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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2

단편 소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모기 1 편은 여기에서


제임스는 그날 기괴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는 길을 잃고 어딘가에서 어느 지점으로 숨을 헐떡거려가며 뜀박질 중이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어떤 존재에게 쫓기고 있다는 게 더 적확했다. 그래, 그는 태생이 도망자 출신이었는데,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왜 도망쳐야 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끝도 없는 도주를 시도하고 있다는 게 그 꿈의 주요 골자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작가로서 제임스의 꿈을 어떻게 실감 나게 묘사할 것인가, 꽤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제임스가 나에게 들려준 몇 가지 단서는 구미가 당길만한, 그러니까 서점 매대에서 바로 집어 들만한 그런 흥미요소나 짜임새 있는 형식을 갖춘 이야기 같아 보였지만,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독자에게 소설적인 구조를 갖춘 극적인 이야기로 비칠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임스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제임스는 말 재주도 없고, 그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특징적인 장면만 무분별하게 부각시키는, 말하자면 편집되지 않은 날 것의 상태로 터져 나오는 대로 지껄일 뿐이었다. 그의 감정이 심각하게 한쪽으로 격앙되어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나로서는 긴장감 따위는 하나도 조형되지 않고 오히려 헛웃음만 치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가 이야기를 더 사실적으로 아니 실제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는 어떤 모험이나 가공의 공포물 따위를 듣는 걸 기대했으나, 그가 들려준 짧은 5분 내의 이야기만으로는 도저히 소설적인 구조를 갖추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거기에 더하여 나의 소설가 다운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독자가 재미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만한 그런 흥미점을 찾아내, 그 부분을 최대한 돋보이도록 각색 내지는 윤색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이야기를 노트에 휘갈겨 놓고 다시, 기록해 놓은 것을 원고지에 옮겨놓는 작업을 반복하며 몇 가지의 추가적인 아이디어와 발상을 대입해놓곤 그 부분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진중한 의견을 그에게 청취하고 싶었으나, 제임스는 그때마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혹시 소설가님은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거예요?’라고 불성실한 맞장구만 치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제안하거나, 내가 상상한 부분이 꿈과 거의 맞아떨어졌다고 엄지를 내 얼굴에 쑥 내밀 뿐이었다. 미심쩍었지만 내가 그의 장광설을 듣고서 몇 가지의 살을 덧붙여 재구성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편의상 1인칭 시점의 대화체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기로 한다. 화자는 바로 제임스 그 자신이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중이었어요. 아니, 도망치고 있었다니까요. 왜 도망치는지 이해는 못 하겠는데, 어쨌든 짜증 나게 줄행랑을 쳐야 했던 겁니다. 꼬리야 날 살려,라고 말이죠. 이유가 뭐 중요한 가요? 도망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요. 옆에는 누군가 있었어요. 진흙탕에 빠진 개처럼 질척거렸죠. 그런데 제대로 따라오질 못해서 계속 걸음이 처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그 사람, 아마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성별이 뭐 중요한 가요? 누군가 존재했다는 거 자체에 의미가 담겨 있지요. 소설가님은 그런 걸 좀 읽어보세요. 아무튼 열심히 최대한 거의 숨이 멎을 때까지 뭐 빠져라 달아났습니다.


그러다 마호가니로 만든,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문 앞에 당도했어요. 말 그대로 딱딱하고도 철벽처럼 생긴 문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없는 그런 흔하디흔한 것과 전혀 상관없는, 닳아빠지게 생기지 않은 그런 몹쓸 물건이었지요. 그 문 앞에서 고민이라도 하겠습니까? 뭘 기대하십니까? 명상이라도 하라고요? 거기서 이야기가 딱 멈춰버릴 소망이라도 하셨던가요? 저는 고민하지 않고 손잡이를 비틀었습니다. 새벽에 닭 모가지를 팍 꺾어버리는 습성대로 말입지요. 꽉 쥐고 세게 흔든다. 옆으로! 그랬더니 문이 바로 열렸습니다. 안으로 힘차게 그리고 당차게 뛰어들었지요. 옆 사람의 손을 붙드는 것도 잊지 않고요. 덮어놓고 안쪽으로 허락도 받지 않고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랬더니 화장실이데요? 아니, 세상에 골목길 중간쯤에서 문이 하나 하늘에서 뚝 떨어졌고 그 문을 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문을 열어젖혔더니 화장실 가운데에 떡 하니 서 있던 거예요. 회백색의 변기가 하나 외롭게 놓여 있고 바닥엔 욕조도 없었지요. 화장실로서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어요. 변변치 못한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어요. 영락없이 이제 붙들리겠구나, 여기서 내 운명이 다한 게야,라고 절망하며 주저앉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옆엔 여자가 절 믿고 간절하게 다리 한쪽을 붙잡고 늘어져 있었고 저는 그 여자를 건사해야 할 가증스러운 운명을 맞았으니까요. 용기를 갖자, 희망을 갖자, 그래 다시 힘을 내자,라고 어딘가 구멍이라도 솟아날 게 아니냐,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그런 것 따위는 구분할 명석한 두뇌는 갖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달아날 구석이 분명, 탈출구는 어디에도 있다는 가정을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거짓말처럼 문이 하나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역시 신에게 기도를 올리면 때론 저의 간곡한 마음을 헤아려주나 봅니다. 변기가 무너져도 적어도 구멍은 하나 있다, 이런 격언, 말도 안 되는 명언을 토해내고 저는 또 다른 문 앞으로 질주했습니다. 빨리 따라오라고! 여자에게 큰 소리를 치면서 말입니다. 친절하라고요? 다정하라고요? 아니 지금 도망치는 마당에 그런 거 하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겠습니까? 소설가 양반, 저는 그렇게 얌전한 샌님처럼 책상다리로 편하게 앉아서 누군가를 살뜰하게 챙겨줄 처지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문을 다시 열었지요. 근데 그 속에 뭐가 튀어나왔는지 아십니까? 맙소사 그걸 대체 어떻게 묘사한답니다? 문을 여니까 또 다른 화장실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냄새나는 지독하게 더러운 그런 공중 화장실, 아니 변소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게 떡하니 튀어나오던 거란 말입니다. 그래도 망설일 게 있겠습니까? 바닥이고 벽이고 똥 천지였지만 거기가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게 저란 인간의 몹쓸 운명이었으니, 저는 거칠게 여자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그랬더니 그게 전부가 아닙디다? 막다른 길에도 희망은 존재하나 봅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끝에 또 문이 보이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화장실이 나오는, 그런 반복, 아니 영원히 탈출이 불가능한 형벌을 저는 받고 만 겁니다. 도대체 몇 번을 화장실이 제 영혼을 쪼아먹는 그 짓거리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수십만 번쯤, 꿈을 꿀 때마다 그런 장면이 반복됐으니까 더하면 우주의 역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반복했을지도 모릅니다. 빌어먹을 영원회귀! 니체!


