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그대로 흡수한다. 만약 아버지에게 정서적인 학대를 지속적으로 받았다면, 아버지가 가진 몹쓸 습관이 있다면, 그런 것까지 대물림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런 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니체가 말한 영원히 반복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살아 있는 동안 바둑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취미로 시작한 바둑은 어느 날 바이러스처럼 아버지의 정신세계를 전염시켰다. 바둑을 취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그 취미 생활에 돈이 개입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닌 것으로 규정된다. 게다가 내기 바둑에 걸린 판돈의 규모에 따라 더 심각한 중독으로 진단할 수도 있겠다. 바둑이 취미에서 병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아무튼 아버지는 지독한 바둑에 중독됐다. 그것도 가정을 파괴시키는 내기 바둑에 말이다. 아버지는 내기 바둑으로 무너진 집안을 부흥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아버지는 내기 바둑으로 80년대 초반, 몇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날렸다. - 지금은 얼마인지 환산하기조차 힘들다, 상상하기도 싫다.
당시 우리 집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이불을 깔고 네 식구가 누우면 방이 꽉 찼다. 돌아눕기도 힘들었다. 그런 비좁은 곳에서 오래도록 살았다. 아버지가 바둑에 미쳐 돈을 날리기 전까지는 적어도 행복하게.
아버지는 내기 바둑에 인생을 걸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도박이라고 불릴 만한 내기 바둑엔 조직의 힘이 침투한다. 조직원은 처음에 일부러 돈을 잃어준다. 승부 조작에 걸려든 순진한 사람은 내기 바둑의 재미를 들이며 수중에 돈이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판돈을 올리게 된다. 아버지는 조직의 함정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다 결국 마지막 판에 수중에 가진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내기 바둑에 제대로 걸려버린 아버지는 그 이후 소식이 두절됐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부터 줄곧 바둑 때문에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도벽처럼 바둑이 아버지를 유혹했다. 그때마다 아버진 유혹에 굴복했다. 물론 유혹에 굴복하면 겨우 모아놓은 돈도 사라지고 직장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도박은 드라마틱하게 끊어야 한다. 손목을 자르는 고통 없이는 끊을 수 없는 게 도박이다. 도박 앞에서는 아내도, 자식도 보이지 않는다. 목숨을 끊기 전에는 끊을 수 없는 게 도박의 생리니까.
아버지는 도박으로 스스로 인생을 파괴시켰다. 나는 자식으로서 그런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며 살았다. 나는 두려웠다. 어머니의 원망 섞인 푸념에 따르면 나 역시도 아버지의 운명을 그대로 따라갈 것 같았으니까.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도박 유전자를 물려받은 셈일지도 모르니까.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커다란 낙인이 찍힌 셈이었다. 도박에 미친 남자의 아들, 가정을 버린 남자의 아들, 아내에게 폭언을 일삼는 남편, 이런 가면이 이미 내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지독하게 아버지를 혐오했고, 원망했으며 그런 아버지는 차라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 녀석을 보면 가난해도 미래가 있었다. 성실하게 일한다면 가난이란 건 언제든지 벗어날 확률이 높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진 그 쉬운 걸 거부했다.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한량도 아닌 거의 가정파괴범이라 할 수 있는 세월을 오래도록 보냈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를 떠는 편이다. 나 역시 아버지의 유전자를 따라 똑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나마 나의 현재 위치를 돌아보면 아버지를 닮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 안에 숨은 도박의 유전자가 언제 발현될까 두렵다.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지만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 나는 아버지를 내 삶의 영향권 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돌아가신 지 한참이지만 나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기의식은 나를 강렬하게 깨운다. 절대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채찍질한다. 나는 아버지를 결국 닮지 않았다. 그게 내가 얻은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