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과를 가는 게 좋겠다’
수학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할 정도였다. 왜 그랬냐고? 흐음, 가만히 기억해보니 그럴만한 몇 가지 사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문제 하나 못 풀었다고 따귀 세대를 연거푸 날린 수학 선생도 있고, 시장에서 사과 10개를 사면 얼마가 남냐고 짜증 내며 물어보던 아버지도 그곳에 남아 있다. 아무튼, 그런 사람에게 이과라니 얼토당토않은 말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은 분명해도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그곳으로 가'라는 말을 부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말은 구원의 빛처럼 느껴졌으니까.
삶은 무수한 길들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나는 길을 밟으며 통과해 오면서도 지나온 길을 차츰 잃어간다. 그 길을 생각해 보니 때로 문과적이고 간혹 이과적이었다. 길은 대체로 한 방향에서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길은 매번 나에게 새로운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을 앞두고 자신이 없으니 권한을 타인에게 이양한다. 마치 18살의 나처럼. 스스로 선택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주체적으로 선택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므로.
그런 연유로 나는 이상한 삶을 줄곧 살아왔다. 18살이라는 나이에 이과적인 길을 선택받고서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과적인 길이 최선이라 믿고 살아왔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걸어왔던 길을 의심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 언젠가 찾아오고야 만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지오디의 ‘길’ 가사처럼 길은 현재에게 묻는다. '이 길이 진정 네가 원한 것이었냐고.'
길은 이렇게 예측 못한 질문을 불쑥 던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이미 알고 있었다며 불성실한 화법으로 대답한다. ‘잘 알고 있었어. 내가 걸어온 길인데, 설마 그걸 모르고 살았겠어?’라고 거짓말을 던지고 만다. 이 말이 담은 뜻은 꽤 숙명적이다. 물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수단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조금씩 어긋나고 만다. 18살의 내가 내린 이과적인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 어긋난 길을 조금씩 돌이켜 보고자 이렇게 문과적인 다짐을 반복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마음의 중심엔 동그란 원 하나가 있다고. 원의 중심에서 길이 새롭게 태어나 바깥쪽으로 뻗어가는 것이다. 그 길엔 문과적인 길도 이과적인 길도 있다. 나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으로 뻗어가니 그 길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 선처럼 생긴 길은 제각각 듬성듬성 외곽을 향해 뻗어 있다. 문과처럼 생긴 선과 이과처럼 생긴 선은 서로 다른 길로 헤어진다. 마치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아버지의 나의 다른 길처럼.
그러니까 이과적인 길은 체념 또는 청산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고 나는 원의 중심에서 다시 새로운 길로 진입한다. 그 길은 꽤 문과처럼 생긴 것 같다.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사노 요코 할머니와 같은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 길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다. 하나가 시작되면 바로 옆에서 또 하나의 선이 뒤를 따라야 하니까. 그 선은 서로 꽤 근접해 있다. 너무 가까워서 두 선은 하나의 선처럼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심히 걷다, 이 길이 아니라면 슬쩍 옆으로 옮겨 타면 그만이지만 그런 결정은 곤란하다. 피곤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오래전에 이과적인 길을 선택한 것처럼 이미 지나버린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인생엔 새로운 선들, 즉 문과적인 길들이 가득하다. 나는 모든 선을, 아니 길을 하나인 것처럼 연결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도, 자신 있게 대답은 못할지라도 하나의 목표로 향하고 있다고 대답하기 위해.
그 목표란 것은 꿈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꿈도 포부도 없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자라났는데, 나는 과연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 꿈은 마치 18살의 순종처럼 문과적이라는 사실이 위안을 준다. 나는 그 시절의 부조리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 그때의 무책임한 선생도 짜증 내던 아버지도 길을 모르며 헤매던 18살의 나도 모두 부조리한 삶에 잠시 취했을 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을 물을 수 없다는 걸 지금 서 있는 길에서 깨닫는다. 삶은 앞으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할지 예측할 수 없겠지만, 나는 나의 길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저 백일몽을 꾸듯 걸어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