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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2. 2022

오늘도 작별하고 내일도 작별할 테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 알랭 레몽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고른 책이 소설이 아닌 경우가 더러 있고 에세이인 줄 알고 집었던 책이 에세이가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내 선택의 오류에 대해 나 스스로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인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정책적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책을 읽고 그 이야기 속에 지독하게 흡착되다 보면 나의 오래된 과오 따위는 금세 잊히기도 한다. 


선택과 그에 따라 얻어진 어떤 필연적인 의미 있는 결론, 책의 이로운 면이란 바로 이렇게 과오로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 바로 그랬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말하자면 오류가 만들어낸 작은 역사라고 봐도 될 것이다. 지난번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랬고 이번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도 그랬다. 질서정연한 공간에서의 의도하지 않은 방황이 나를 어딘가로 몰아가는 모양이다. 이 책을 1시간 45분 만에 완독하고 나서, 나는 짧은 글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물론 완독하고 잠시 머문 어떤 안도감이나 도취감 같은 것이 아닌, 그저 그 순간에 머물다 사라질 것이 분명한, 감정의 얼개 같은 것이었다. 나는 왜 하필이면,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이유는 물론 얄팍한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 책은 170페이지를 넘지 않으며 2001년도에 출간된 오래된 책이며 무려 김화영 작가가 번역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고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작은 감동을 받았다. 작가 김화영 역시 프랑스에 머물며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알랭 레몽의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한 손에 들만한 아주 가볍고 두께감이 없는 왜소한 책을 찾아 여기저기 서가를 헤매고 다니다, 이 책을 손에 든 것처럼 김화영 작가도 이 가벼운 책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인간의 간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쩌면 책 스스로가 인간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경험은 나뿐만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책은 왜소한 무게와는 다르게 결코 가볍다는 취급을 할 수 없다. 후반부에 이르러 감정이 급격하게 돌변하는 바람에, 김화영 작가처럼 나도 주체할 수 없는 어떤 감정 때문에 울음이 터질 뻔했지만, 그것은 역시 김화영 작가처럼 금세 수습됐다. 그래서 다행인 걸까? 그 울음이란 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채, 마치 사생아처럼 곧바로 수습될 수 있어서 다행이고, 내가 잠시나마 모자란 사람이 되지 않아서 다행인 걸까.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분명 소설적인 색채를 가졌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실제 한 인간, 어떤 가족을 지탱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진실을 기초로 하여 세워졌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이 책을 읽으며 이해한다. 


가족은 우연히 생성되지만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가족의 구성원은 언젠가 해체되고 각자의 삶, 분리된 곳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 중심엔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가장 강력한 곳은 그들이 거주했던 터전, 바로 집이다. 한 가족에게 있어서 집의 의미는 무엇이고 집을 구성하는 중심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족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버지가 아버지 같지 못해서, 어머니가 어머니 같지 못하다면 그 부모는 자식들에게 부모라고 볼 수 없을까. 부모 외에 형제와 자매는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할까. 관계란 대체 무엇인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표현이지만 신뢰 덕분에 표현은 생략되어도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만약 서툴러서, 표현에 에둘러서, 그래서 실컷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서, 그런 세월을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가족의 구성원이라면 이 책은 한없이, 끝도 없는 영원한 슬픔을, 한때나마 단란했던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게 하며, 그 추억 때문에 쓰러지기도 하는 약하디 약한 우리 안에서 바로 슬픔의 기억을 오래도록 자라나게 할 것이다. 마치 절대 지워지지 않는 인장처럼.




책 속의 문장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P.22


우리는 1952년 여름 어느 날 그곳에 도착했다. 이곳저곳이 찌그러진 형편없는 집은 벽지 덕분에 간신히 지탱하는 형국이었다. 그런 게 그 집에 우리들의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왕국이 될 참이었다. 세세연년 영원토록. 아멘. P.24


우리는 돈이 없었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누가 가난뱅이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P.59


우리는 계속 살아가기 위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어린 우리들의 행복 속에 들어앉아 꽁꽁 문을 닫아 걸었다. 우리들의 온갖 의식들, 놀이들, 그 마법의 세계 속에.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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