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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1

단편 소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제임스는 40년 넘도록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그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회가 없었고 기회를 낚지 못했을 뿐이라고 단정 지은 후, 그는 인연을 만들지 못한 존재하지 않는 타인을 탓하고 세상의 불특정 다수의 여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것을 낙으로 삼았다. 결국 어느 날 제임스는 그의 친구들에게 '난 결혼하지 않겠어! 여자를 거부할 거야, 결혼에 올인하는 인생들이 참으로 불쌍하지 않아?'라며 자신의 인생은 구원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자랑삼아 선언했다. 그리고 제임스는 정말로 일찍 결혼에 붙들려버린 친구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생은 뒤집기 한판이야'라며 코인에 뛰어들었다가 몽땅 돈을 털리는 바람에 은행 잔고마저 마치 가뭄 탓에 실체를 드러낸 강바닥 위의 동물뼈처럼 앙상해지고 만, 자신의 신세 말하자면 처량한 처지가 되고 나서도 자신이 보잘것없어서 여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여자들을 거부한 것이라고 거들먹거렸다는 사실이었다.


제임스는 바닥만 남은 초라한 잔고가 삶의 전부를 차지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었지만 어쨌든 그 이유가 그를 돈에 집착하는 인생으로 변신시켰었으므로 그는 앞으로 지독한 구두쇠로 영원히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이유가 그를 원룸에 숨어 사는 범죄자 처지로 낙인을 찍고 만 것이다.


한때는 꿈을 좇아서 낮에는 기획 및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고 밤에는 자신만의 이야기 세상을 꾸려나가며 나름 소설가의 세계를 동경해 본 시절도 있었지만, 출판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실업자가 된 후, 그 꿈은 수면 위에 잠시 정체를 드러냈다가 곧 가라앉아버릴 지경이었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간혹 일거리가 들어오면 짧은 글을 써주거나 편집 일거리를 받아서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었다. 물론 그런 외주 일거리만 가지고는 버텨나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편의점 같은 데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모양새 빠지는 일을 하는 것보다 돈은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그러니까 반으로 자르고 또 반으로 잘라서 쓰면 그만이라고 믿었다. 일주일을 만 원으로 버티는 짠돌이 전략을 몸소 실천하며 야밤에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공상에 빠져 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그런 따분한 소설을 블로그에 연재하는데 몰두했다. 하루키처럼 하루에 딱 3천 자만 쓰자고 결심하며…


만 원으로 일주일 버티기 전략을 몸소 실천하느라 불지옥 같은 여름밤에도 에어컨은 꿈도 못 꿀 터였다. 그런 지독하게 끔찍한 여름밤과의 사투가 이어지던 중, 그날은 여느 여름밤보다 더 농도 짙고 무르익은 끈적끈적한 뱀장어처럼 생긴 밤이 찾아왔더랬다. 낡은 선풍기가 날개에 붙은 먼지를 탈탈 털어가며 제임스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훈풍을 골고루 아주 친절하게 뿜어댔지만, 사우나 열 가마 속 같은 불더위는 그에게서 결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는 새벽 2시가 되도록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공기의 흐름이 그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으로 몰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방향은 결코 그가 의도한 것과는 상관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쪽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기묘한 형국처럼 제임스는 자꾸만 이상한 의식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예정된 스토리처럼 자신이 그곳으로 저절로 이동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사실 그는 10시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침대에 누운 터였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정오쯤 늦게 그러니까 거의 14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잠시 국민체조를 한 후, 다시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고, 두어 시간 후에 일어나 면도조차 하지 않은 부랑자 같은 얼굴로 늦은 아침을 라면 부스러기로 때우는 그로서는, 자신이 한심한 인생이 결코 아님을 그 형식적인 하루의 일과표로 증명할 태세였다. 그런데 대체 그 규칙적이고도 일정한 흐름을 누구에게 증명할 것인지, 도통 그 자신도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는 하루키가 만든 하루 일과표에 따라 자신을 끼워 맞춰놓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계획은 채 하루, 아니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계획을 망쳐놓은 주범은 바로 모기, 크기 0.5밀리미터도 되지 않는 지극히 왜소한 형체의 미물인 모기라는 한심한 생명체였던 것이다.


