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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03. 2022

죽음이 뭐 그런 거지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네이버에서 '드레스덴'을 검색하면 관광 정보가 제일 먼저 등장한다. 나에게 각인된 이미지도 네이버의 검색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지명을 단순하게 여행지와 연관짓는 것이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읽게 되면 '드레스덴'은 더 이상 관광 상품이 아닌 다른 이미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고정화된 틀이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곳의 개념은 수없이 많은 인명을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살상해간 역사의 부끄러운 흔적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니까.


드레스덴은 연합군이 폭격한 독일의 한 도시다. 그곳에서 25,000명이 넘는 사람이 폭격 때문에 사라졌다. 그들은 불타고 또 불탔으며 불은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네이팜탄? 혹은 소이탄의 폐해다. 죽고 싶다고 몸부림쳐도, 완전히 죽을 때까지는 절대 죽지 못하는 것이 그곳에서 폭탄을 맞은 사람들의 운명인 것이다.


주인공 빌리는 드레스덴 폭격 한가운데에서 포로로 존재했다. 그는 과거 도살장으로 쓰인 제5도살장이라는 곳에서 다른 포로들과 함께 구금된다. 비겁하고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처지, 모든 것이 결함일 뿐인 존재가 바로 빌리다. 그런 빌리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그보다 더 강인한 존재로 평가받은 동료 병사들은 대부분 아니러니한 죽음을 맡는다. 그 죽음에 대해선 소설을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나약함과 강인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운이 좋으면 살아 남고 운이 나쁘면 그냥 죽는 것이다.


빌리는 살아남았고 전쟁 후, 자신의 삶에 재빠르게 편입됐다. 그는 나름 용의주도한 인물이었고 그의 삶에서 성공한 인물이 된다.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이상한 능력이 생긴다.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이상하게 변한다. 드레스덴에서 생존한 초라하고 나약한 병사의 생존기가 아닌,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랜덤으로 넘나드는 방식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전쟁은 한 인간의 정신을 파괴한다. 폐허가 되어버린 드레스덴의 과거처럼 전쟁은 도시든 인간의 존엄성이든 그 무엇이든 무참하게 파괴시켜 버린다. 파괴 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도 도시도 과거로 남겨진다. 하지만 빌리는 시간 여행이라는 은총 혹은 저주를 받았다. 저주 덕분에 그는 어느 시점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을 회고한다. 그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장면을 상상한다. 나는 어떤 폭포를 감상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서 그 장면을 차분하게 조망한다. 폭포에는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적으로 볼 때,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이라는 과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전체로서 폭포의 움직임, 그 탄생과 소멸을 바라보는 전지적 입장이 된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차원을 벗어나서, 차원을 초월해서 어떤 움직임을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나는 한정된 자원을 모두 사용해서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말하자면 절대적인 능력을 얻은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빌리에게는 순간 그런 능력이 생겨버렸다. 외계인 덕분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의 인생에 누군가 개입을 해버린 것이다. 개입된 것의 의도는 무엇일까. 전쟁을 겪은 후, 찾아온 내상 후 스트레스에 불과할까. 그의 정신적 공황의 결과일까? 그가 전쟁 동안에 겪은 정신적 파괴가 시간 여행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또다시 그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것일까.


커트 보니것의 소설은 기묘하다. 기존의 개념을 뛰어넘고 인지하던 관념을 파괴시켜버린다. 하루키가 깊은 영향을 받은 작가라 한다.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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