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끔 꾸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 횟수도 점점 줄어든다. 그것은 어쩌면 나이와 반비례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엔 꿈이 문득 찾아왔다. 나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꿈에서 깨어서도 꿈을 잃기 싫어, 애써 그 꿈을 종이에 그려두었다.
어쩌면 그런 작업은 필사적인 것이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남겨두기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새벽부터 흐릿한 눈을 흔들어 깨웠다. 단어 하나만 건져도 좋았다. 꿈의 일부라도 소환해 낼 수 있다면, 그 단어가 모닥불처럼 다시 타오를 수 있다면…
꿈은 거의 흑백인 편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인간의 시각적인 한계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그렇다. 그런데 어느 날은 7가지 색상으로 꿈이 펼쳐질 때도 있다. 아주 드문 현상이다. 게다가 꿈이 리듬처럼 파도를 치거나, 화음으로 해석될 때도 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그날의 꿈은 너무나 선명한 그림을 그렸다. 역시 그 장면엔 멜로디도 담겼다.
‘사랑해요. 떠나버린 그대를’
‘사랑해요 회색빛 하늘 아래”
두 소절이 잔상일 뿐이긴 했지만 명백하게 보이고 들렸다. 나도 모르게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사랑’과 ‘그립다’, 명사와 형용사를 주절거렸다. 그리고 오후쯤 되어서 그러니까 감정이 조금 진정되었을 때, 2미터쯤에서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관조하며 글을 써보기로 작정했다. 음악에 가려져서 가사에 숨어서 글을 쓰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사랑, 이라는 단어는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어쩌면 인생을 모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현재보다 과거에 집착하는 편이다. 미완성된 일들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꿈처럼, 그리고 뜬금없이 떠오르는 어떤 기억들을 데리고 오며.
사랑은 떠나간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사랑은 하염없이 잊히는 존재가 된다. 사랑은 알람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은희, 이정란의 가사처럼 ‘사랑해요’라고 노래라도 불러보는 것이다. 떠나버린 회상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잊지 않으려고.
노래를 혼자 흥얼거리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사대로 나는 회색빛 하늘 아래 서 있었다. 아니,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칭하는 게 더 옮겠다. 아무튼 보이지 않아도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도 물론 당신과 나는 맑은 하늘을 찾아볼 줄 안다. 넓고 환한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화음 섞인 꿈일지라도.
물론 잊힌 것들은 유행과는 동떨어져 있다. 왠지 촌스럽고 구식인 편이다. 하지만 그런 옛것들은 여전히 나에게 속한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부인하는 대신 정이 깊이 들었다는 말을 대신 내민다. 앞으로 찾아올 사랑하는 것들도 계속 구식이 되어 갈 테니까.
회색빛 하늘 밑에서 걸었다. 질문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만 한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들리지 않게, 속삭이듯 세상의 소리들에게 화음을 섞으며 말이다. 오늘의 멜로디 역시 유통기한이 꽤 짧을 것이다. 혹시 잊어버릴 듯하면 다시 그 사람이 꿈에 찾아올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