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11. 2016

중년, 변화의 인생을 대비하며

김용태 교수의 <중년의 배신>을 읽고...

어느덧 중년


월요일에 인상을 구기며 출근해서 금요일에 고단했던 한 주일을 마감하는 생활에 젖어든지 벌써 20년이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설마 나에게 찾아올 시간은 아닐 것이라고 늘 부정하던 중년의 나이가 어느덧 닥쳐오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파릇파릇하고 모든 새로운 것들을 시작할 만큼 미래가 창창하기만 한데, 이미 인생의 중반을 넘겼고 이제 살아온 날들과 살 날들의 분기점에 서 있다 하니, 그 말이 실감 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동안이라는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처음 보는 사석에서 보이는 겉모습에 대한 오해가 좋았다. '내 나이에 맞는 모습이란 무엇일까?' 적당히 배 나오고, 머리가 벗어지고,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타나고, 주름살이 쭈글쭈글 패이는 전형적인 아저씨의 모습이 싫었다. 나는 숨길수 없는 나이의 풍채란 것들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해서 시간을 역행하고 싶었다. 





<중년의 배신>을 만나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카페에서 <도서 리뷰 모집>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책은 '김용태' 교수의 <중년의 배신>이라는 심리학 책이었다. 나는 중년의 골짜기로 깊이 빠져있음을 몸에게 설득당하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그것을 부인하고 살았다. 나의 심리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위하여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솟아올랐다. 내가 정서적으로 느꼈던 중년의 불안감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싶었다.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책들이 책장에 쌓여있었지만, 나는 지인 블로거분의 추천과 내면에서 강하게 차오르는 끌림을 무시할 수 없었다.





<중년의 배신>은 중년에 접어든 남자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나이 기준으로 봤을 때, 분명 중년은 나의 현실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새롭게 닥친 변환기를 지혜롭게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앞으로 남은 반환점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빛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어둠 속으로 침몰하게 내버려 둘 것인지... 모든 결정은 나의 의지에 달려있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나' 답게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거창한 미래의 비전보다 현재 내면의 상태, 나의 정체성 확립을 보다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했다.



책에 등장하는 '정선'씨는 오직 직장에서 요구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일직선과 같은 곧은 삶을 살았다. 직장을 떠난 삶을 생각하지 않았고, 직장은 명예, , 권력'자신이 남자라는 것', '자신이 가진 힘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겼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직장, 자신이 남자라는 존재를 확인했던 직장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쫓겨났을 때,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전략이 무너졌을 때,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아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며, 그저 자신의 인생이 남을 위해서 거짓된 것들로 가득 채워졌음을... 자신은 위기 상황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깨닫고 말았다.

 


실적 달성에 실패하여 직장에서 쫓겨난 후, 그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밖에서 동분서주했다. 불안한 마음에 기인한 그의 선택은 계속적인 실패의 결과를 낳았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자신은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남성으로서 힘을 잃은 자신의 비정한 현실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하여 밖으로 맴돌기만 했다. 





20년 동안 아무런 목적 없이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버둥거리던 그의 삶이 멈춰졌을 때, 실패의 낙인이 찍히는 순간에 '정선'씨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정서적인 홈리스 상태에 빠지고 난 후, 전부라 생각했던 직장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난 후, 자신의 인생이 덧없고 공허함을 느꼈다. '정선'씨는 이 책의 저자인 김용태 교수와 상담하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인생, 가족과 진솔하게 대화하는 방법, 무엇보다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중년의 배신>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낯설어지다.
2부 상실의 시대
3부 파워에 목매는 이유
4부 성인아이에서 진짜 어른으로
5부 파워를 넘어 관용과 자유로


'정선'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나온 나의 인생을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 휴가조차 반납해가며 일에 모든 걸 투자했던 일이 전부인 인생이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더 높은 연봉을 보장받기 위해서,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되기도 했었고, 나만의 사업체를 꾸리기도 했지만, 연속적으로 놓인 것은 일(Job)이었다. 몇 군데의 직장을 거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만족할만한 연봉 성적표를 받아 들긴 했지만, 과연 내가 지금 다니는 직장이 나의 삶을 온전히 바칠만한 곳인지, 언제까지 내가 환영을 받으며 전쟁터와 같은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낯설어지다.


