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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30. 2022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레이 브래디버리 《시월의 저택》


《시월의 저택》은 SF의 거장 레이 브래디버리가 1946년에 쓴 연작 소설이다. 무려 55년 동안 집필을 했다고 하니 브래디버리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라고 정의해도 되겠다. 브래디버리의 작품엔 언제나 시적인 감수성, 언어적 풍요,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 인간 너머 별의 세상에서나 꿈꿀만한 아름다운 문장이 넘쳐흐른다. 특히 이번 《시월의 저택》은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핼러윈과 기괴함이라는 키워드의 조합을 통해 환상 속의 세계에서 가족을 재탄생시켰다. 


초반 무렵엔 읽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번역 탓이었는지, 시적인 문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피곤함(새벽 3시)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 소설은 핼러윈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4천 년이 넘게 살아가는 존재들을 상징했지만 절대 기괴하지 않다.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악몽과 같은 스타일은 아니라는 이야기.


《시월의 저택》은 4400년의 세월을 이야기하지만 4400년을 보여주진 않는다. 4400년은 시월의 저택 안에서 순간 존재할 뿐이다. 다만 4400년을 살아왔던 그들이 오래전에 죽었기 때문에, 9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죽음 덕분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감사하게 만든다. 삶은 역시 감격스럽다. 레이 브래디버리의 소설을 살아 있기 때문에 읽을 수 있고, 살아 있기 때문에 잠시나마 그 소설을 생각하고 글로 남길 수 있는 영광을 취득할 수 있지 않았는가?



책 속의 한 문장


석양은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꽃은 질 운명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들판을 뛰노는 개와 부엌에 웅크린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머지않아 떠날 이들이기 때문이다.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거울 속 환영 같은 존재일까요? 벽에 숨어 시간을 알리는 장례식 딱정벌레와 같은 존재일까요? 굴뚝을 따라 올라가는, 끔찍한 빨아들이는 소리가 우리의 숨결일까요? 구름이 달을 가릴 때 그 구름이 우리일까요? 빗방울이 가고일 석상의 입에 목소리를 부여할 때 그 언어 없는 소리가 우리일까요? 낮에는 잠들고 밤이면 떼 지어 하늘을 수놓는 그런 존재일까요? 가을의 나무가 셀 수 없이 많은 낙엽을 날릴 때 우리가 그런 미다스의 금가루가 되어, 바삭거리는 목소리로 허공을 가득 채우는 걸까요? 아, 대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죽은 이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 그대는 열정을 알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작은 목소리라고 적어라.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그는 천상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지옥에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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