그런데 천만다행인 것은 문을 여는 어느 순간, 시간의 거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게 마지막이었단 말입니다. 저는 일단 화장실의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순간 도망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죠.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저는 앞으로 달렸습니다. 뒤는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앗, 어느 순간 여자가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말았지요. 그래요, 저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무책임하게 사람을 버렸다며 저를 원망한다면 저는 그것을 달게 받겠습니다. 암요, 제가 죄인이지요.


그리하여 저는 화장실의 순환구조에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계속 의무적으로 뛰어야 했습니다. 열심히 골목길을 달렸지요. 벽을 넘고 골목과 골목 사이를 누볐습니다. 저는 신나게 육상 선수가 된 것처럼, 혹은 장애물 넘기 선수가 된 것처럼 거침없이 무엇이든 뛰어넘었습니다. 거의 신났지요. 저는 굉장히 고양되어서 이제 거의 하늘을 날 지경이 됐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5층에서 6층 정도 되는 건물의 옥상에 올라간 저는 그런 건물들을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뛰기 선수와 장애물 넘기 선수가 혼합이 된 것이지요. 유전자의 조합, 유기물의 새로운 탄생이었습니다. 새로운 능력이 실시간으로 저에게 배달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훌쩍 건물을 신통방통하게 뛰어넘었습니다. 나중에 재미가 들더군요. 넘는 재미, 성공하는 재미 아십니까? 그렇게 몇 개의 건물을 뛰어넘게 되니까, 이제 저를 추격하는 놈을 완벽하게 따돌렸구나,라고 안도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아래쪽으로 이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근데 저는 어디로 가고 있었습니까?


저는 옥상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고민할 것도 없이 내려갔습니다. 이제 결론을 맞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5층에서 4층으로, 4층에서 다시 3층으로, 여러 번의 층계참을 거쳐서 저는 1층에 당도했습니다. 그런데 1층에 다다랐더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아십니까? 세상에 다시 저는 5층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1층 다음에 5층이 나오는 일이 벌어집니까? 저는 어리석게도 그 세계가 꿈이란 걸 인지하지 못했으니, 크나큰 변고가 일어났다는 사실밖에 몰랐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절망했습니다. 다시 4층으로 3층으로 그리고 1층에 당도하자 저는 다시 망연하게 5라는 숫자를 목격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화장실 지옥에 버금가는 계단 지옥, 더 처절한 수렁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뫼비우스의 띄에 갇히고 만 것이지요.


그런데 4층 층계참을 지나갈 때마다 기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층계참 옆벽은 유리 재질로 되어있었는데, 층계참에 도착할 때마다 어떤 여자가 층계참 앞에서 유리 벽 쪽을 노려보다가 벽으로 강하게 충격했던 것입니다. 저는 놀라웠지만 기묘하게도 내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이어 뫼비우스의 저주까지 떨어진 형국인데, 그깟 신변을 비관한 여자 하나쯤이 벽으로 투신하는 게 뭐 특별한 사건으로 여겨졌겠습니까? 네, 저는 아까 여자도 버리고 왔잖습니까? 그런데 그 여자는 투명 인간처럼 유리벽을 투과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하지만 그 광경을 외면했습니다. 거기에 관심을 가졌다간 그 여자가 저에게 뭔가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무서웠지만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몇 백 번, 몇천 번을 심장이 터져가라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는 다행스럽게도 1층에 당도했습니다. 아, 저주가 끝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배가 고파지더군요. 1층엔 식당이 한 곳 있었습니다. 주인이 없는 무인가게였습니다. 저는 갑자기 허기가 져서 귤 하나와 이온음료를 골라 몰래 먹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돈은 한 푼도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편지 한 장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내가 너무나 심각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영양분을 보충해야 한다고, 나중에 돈이 생기면 반드시 갚겠다는 서약을 하고 서명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안쪽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청객처럼요. 그분은 분명 그 가게의 주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분께 그동안 제가 겪은 기묘한 사건과 경험담을 수기처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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