내가 중년에 진입한 어느 날,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졌고 과거에 재미를 안겼던 것들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취미였던 기타 연주, 밤새며 즐겼던 게임, 일상의 작은 휴식을 안겼던 짧은 여행까지도 나의 심장을 건조하게 만들 뿐이었다. 오직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적으로 직장에 출근하며 일로서 나의 삶을 가득 채웠으며, 그 삶조차 내가 중년으로 진입하는 순간, 일할 수 있는 작은 행복조차 언제 함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더 나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존재는 뒤로 미룬 채, 단순히 일만 열심히 해야 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인 걸까? 나의 행복은 잠시 양보하고 가족을 위해서 알량한 자존심조차 집어던지고 삶의 균형을 잃어가며 얻은 월급 통투의 수치가, 나의 삶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전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에는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는 그동안 뭐 한 건지, 가정에서 내 위치는 뭔지, 사는 게 뭔지 자주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씁쓸해지는 거야. 몸도 이전 같지 않는데, 뭔지 모르게 마음이 심란해.: - P.49


<배신의 중년>에서는 존재적 삶을 강조한다. 삶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직장도 중요하지만, 남자는 돈만 버는 기계가 아니며, 긴 인생을 위해서 보다 넓고 길게 생각할 여유를 우리에게 주문한다.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고 직장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마음을 전환시켜야 한다. 일 지향적 삶이 아닌 존재 지향적 삶을 역설하며 위기에 놓인 중년의 삶을 제대로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정립을 요구한다. 특히 아내와의 대화를 강조한다. 직장에서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 후, 다시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건 소중한 아내이며, 함께 나누는 영혼 속의 대화를 통해서 상처받은 중년의 내면을 치료할 수 있다. 결혼과 가족, 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군가와는 마음이 연결되어야 살 수 있어요. 결혼은 그런 의미고요. 아내와 남편은 그렇게 마음을 연결하면서 사는 인생의 동반자거든요.” - P.71



상실의 시대


삶의 위험한 시기는 영유아기, 청소년기, 중년기라고 한다.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중년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뚜렷한 자기 주관이 없으면,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리게 되고,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하게 된다. 직장을 잃고 섣부른 판단을 하여 계획 없는 창업을 하게 되어 모든 걸 잃기도 한다. 청소년기에 자신의 내면을 찾지 못하면 중년기에는, 신체의 변화 속에서 건강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까지 상실하게 된다.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 대화가 사라진 가정,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인지하게 된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길을 잃게 된다.


스스로 기계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던 남자들은 중년기에 자신이 그런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P.91




정서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에 중독이 된다. 상실될지도 모를 직장에서의 지위, 자신의 무능력함, 치고 올라오는 젊은 직원들, 부장 정도의 직위가 될 때 이러한 위기가 발생한다. '뭘 먹고살아야 하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직장에서 쫓겨나면 당장 수입이 사라질 텐데... 돈의 문제와 함께 찾아온 자신의 기능적인 상실(신체적인 변화) 앞에서 절망감을 느끼며 그릇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파워에 목매는 이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갈 길을 간다.’ 그러나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내 길’이 뭔 지조차 모른다. - P.122


타인 지향적인 삶, 남들에게 의지한 채 삶을 살아온 남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남들에게 계속적으로 의지하고, 부러워하고, 상대방이 가진 떡이 커 보이는 현상이 자신을 괴롭힌다. 청소년기에 자리 잡아야 할 정체성이 없는 어른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하여, 회사에서 가정에서 남들에게 폭력적인 언행과 허세를 부린다. 결국 이러한 행동의 원인은 심리적으로 결핍된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비극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자기 정체성 확립에 대한 에릭 에릭슨의 인생의 8단계 이론은 아래와 같다.


