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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아하는 게 없다고. 제발 그런 걸 나에게 묻지 마

단편 소설

맑은 비가 천천히 소박하게 내리는 분주한 오후쯤이었다. 순수함과는 오랫동안 높은 담을 쌓고 살던 노인은 오래간만에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그가 돌연한 외출에 나서기 전, 낮은 침대에 누워 창밖의 하늘을 넌지시 그러나 시선 없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사브작, 부스럭, 마치 마른 나뭇잎을 밟는 자그마한 어린아이의 노란색 장화가 그의 눈에 비치는 듯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었다. 노인은 눈을 무겁게 감고 있고 눈썹은 검게 시야를 덮고 있고 창밖엔 아침부터 부산스러운 눈물방울처럼 생긴 빗방울이 소슬 소슬 창문에서 굴러 떨어지고 있고 바깥은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노인은 믿고 싶었다. 굳게 닫힌 창문만큼이나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이야 어쩔 도리가 없더라도, 그렇다고 들리지도 않을 소리를 억지로 지어낼 일은 없지 않은가? 분명 마른 나뭇잎에서 새어 나오는 옅은 비명을 노인은 즐겁게 그리고 침착하게 누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소리는 그의 마음속에서부터 울려오는 걸지도 모를 노릇이었지만, 자신의 소신을 한사코 부인하고 싶지 않았달까.


부슬부슬, 그것은 짙은 구름들이 자신들의 몸을 겨우겨우 짜내서 생산해내는, 말하자면 인간들의 상상의 범주로 본다면 하늘에서 사는 난쟁이들의 슬픔 같은 것들이라고 가정해두자. 하지만 노인은 그런 범주의 슬픔의 가치와 슬픔이 파생시키는 또 다른 감정을 나열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노인에게 사치에 불과했다. 또한 딱히 그런 감정을 느긋하게 앉아서 편안하게 느낀다는 게 자체가 거짓이 난무하는 연극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 거짓이야. 그런 소리가 들려올 리가 없잖아.”


노인은 70년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모든 것이 왜곡된 채로 걸러져서 다시 그의 세계에서는 나름의 체계로 재해석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노인은 좋아하는 것이 70 평생에 단 한 가지도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모든 것을 부정했고 모든 것을 혐오했다. 그래서 노인은 과거에 취미로 생명을 몰살시킨 기억이 있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심지어는 그가 간혹 취미로 구매하는 쇼핑몰의 물건이든 노인은 그것을 활용하면서도 애써 모든 것을 무시했고 얼마간 사용하다가도 이내 싫증을 느끼고 말았다. 노인에게 있어서 노인 외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의 구성원들은 그저 잠시 노인을 스쳐 지나가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런 노인에게 감동을 요구한다거나 그것에서 만족을 느낀다는 건 거의 어불성설이었고 어쩌면 잠시나마 좋아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망상에 빠져있다가도 금방 제풀에 지치고 말아서, 모든 게 자신에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였으니 어찌 노인의 선호를 책망할 수 있으랴.


그렇다. 그는 독거노인이었다. 세상에 둘은 절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고집불통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혼자 태어났고 혼자서 자라났다. 노인은 처음부터 지독한 독신만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노인의 주변에는 사람은커녕, 그 흔한 강아지 한 마리, 어쩌면 모기까지 그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인은 습관적으로 이렇게 떠들었다.


“난 좋아하는 게 없다고. 제발 그런 걸 나에게 묻지 마. 어차피 물어도 난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 난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아니, 좋아하는 게 좀 없으면 어때? 왜 그런 걸 집요하게 묻는 거야. 없다고! 없으니 그걸 묻기 위해서 카메라를 우리 집에 들이대지도 말고, 대문에 고개를 불쑥 들이밀지도 말라고!”


노인은 세상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자신은 좋아하는 게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은 신도 믿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고, 지금도 달아나는 중이며 그냥 대충 살다가 운명을 맞이하고 말 거라고. 그러니 자신을 제발 괴롭히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어쩌면 노인은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나서 좀머 아저씨를 흉내 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지만 누구나 멋지게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향이 있지 않은가? 그런 모습 따위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고 가정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나나, 혹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나 단순하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전부일지도.


노인은 독거노인처럼 혼자 독방에서 거주한다. 노인은 10평 내외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주로 레토르트 음식을 먹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찬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한 끼를 때우는 형편이다. 그런 생활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극도로 혐오한다고 볼 수 있겠다. 때로 되는대로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지폐 몇 장을 꺼내 사과나 배를 사다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 것은 집 앞 100미터쯤에 위치한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그가 가장 싫어하면서도 자주 방문하는 장소였달까. 이것저것 고르기 싫어하는 그에게 편의점은 혐오의 공간이긴 했지만 편의상 가장 가깝다는 위치 때문에 노인은 그곳을 거부할 수 없었다.


