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가 글감이 되는 과정
메모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메모는 기억력을 보좌한다. 뇌 속 어딘가에는 우리가 한 번 보고 듣고 읽은 것이 기억력 혹은 감각적인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지만 선택적으로 그것을 찾아낼 도리는 거의 없다. 그것을 밝혀낸다면 뇌과학의 신기원을 이루게 될지도. (최면 요법 같은 것은 차치하자)
하지만 찾아내지도 못할 기억력을 헤집는 것보다는 차라리 뇌를 대신할 거처를 마련해두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그 역할을 메모가 맡는다면?
메모는 그런 면에서 꽤 이성적이다. 기억력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그 기억력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판단해야 될 모든 선택들의 객관적인 기초가 된다는 측면에서 메모는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수단이 된다. 그러나 메모는 동시에 감성적이기도 하다. 기록이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기록을 어떤 차원으로 활용하느냐, 혹은 어떤 해석을 내어놓느냐, 또한 그 기록의 집대성에서 개인이 어떤 의견을 창조해 내고 어떤 가설을 세우며, 만약 작가라고 한다면 어떤 설득력을 갖춘 문장을 생산해낼 것이냐는 측면에서 메모는 감성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생산적인 과정, 창조 혹은 창의성이라 붙은 명제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라고 해석하고 싶다. 물론 이런 의견은 내가 최초로 낸 것이 아니다.(공심이 그런 이론을 최초로 만들어낼 리가 없다. 나는 그저 거성의 어깨 위에 잠시 올라탔을 뿐이다.) 이런 결론을 얻은 것은 창조성과 창의성에 관련된 책을 무수히 반복해서 읽은 결과다. 그렇다고 몇 백 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과장에 불과하지만.
특히 글쓰기의 세계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다. 더군다나 독자에게 어떤 주장을 놓고 그 부분을 설득시킨다는 문제에는 더욱 감성의 역할이 부각이 되지 않는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봤자, 잠시 설득당한 것처럼 보일 뿐 결국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성, 그중에서도 감정의 사용 여부다.
그런데, 메모해두는 이성적인 습관이 어떻게 감성적인 측면을 보완해 주게 되는 걸까? 서로 따로 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렇게 섣불리 판단하는 사람은 메모의 세계를 진정하게 경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기계처럼 메모를 남겨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매일 반복해서 마셔대는 새벽 얼죽아파의 청량한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무엇이든 경험 없이는 내가 원하는 모델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메모는 이성적인 차원의 영역이다. 일단 기계적으로 기록하자. 메모의 힘은 축적된 데이터의 기반에서 출발한다. 나만의 개념과 해석을 만드는 것은 나중 일이다. 의심하지 말고 쌓아야 한다고 나는 얘기하고 싶다. 쌓는 과정에서 멍청한 인간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스스로 찾게 된다. 불편한 것과 개선할 부분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못 찾는다? 몇 년 넘도록 고집스럽게 메모를 해왔음에도 무엇이 불편한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시시콜콜한 숏튜브 영상이나 뒤적거리기로 하자. 시간 아주 잘 간다.
메모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이런 것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딱히 배워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자칫 잘못하면 주입식 교육 방식처럼 강요된 습관으로 자리를 잡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메모는 기억력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다. 무엇이든 기록만 하면 된다. 그래도 무엇을 메모할 것인가, 정리해 보자면…
1. 독서 밑줄 -> 구글킵이나 노션에 쌓아두기
2. 한 달에 천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 내기
3. 버스 뒷자리에 앉은 연인의 사랑의 소곤거림 옮겨놓기
4. 스타벅스에서 맥북을 두드리다, 옆자리에 앉은 녀석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침을 튀기며 떠들어댈 때, 그 감정을 기록하기
5. 아름다운 풍경에 넋이 나간 나머지 그 광경을 기록해 두고 싶을 때(카메라 소지 확인)
6. 낙서, 말 그대로 낙서. 그림이든 텍스트든 아무거나 쓰기. 스타벅스 냅킨 추천
7. 지루한 회의실에서 딴청 하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다이어리에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 양식 관찰하기
8. 매일 반복하고 싶은 습관의 실행 여부 기록하기
9. 우연히 해외 사이트에서 찾은 신박한 코딩 알고리즘 노션에 옮겨놓기
10. 생활의 지혜(한 달 만에 20kg 살 빼는 방법) 적어두기
11. 100명 정도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모임 아이디어 기록하기
12. 쇼핑몰 할인 정보(특히 100원 특가 같은) 메모해 두기
13.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글감 만들기
뭐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봤지만 메모의 끝은 사실상 없다. 내 머릿속을 대신하는 공간이 메모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메모의 세계는 138억 년이 넘은 우주의 역사만큼이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메모가 정말 여기서 끝일까? 지금까지의 메모가 1차원적이었다면, 시작은 지금부터다. 단순하게 쌓기만 하는 것은 1차원적이다. 두 번째 단계는 어떤 메모든 내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다. 내 생각, 내 의견, 내 아이디어를 추가하는 것이 2차원적인 메모다. 우리가 남기는 메모는 보통은 타인의 것이다. 타인의 소유물을 내 것으로 이전하려면 나만의 사유가 거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그 메모는 전혀 효능을 내지 못한다.
