예술 작품을 본다는 것은 말이다. 열등감을 건드려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세계.
어쩌면 본다는 것은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극명하게 분리해내는 일이리라. 장점과 단점, 나는 고흐의 몽마주르를 보며 나의 한계를 완전하게 인식한다. 내가 절대 갈 수 없는 세계 그러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한계적 사실을 완전히 깨닫게 만든다. 원한다고 바란다고 그 세계를 정복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동경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에겐 자유가 있으니까 얼마든지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영역이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누리면 그만이다.
고흐의 그림은 나에게 묻는다. 나의 장점과 단점, 두 가지를 극명하게 분리할 수 있으며 그 차이점을 정확하게 반으로 가른 다음, 서로가 나눈 절반의 세계를 발라낼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편안하게 앉아 그의 작품을 감상하려던 나의 몰염치한 의도가 무너지고 만다. 의자를 앞쪽으로 당기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목을 뒤로 빼며 잠시 멈춰본다. 난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이며 단점은 무엇으로 커버할 수 있으려나. 그런 과정에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과연 제대로 구분해낼 수 있으려나. 역시 어렵다.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는 일처럼.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고흐의 몽마주르를 보면서 왜 장점과 단점을 떠올렸는지, 그 두 가지 단어 사이, 내가 사유하려는 최종 목적지에는 무엇이 있는지, 물론 그곳에 고흐는 없다. 그의 그림도 없으며 어쩌면 나조차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세계, 완벽한 공허뿐인 세상과 단절된 그 세계의 끝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왜 내가 그리로 이끌리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냥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다는 것, 그냥 운명적인 흐름에 순응했다는 것만 알뿐이다.
마지막 문장, 마지막 구두점을 찍으려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지만 이 지점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대답하기 어렵다. 어딘가를 고흐가 건드려준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나에겐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은 인식할 수 있다. 어쩌면 그 힌트는 장점과 단점이려나. 내 장점이 무엇일까 고뇌하기 시작했을 때, 우습게도 ‘동안’이라는 단어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동안은 나의 장점을 모두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동안은 세월을 되돌리는 효과를 지녔으니까, 시간을 조금 느리게 반응하는 유기적인 장치에 해당될 테니까, 단점을 장점으로 만회할 가능성을 지닌 거울 속의 이면일 테니까. 나는 무척 어린 얼굴로 늙어버린 고흐의 얼굴, 하지만 영원히 젊을 그의 그림을 본다. 그리고 그 속에 비친 보지 못한 나의 미래도 얼핏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