그는 그날도 모기에게 수차례 피부를 뜯기고 말았다. 세상에서 모기야말로 가장 잔인한 생명체라는 생각과 함께, 환부를 긁어대며 서랍 속에서 곤충의 퇴치를 위한 장비를 몽땅 꺼내 들었다. 액체 모기향, 모기 살충제, 파리채, 구식 모기향, 모기장, 7 통장님이 두고 간 허연 가루약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수집해 놓은 도구들이 차례차례 튀어나왔다. 그는 거의 정신이 나간 나머지 방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공중에 살포제를 마구 분사했다. '죽어라 이놈! 이 식충이 같은 녀석아! 대체 어디에 숨어 있냐, 이 생명체라는 사실에 자존심도 없는 녀석아!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한심하게 만드는 불한당 같은 녀석아!'라고 소리치며 뛰어다니며 말이다. 우스운 것은 그가 외치는 소리는 그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서 속절없이 그의 귓속에서 사라질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말하자면 모기의 꼬리 쪼가리 하나 획득하지 못하고 그의 열정적인 분투는 끝나고 말았는데, 매일 밤마다 비슷한 행사를 맞닥뜨리면서도 그는 자신이 어쩌면 모기만도 못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모기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가 불을 끄고 좁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공기 중에서 불길한 소음 같은 게 들려왔다. ‘윙~, 위이잉~’ 귀에는 익었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 그런 기분 나쁜 맹렬한 소음이 그의 눈알 위에서 돌고 돌고 또 돌아가며 회오리를 계속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참을 수 없는 끔찍하게 높은 주파수가 그 앞에서 춤을 추면 그는 모기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기분이 들어, 바로 눈을 번개처럼 번쩍 뜨고 불을 켰다. 그리고 눈에 수천 개의 빔을 달아놓은 것처럼 모기를 찾아 어둠 속을 방황했다. 침대 위, 옆 벽, 윗벽, 책상, 책장 위를 한꺼번에 스캔해가며 파리채를 이리저리 휘저어봤지만 먼지만 일어날 뿐, 모기 한 마리조차 볼 수 없었다. 심지어 모기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그래 모기는 실존하지 않아, 모기는 내 정신 속에서만 거주한다고, 나는 지금 모기가 내 방안에 있다고 믿고 싶은 거야. 그렇지만 모기는 실제로 여기에 없어. 애초에 모기라는 존재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어. 네 상상 속에서만 살아간다고. 믿으면 믿음대로 세상이 나에게 길을 훤하게 비춰준다고. 그러니까 모기는 없어. 있다고 믿고 싶은 네가 모기를 증거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야. 너는 모기가 존재함으로써 너의 외로움이 덜어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모기와 함께 함으로써 너의 삶이 조금 더 치열하고 떠들썩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더는 믿지 마, 무용한 짓이야. 모기에게 기대지 마. 너 자신에게 기대. 모기는 없어. 지금부터 없는 거야. 알았지?' 하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눈만 감으면 모기는 특유의 비행음을 냈다. 마치 폭격기가 자신의 얼굴을 선회하는 것처럼, 정말로 모기는 그의 얼굴 위로만 자꾸만 경고도 없이 침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사투를 벌일 때마다 3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고 불을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워도 절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을 눈을 뜬 채로 흘려보내고 낡은 선풍기가 자신의 책무에 열성을 다하며 바람을 보내줘도 오히려 제임스는 온몸으로 땀을 배출하고 어떤 존재를 사냥하려고 숨을 참고 기다릴 뿐이었다. 그는 땀구멍 그 자체가 되어 땀구멍 속에서 찌든 검은색의 물기를 배출하고 다시 선풍기가 선물해 주는 낡은 공기 분자들을 안쪽으로 흡수 해대며 잠들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저주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서 마음이 안정될 무렵이면 불청객 같은 모기 신사인지, 숙녀인지가 귀속을 친절하게 노크하며 또다시 고주파를 배달했다. 마치 긴급한 전보를 전송하는 배달부처럼 어김없이 소음은 작은방에 한가득으로 찾아왔다.


불을 켜고 온 방안을 수색하고 땀에 지쳐 다시 침대에 주저앉고 그런 아무런 소득도 없는 짓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패턴이 서너 번쯤 반복되면 순백색의 새벽이 찾아오고 제풀에 지친 제임스는 될 대로 되라고 공중에 짜증을 내비친 후, 그대로 누워버렸다. 아침이 되면 그의 얼굴과 온몸에는 모기가 뜯어버린 빨간 자국투성이가 되고 말았지만.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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