1단계 신뢰 형성하기 : 태어나서 1년 6개월 사이, 희망적 삶을 살 것인지 폐쇄적인 삶을 살 것인지 부모의 의하여 결정
2단계 자율성 발휘하기 :1년 6개월 ~ 세 살, 자율성 주장 시작, 자율성을 행사할 때 억제를 당하면 자신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된다. 신경증적 경향이 발생
3단계 주도성 갖기 : 세 살~다섯 살, 목적의식이 생긴다. 
4단계 근면성 배우기 : 다섯 살 ~ 11살, 학교에서 사회생활, 근면성, 자신감 습득
5단계 정체성 형성하기 : 청소년기, 변화를 자신의 삶에 지속적으로 투자, 변화를 자신의 삶에 통합시켜 자아의 정체성 확립
6단계 친밀한 관계 맺기 : 청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 시작, 21~40, 사랑의 시작
7단계 관용 배우기 : 40~65, 중년기, 돌봄, 다음 세대 준비
8단계 자아 통합 이루기 : 65세 이후, 삶의 방식에 개방적, 열린 마음


아기가 태어난 후 3년 사이에 심리적 기초가 세워진다. 이때 심리적 기초가 잘 형성되어 신뢰와 자율성이 발달된 아이들은 어른 말을 잘 안 듣는다.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뚜렷하다는 얘기다. - P.138



성인아이에서 진짜 어른으로


내면이 미숙한 상태에서 몸은 성인으로 자라났지만, 성숙하지 못한 나약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파워를 좇는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불안해하고 열등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성인아이일 때 나타나는 감정은 분노, 허탈, 공허, 무기력, 우울과 같은 감정이다.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나약한 내면을 타인에게 드러낼 때, 중년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심리치료는 과거에 형성된 생각이나 느낌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하거나 재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 P.196


'정선'씨는 심리 치료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과거 자신이 불만이었던 부분, 상처받은 과거의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는 과정에서 느슨한 삶을 배웠고, 위대한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삶'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는 게 한결 쉬워진 삶’, ‘기대되는 삶’, ‘자신이 좋아지는 삶’을 경험하는 과정 지향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 P.208




파워를 넘어 관용과 자유로


중년기는 인생의 숙제를 마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동안 쌓았던 스펙, 명예,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몸과 내면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자신의 처지를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이제 사고방식을 돌려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 중심, 업적 중심의 삶에서 사람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 P.239


실존적 삶을 살기 위하여 중년은 일 지향적인 삶을 버리고,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더 이상 남자를 대표하는 파워싸움은 포기하고, 나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것을 잃지 않도록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남성의 정체성 중 하나가 일 지향성이다.. 그래서 일 지향적인 남자들이 부인에게 집안 대소사를 잘하고 자신을 잘 보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부부 관계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꾸게 된다. - P.268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완벽한 모습보다는 약간은 모자란 어벙한 모습이 필요하다.


내가 옳아도 상대방의 수용 여부를 보면서 천천히 주장하고, 옳지만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주며, 옳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어벙한 남편이다. 이런 모습이 되지 않으면 남편은 부인과의 관계에서 성공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 P.259



이 책은 중년을 바로 보게 하였다. 중년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 속의 직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역설한다. 100세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남은 인생의 정체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전환점을 제공한다. 인생의 해답은 각자가 처한 환경에 달려있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에서, 어느 순간 내몰릴 수 있음을, 위기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위험한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 구체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내가 봉착한 상황에 넋 놓고 있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방치하지 않도록 생각할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어지럽고 정돈되지 못한 불안정한 내면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상처는 직접 봉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연 치유될 수가 있다. <중년의 배신>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나의 현실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중년의 시기를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줄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 2의 변화의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일도 반드시 승리하도록 하자.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았으며, 객관적으로 리뷰를 쓴 내용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넷 전문은행'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