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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31. 2023

독자와 작가의 관계

일간 공심 3월 마지막호 공개 발행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독자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독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글을 쓸 필요가 없겠죠. 만약, 제가 글쓰기를 멈추게 된다면, 그것은 단 한 명의 독자조차 남아있지 않은 시점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 뿐이네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진 시작을 경험했겠죠? 자기 멋에 취해서 블로그에 신나게 글을 쓰는 초보 시절도 존재하지만 그 시기를 우아하게 보낸 후, 냉정하게 자신의 처지를 판단하게 되면 사람들이 내 글에 관심이 없다는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순간을 맞으면, 글쓰기를 때려치울 것인가, 굴하지 않고 계속 쓸 것인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블로거의 90%가 글쓰기를 포기합니다.


이 고비를 넘긴 사람은 자기 글에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에고이스트가 될 수도 있겠어요. 저는 글 쓰는 사람은 에고이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만… 어쨌든 이제 다른 꿈을 꾸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독자를 만들고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 글을 충실하게 읽어주고 발행되기를 기다리고 읽고 나서는 소중한 피드백을 남겨줄 사람 말입니다. 어쩌면 독자는 팬으로 치환될 수도 있겠죠. 어떤 책에서는 '자기 팬을 천 명 만들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디 천 명 만드는 게 쉽나요? 백 명은커녕 열 명 만드는 것도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이런 소위 '현타'를 수없이 만나서 그 난관을 뚫고 나아가는 여정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런 바람을 가져봅니다.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지만 때론 몇몇 소수의 사람이라도 내 글을 정말로 기대하는 사람에게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적으로 글을 보여줄 게 아니라 정말로 원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려는 목적인 거죠. 그 이유 때문에 저는 용감하게 유료로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무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죠. 구독자는 무려 9천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그 9천 명이 전부 저의 순수한 독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브런치 유저는 애석하게도 현재 브런치에서 글을 읽지 않습니다. 여전히 브런치 작가가 되는 길은 등단으로 간주될 정도로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 험난한 세계에 편입되더라도 바로 절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 브런치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바로 글을 읽어줄 액티브 유저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현재 브런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최근에 유입된 브런치 작가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내 글을 읽게 만들려면 다른 작가의 글에 호응을 해줘야 하는 구조인 셈이죠. 인스타의 맞팔과 다를 게 없어요. 마치 블로그의 이웃 순회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까요? 그나마 남아 있던 일반 유저들도 브런치 플랫폼에 싫증을 느끼고 유튜브 같은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간 상태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서포터가 되어주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서글픈 현실이에요. 책을 읽는 인구가 점점 사라지듯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랫폼의 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그 안에서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독자는 찾아볼 수도 없게 됐어요. 글쓰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오직 그들에게만 즐거운 놀이라고 점점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 사람일까요?


어쩌면 글을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서 쓰는 이유는 독자를 바로 현장에서 만나려는 목적도 있지만, 독자의 범위를 조금 넓게 본다면 출판사로 전선을 확대할 수 있겠죠. 출판사는 작가를 등용하고 책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누구보다 작가를 인정하고 작가의 미래를 투자하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브런치의 효용 가치가 적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갖고 브런치에서 꾸준하게 글을 쓰는 겁니다.


그래요. 글쓰기는 타인의 인정을 받는 길입니다.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야 하죠.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서 글쓰기의 정체성도 달라질 겁니다. 저는 한 명의 작가에게는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믿어요. 삶이 시간에 따라 변해가듯 작가도 스타일이든 성향이든 취향이든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거든요. 과거에 어떤 글을 썼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작가가 현재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셈이죠. 작가가 변했어, 이 사람이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마치 변절자가 된 듯이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작가도 단지 생존하기 위해 이 냉혹한 시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펼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작가도 변해가고 독자도 같이 변해갑니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듯 영원한 독자도 존재하지 않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비교적 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글을 더 많은 독자들이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욕망과 만족의 사이라고 할까요? 욕망의 반대말을 쓰려는데, 충족, 만족, 내려놓기, 머묾, 현실 인정하기, 더 이상 바라지 않기 이런 말만 떠오릅니다. 하지만 작가는 끝없이 욕망하는 사람입니다. 독자의 사랑을, 성원을, 응원을, 격려를, 읽어주기를 욕망하죠. 그리고 여기서 멈춰 서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어딘가로 진보하기를 욕망하는 자입니다. 그 욕망이 에너지를 만들어서 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줬네요. 물론 여기가 어디인지 저도 알 수 없어요.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도 없습니다. 단지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아요. 그 이유가 저를 계속 쓰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글쓰기 과연 재밌을까요? 어쩌다 보니 글을 쓰게 됐는데 재밌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라이킷을 많이 받고 독자들이 호응을 해주면 즐거워져요. 피드백을 남겨주면 그걸로 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거죠. 작가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독자의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글이든 책이든 모든 건 독자의 반응 없이는 존재할 수 없죠.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건 제가 독자의 호기심이나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그것 때문에 실망하지는 않아요. 다만 독자가 원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매일 궁금할 따름입니다.


점점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게 힘들어집니다.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저는 제일 힘들어요. 일단 시작하면 뭔가 끄적거리긴 하는데, 결심이 실행력을 만들어주진 않네요. 뭔가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독자의 존재일까요? 그럴 지도요.


한 달 동안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연재를 마치면서 제가 생각하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생각해 봤어요. 4월은 다시 재충전의 시기를 갖고 5월부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감사했어요.


일간 공심 3월 마지막 편은 공개해봤어요. 4월은 한 달 쉬고 다시 5월부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구독 신청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하시면 됩니다. 기존 독자분들께 아량을 구합니다.


https://forms.gle/6wbQsGKqUpuiU1i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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