세 줄이든 단 한 줄이든 무조건 내 생각을 남겨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뭐랄까 기록에서 쓰기의 과정으로 넘어간다. 글쓰기의 전초전, 작가의 서막이 시작된다고 할까? 메모는 2차원 단계에서 1차원적인 메모들과 구별된다. 구별 방법은 여러분이 스스로 찾아라.
그다음 단계에서는 기존에 쌓아둔 2차원적인 메모들끼리 조합을 한다. 랜덤하게 혹은 내가 짝짓고 싶은 메모들끼리 서로 조합한다. 낯선 세계들끼리 충돌하며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발돋움하는 단계나 마찬가지다. 상상력과 관심의 세계의 보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단계다. 나는 이 조합 메모 단계를 3차원 메모라고 정의한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활약하는 세계.
이제 거의 다 왔다. 마지막 단계는 조합된 메모들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이미 당신은 1차원 메모(단순 메모) -> 2차원 메모(1차원 메모에 의견 남기기) -> 3차원 메모(2차원 메모들끼리 조합하기)를 거쳐왔다. 3차원 메모에는 뭔가 풍성한 것들이 담겼을 것이다. 마지막 4차원 메모 단계에서는 거기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 500자든 1,000자든 목표를 세워두고 달려가는 것이다. 글감이 없다고 투덜거리던 당신, 더 이상 글감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책을 내고 싶다며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당신, 콘텐츠에 대해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다.
1차원 메모 : 단순한 메모(독서 밑줄 같은)
2차원 메모 : 독서 밑줄에 내 의견 메모하기
3차원 메모 : 2차원 메모들끼리 조합하기
4차원 메모 : 3차원 메모를 통해서 작가 메모하기
결론은 이름하여 ‘4D 메모’라 지었다. 거짓말하지 않고 쓰다가 이름을 지었다. 스크린의 4D가 아니라 메모계의 4D다. 이런 것이 혁신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물론 이런 메모법은 내가 시작하지 않았다. 메모계의 대가라는 사람들이 만든 이론을 나 나름의 철학으로 재정립하고 다시 체계를 갖춘 것이다. 1차원 메모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4차원 메모는 아마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무엇이든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경험 없이는 절대 모르는 세계다.
저는 ‘메모로 시작하는 쉬운 글쓰기’(이하 메시글)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메시글’은 메모하는 습관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며 나아가 메모를 기초로 글 쓰는 사람으로 변신해가자는 취지로 만든 모임이기도 합니다.
3기까지는 다양한 메모법을 통해 글쓰기 기초를 다졌다면 4기부터는 조금 더 체계적인 메모법을 모임을 통해 경험하고자 합니다. 그것을 위해 위에서 정리한 4D 메모법이 적용된 노션 템플릿을 참여하는 분들에게 모두 제공하며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과 개념을 정리한 영상을 제공합니다.(지난달 기수분들에게 제공)
메시글은 아래와 같은 단계로 진행하게 됩니다.
1주 차 : 독서 메모
2주 차 : 감각 메모
3주 차 : 아무튼 메모
4주 차 : 더하기 메모(피벗 테이블 개념)
+알파 : 마구마구 쓰기(온라인 Zoom 낭독 모임)
1주 차 '독서 메모'는 여러분이 읽고 싶은 책을 1주일 동안 읽으며 메모한 밑줄을 인증합니다. 다만 밑줄 하나에는 반드시 여러분의 생각을 함께 남겨야 합니다. 2주 차 '감각 메모'는 오감(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으로 내가 체험한 하루 동안의 장면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 다섯 가지의 감각을 동원하여 메모합니다. 3주 차 '아무튼 메모'는 낙서하듯 아무생각이나 메모합니다. 4주 차 '더하기 메'모는 1주 차부터 3주 차까지 메모한 것들을 골라 조합해 봅니다. 낯선 세계를 창조해 봅니다.
그리고 +알파인 '마구마구 쓰기'는 4주 동안 익힌 메모의 감각을 기반으로 이제 쓰는 단계를 경험해 봅니다. 4주 차 일요일 저녁 7시에 Zoom으로 만나 주제를 실시간으로 정하고 그것으로 글을 써 봅니다.(약 20분 동안 집중!) 그리고 그 글을 서로 낭독하고 칭찬과 격려가 난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왕이면 4주 동안 내가 메모한 것들을 인용하며 글을 써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상 메시글 4기 홍보와 메모에 대한 저의 생각을 보여드렸습니다. 메모에서부터 시작해서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함께 하고 싶은 분들 아래 링크에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메모로 시작하는 쉬운 글쓰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쓰기 초보이신 분들 환영합니다.
https://forms.gle/MkKgbg4DWZKEcMYy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