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6. 2022

그릇된 신념이 창조한 예고된 파국적 결말

플래너리 오코너


짧은 평(플래너리 오코너, 플래너리 오코너, 현대문학)


플래너리 오코너는 짧은 생을 살았다. 젊은 시절에 루프스를 진단받고도 12년을 넘게 살았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불멸의 단편을 남겼다.


2009년, 소설 부문 인터넷 조사에서 '최고 중의 최고'를 수상한 오코너의 단편집은 독자가 선물하는 깊은 사랑을 상징한다. 그 단편이 바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플래너리 오코너》다. 이 책은 자그마치 750 페이지에 육박한다. 23일에 읽기 시작했으니 거의 2주가 걸린 셈이다. 


총 31편의 단편이 등장하는 《플래너리 오코너》엔 온갖 형태의 모순적인 인간이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남북전쟁이 막을 내린 역사적 시기답게 단편엔 여러 명의 흑인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검둥이, 깜둥이, 흑인, 검은 남자로 불린다. 물론 이 단편의 주인공들은 흑인을 깜둥이라고 부르는 다수의 백인들이다. 


백인은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과오를 벗지 못하고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을 집어삼킨다. 그들은 파멸의 길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고 한치의 예외 없이 파멸 속으로 그대로 뛰어들고 만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은 그들이 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의 인격은 비인격적인 모순으로 굴절됐고 과거의 망령에 여전히 붙들려 있었으며 그릇된 믿음에 따라 왜곡된 형태로 행동한다. 하지만 행동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다. 어리석고 얼간이 같은 인간들의 말로는 그 시작과 결이 같을 수밖에 없다. 파국은 결국 파국으로 맺음 하는 것이다.


31편의 단편 중에서도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가 가장 돋보인다. 자신의 가족조차 돌보지 못하는 인간이 마치 거룩한 성자라도 된 듯이 타인의 허물을 수용하려 할 때 어떤 결말을 받게 되는지, 어떤 응징을 받게 될지 이 단편을 읽고 나서 우리는 잘 알게 된다.


어디서나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릇된 맹신이든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신념이건, 인간은 자기가 인식한 만큼의 세계를 자기만의 시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소위 오코너스럼다는 형용사를 만들어낸, 그의 단편에 등장하는 우스꽝스럽고 기이하고 과장스럽고 허무한 인격을 만나고 싶다면, 어쩌면 인간의 희극적인 면에서 가장 비극적인 면을 역설적으로 찾고 싶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다만 졸림을 거부하기 힘들겠지만…


� 책 속의 한 문장  

저는 무얼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생각만 하면 됩니다. 요즘 사람들 문제가 그겁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해요. 상식이 없죠. 왜 손님은 생각을 하지 않나요? 손님의 상식은 어디 갔나요?  


세상일이라는 게 워낙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데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자신이 늙었는지 젊은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부인의 얼굴은 부인이 잠들어서 미처 못 보는 사이에 시간이 두 배로 달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노션으로 만든 책식지수 페이지 보기


글쓰기와 독서를 주제로 소통하고 싶은 분은 아래 채팅방에 조인하세요~

https://open.kakao.com/o/gljGHKGd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작별하고 내일도 작별할 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