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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31. 2022

특별한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동화책을 읽어요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



짧은 평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은 독일의 작가 ‘미하엘 엔데’가 쓴 동화집이다. 교보문고에서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시리즈 상, 1편이고 《마법의 수프》가 동화전집2로 소개된다. 하지만 출판사는 다르다. 미하엘 엔데는 한국에서 《모모》로 유명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에겐 결코 유명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단지 제목만 들었다고 해서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남아 있다. 재미있고, 통쾌하고, 감동적이고, 사람을 깨우치게 만드는 글이라니 어른이라도 잠시 동화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나는 미하엘 엔데를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를 통해 처음 접했다. 심지어 나는 그가 중남미 국적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나마 적어도 한 권은 읽었으니 미하엘 엔데를 안다고 밝혀도 괜찮을까? 미안하지만 턱도 없다. 한 권 가지고는 어디 독서모임에라도 가서 아는 체하다가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바보 취급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러니 계속 모른다고 고백하도록 하자. 


그런데 내 책장엔 왜 《모모》가 꽂혀 있고 리디북스 전자책 구매 목록엔 《모모》가 있는 걸까? 이 역시 모를 일이다. 나로서는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인격이 충동적으로 구매했을지도. 그 인격에게 감사장이라도 건네줘야 할 것 같다.


사전에서 검색해 보니 ‘동화’란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라고 한다. 맙소사! 나는 어린이가 아니다. 물론 가끔 어린이처럼 철부지 짓거리를 저지르고 다니기는 하지만, 외모로 볼 때 절대 아니다. 물론 철이 없다는 건 인정한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속 어딘가는 소년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 죽을 때까지 어린이의 마음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면, 그 소원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성역을 건드리는 짓이라도 되는 걸까?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에서 미하엘 엔데의 동화전집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미하엘 엔데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 나도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한다. 미하엘 엔데의 사진을 보니 골똘히 바라보니 수염이 풍성한 겨울 숲 같다.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어쩌면 저 누글누글한 털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나 한 가닥만 떼어주면 참 좋겠다고 소년처럼 어이없는 공상을 해본다.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에는 참으로 엉뚱하고 기가 막히며 기발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분명히 밝혀 두자면’이라는 작품부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나를 예상하지 못한 현실이 아닌 외딴 곳으로 인도한다. 아마도 그곳은 어른에게 허락된 공간은 아니다. 어른이지만 어린이처럼 살아가고픈 꿈이 미약하게 남아 있는 어른에겐 잠시나마 허락될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철이 들어버렸거나, 물질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자들은 절대 그의 공간에 출입할 자격이 없다.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은 349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약 150 분, 약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완독할 만한 분량이다. 나는 이 책을 출퇴근 지하철에서 약 100분, 사무실에서 코딩하다 지칠 때 20분씩 읽었다. 


책 속의 한 문장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더 어려운 것이지. 그것은 너희들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단다.


무능력자와 진실하지 못한 사람만이 자기가 진실로 필요치 않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거야.


"소원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비교적 잘 아는 사람들 중에 속하지만 밖에 있는 보통 세상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단다. 그들이 그것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냥 어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우리 집식구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젖먹이까지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한다. 급히 해야만 하는 일, 도저히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나마 책에서 눈을 떼는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급한 일이나,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일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가족은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굳이 책에서 눈을 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고 있던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가 빚어진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예를 들자면 할아버지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 한 손에는 파이프,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독서를 하는 중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 할아버지는 앞에 놓여 있는 작은 탁자 위의 재떨이에 대고 파이프를 두드린다. 분명히 밝혀 두자면 그것은 재떨이가 아니라 꽃병이다. 할아버지는 둔탁한 소리를 듣고는 기침약 먹는 걸 깜박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꽃병을 들어 그 안에 담긴 물을 다 마셔 버린다.


“흠, 흠! 오늘 커피는 아주 진하구먼. 차가운 게 좀 흠이야."


(...)


우리 집 식구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아기는 침대 위에 누워 있다. 당연히 아기도 책을 읽는다. 어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들기 가벼운 유아용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아기는 더 크고 무거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한 손에는 우유병을 쥐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밝혀 두자면 아기가 들고 있는 것은 우유병이 아니라 커다란 잉크병이다. 아기는 그것을 마시지는 않고, 가끔씩 잉크를 한두 방울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 그러면서도 아기는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큰 잉크 방울이 책갈피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소리로 엉엉 울며 이렇게 외친다. (우리 집 아기가 말을 유창하게 할 줄 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길 바란다.)


"누가 불 좀 켜 줘. 집 안이 너무 어둡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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