노인은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없다. 밥 한 톨 없이 하루를 지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런 상상을 했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상상했다는 거 자체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좋아하는 것이라니, 그의 굳은 신념으로 봤을 때 절대 그쪽은 넘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70 평생 동안 자신만의 사상을 굳세게 지켜오며 나름의 삶의 방식을 고수해온 노인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평범한 바깥세상이 갑자기 궁금해졌던 것이다. 몇 시간 전 노인이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바쁜 움직임을 보고 그 속에서 세상이 속살대는 낮은 속삭임을 들었다면, 그 소리인지, 아니면 그의 내면의 어떤 부분이 고장을 일으킨 것인지 대체로 알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기묘하게도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노인은 바깥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생존을 위해 편의점이나 식당에 가던 노인의 습관과는 전혀 동떨어진 노인의 야릇한 결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노인은 청바지를 입고 하얀 양말과 등산화를 신고 -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가는 그가 왜 등산화를 신는지 이해할 수 없다. - 얇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검은색의 모자를 눌러쓴 다음 야행하듯이 노인의 10평짜리 허술한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슬금슬금, 숨을 참을 수도 없으면서도 거친 호흡을 하며 다소 수상한 표정으로 공원을 향했다. 공원 표지판엔 벌겋게 탈색된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죽은 날짐승처의 시체처럼 걸쳐 있었는데, 그 위에 새겨진 글자들도 물방울들 때문인지 뒤로 물러선 듯 부끄러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서부터 높다란 정상 부근까지 널빤지로 만든 계단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노인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는지 한 발을 떼면 나머지 발을 내밀 때까지 꽤 심사숙고하는 눈치였다. 노인은 무언가에 깊이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지만, 귀가 어두운 탓인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 노인의 귀는 이미 오래전에 보청기를 써야 할 정도로 까만 밤처럼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따라서 노인이 몇 시간 전에 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러니까 어린아이의 장화가 밟고 지나가던 풀 죽은 나뭇잎 소리, 번들번들 거리는 가을 낙엽에서 발산하는 색채가 배재된 울림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거였다. 하지만, 노인은 그 소리란 걸,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그 소리란 걸 몸으로 대신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갈빗장처럼 두께라고 볼 수도 없는 가벼운 그의 몸뚱이를 이끌고 오후의 공원, 하염없는 빗방울의 파티 속으로 난입한 것이었다.


노인은 태연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발을 조금 높은 곳으로 내딛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머지 발을 정지한 발 옆에 갖다 대었다. 숨을 그러모아 크게 날숨을 보내고 눈을 뜨려던 의지를 단념한 채, 다시 다음 계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 곳으로 발목을 올렸다. 그런 동작이 몇 번 지속적으로 어쩌면 무한으로 계속됐다. 노인은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면서, 무한대란 얼마나 높은 범위이며 인간의 능력으로 계산할 수 있는가 상상했다. 그리고 우산도 없이 혼자서 허전하게 공원을 걷고 있는 자신이 다소 이상하게 비칠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자세를 고집했다. 비는 꾸준하게 검은 구름 사이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점차 빗줄기가 거세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였을까, 노인의 힘없는 바람막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처럼 방어수단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했다. 노인의 허술한 상반신이 초라한 자신의 아파트처럼 빗속에서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의 마음 바깥에서도 마음 안쪽에서도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이 쓸데없는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건지, 세상도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존재도 모두 혐오스러웠다. 그렇다고 이 계단 밑으로 굴러버려서 목숨을 가볍게 버리는 짓거리도 그에겐 불가능했다. 그런 행동을 펼칠만한 자신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오르면서 노인은 존재하지도 않을 그런 순수하고 해맑고 영롱한 어린아이의 흔적을 찾는 것이 소용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 노인은 산 중턱에 위치한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 위에 기다랗게 누웠다. 벤치에 누워도 끝에 그의 발은 닿지 않았다. 등산화를 신은 노인의 발이 불쌍하게 나풀거렸다.


정면으로 누워서 노인은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이 잿빛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중이었다. 노인은 흐르는 것도 싫었고 이렇게 의미 없이 누워서 구름을 바라본다는 설정 자체도 싫었다. 저런 모습을 세상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걸까? 아름다음과 좋아한다는 말에는 어떤 거리가 존재할까? 오늘처럼 어두운 아름다움도 누군가에겐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모두 싫어하는 부류로 설정해버리는 자신은 무슨 저주를 받아서 그리 살아야 하는 것인지 노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돌출 행동을 통해서 돌연 자신의 안전한 거주지에서 벗어나 외출을 나선 행위 자체가, 어떤 불길한 미래를 상징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미미하게 시작된 씨앗들을 밟아버려서 애초에 그것이 자라날 가망성을 지워버리는 게 노인에게 주어진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심하게 하늘에선 빗방울이 불규칙적으로 떨어졌다. 노인이 참전했던 베트남의 하늘에서 구경했던 네이팜탄처럼 맑은 가루들이 쏟아져내리는 것 같다고 상상했다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에 해당될까. 몇 시간이 흐른 걸까. 몸이 급속도로 얼어붙는 도중에도 거부할 수 없는 뜨끈한 무력감과 미지근한 권태가 동시에 밀려왔다. 덩달아 졸음도 그를 에워쌓았다. 눈을 감고 사뿐히 밟아대는 나직한 나뭇잎의 말라버린 신음을 상상하고 그 위에서 뛰노는 어린아이의 노란 장화를 생각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던 네이팜탄의 자비로운 하얀 풍경을 생각했다. 그러다 노인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아마도 노인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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