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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 센터

초단편 소설

열심히 근무…는 아니고 바둑을 두고 있는데, 여자 한 명이 문을 벌컥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벌건 대낮에 왕잠자리 같은 선글라스와 하얀색 마스크, 베이지색 스카프로 목을 미라처럼 칭칭 두르고 있었고 빳빳하게 굳은 청재킷 그리고 초록색 플란넬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맙소사! 세상에 한 여름날에 저런 조합이라니!’ 그녀는 선글라스 사이로 예리한 레이더를 쏘아대고 있었다.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 이런 황송한 손님이라니!


“혼내 줄 사람이 있어서요” 그녀가 다리를 꼬며 앉으며 말했다.


“그 목적이라면 번지수를 제대로 잡으셨군요!” 내가 들떴지만 감정을 최대한 다스린 채, 침착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고객의 니즈를 실현한답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그런 철학 따위는 궁금하지 않고요. 하여튼 간 그 인간들을 혼내주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라면 우리가 딱이죠” 내가 신뢰감이 감도는 어조로 대답했다.


"위층에 쥬만지 영화에 나오는 코끼리처럼 생긴 짐승들이 살아요. 그 놈들은 꼭 새벽 2시만 되면 광란의 파티를 시작한다니까요. 온 가족들이 단체로 금은방이라도 털 것처럼 집안 구석을 들쑤셔놓는다니까요. 아니면 집안 구석이 동물원으로 변신이라도 한 것인지, 쿵쿵거리고 다니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죠. 저는 밤에 일을 하는 사람인데,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글을 전혀 못 쓴다고요. 그 기분 알아요?” 그녀는 고작 심부름 센터 직원이 그런 사정을 이해하겠냐며 한심한 투로 나를 깔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층간 소음이로군요. 우리가 그런 분야라면 꽤 전문가 집단이 아닙니까? 도청부터 시작해서 법적 자료로 제출하기 위한 소음 데시벨 측정까지, 필요하다면 납치라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고놈들을 어떻게 혼 내드릴까요? 팔을 하나 잘라드릴까요? 아니면 정갱이를 부러뜨려서 불구로 만들어드릴까요? 아니면 곱게 살과 뼈를 분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자자, 요 가격표를 보시면서 말씀을 해 보시….” 내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누가 그런 거 바란댔어요? 무슨 소리야? 지금. 아주 별꼴이네, 아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사람한테 폭력을 써요? 게다가 팔을 잘라버린다니, 살을 발라버린다니, 무서워죽겠네? 심부름 센터에 오는 것도 쪽팔려 죽겠는데, 내 손에 피라도 뭍이라는 거예요? 이 아저씨 어디서 80년대 복수극 영화에 심취라도 하셨나 보네? 영화는 5천5백 원 주고 넷플릭스에서나 찾으시고요. 저는 그런 센 서비스는 원하지 않는다고요!” 그녀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러면 어떤 강력한 걸 제공해 드리는 게 고객분의 취향에 맞을까요?” 내가 마지못해 물었다.


“저는 아주 고급스러운 복수를 하고 싶어요.”


“사모님의 그 고급스러운 복수의 시나리오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건 말이에요. 우퍼를 사용하는 거예요”


“우퍼? 우퍼가 대체 뭔가요?" 그 여자의 얼굴을 녹여버릴 듯한 기세로 내가 물었다.


“이 아저씨 진짜 무식하시네. 스피커, 서브 우퍼 몰라요? 집에서 5.1 채널 영화 같은 것도 안 보시나 보네.”


“그거 모른다고 욕먹고 살지는 않았는데요?”


“아무튼 우퍼라는 게 있어요. 저음만 담당하는 스피커라고 보시면 되고요. 자세한 건 아저씨가 몰라도 되고, 아저씨는 오늘 배달될 우퍼를 천장에 매달아두는 걸 구경하시고 그다음 시나리오에 따라 행동만 하시면 돼요. 우퍼와 철제 프레임은 주문했으니까 오늘 도착할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설치 업자에게 맡기면 끝 아닌가요? 굳이 제가 나설 필요까지?”내가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잘 들어보세요. 아저씨. 그 위층의 짐승들은 새벽에만 활동한다고 했죠? 자, 철제 프레임에 초저역 우퍼를 담아 천장에 포설한 후, 극한의 우퍼 테스트 곡인 Never Ever Land의 Infected Mushroom을 틀었다고 가정해 봐요. 아저씨가 그 곡을 알 거라 기대도 안 하지만… 그게 천장을 때려 부수기 시작하면 그 짐승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아마 난리가 날 거라고요. 아래층으로 당장 뛰어내려와서 바깥으로 나와보라고 정갱이로 문을 차며 아주 난리를 칠 거 아니에요. 그럴 때 아저씨가 나타나서 그 놈들을 혼내주면 된다 이겁니다. 그렇다고 누굴 줘패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겁만 약간 주라는 겁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알겠죠? 우퍼 연결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저씨는 대기했다가 그 놈들이 까불면 혼만 내주면 된다고요. 폭력적인 수단은 절대 쓰면 안되고요”


“그 무식한 놈들이 칼이라도 휘두르면…” 이라고 말하려다가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 같아서 참았다.


그녀와 함께 나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1층 현관에 도착하자 오디오 업체에서 도착한 초저역 우퍼, 그러니까 120헤르츠 대의 낮은 저역을 담당하는 SVS 사의 PB-3000 우퍼가 서 있었다. 사모님과 나, 그리고 우퍼 박스를 질질 끌고 온 오디오 업체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에 사이좋게 섰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아니 지독이 운이 나쁘게도 점검 상태라는 메시지가 화면 가득히 떠 있었던 것이다.


사모님은 “걸어서 올라가죠?” 라고 말했고 나는 오디오 업체 직원을 잠시 쳐다보며 마지못해 좋다고 대답했다. 오디오 업체 직원은 약간 인상을 썼지만…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끝없이 마치 무한한 열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치되어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다시 3층으로 천천히 올랐다. 5층까지 오르니 땀이 송골송골 등 쪽에 맺혔고 7층 정도가 되자 숨이 가빠 왔다. 힐끔 뒤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 오디오 업체 직원은 거의 숨을 헐떡거리며 우퍼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때 사모라는 여자는 나에게 “짐을 좀 나눠 들어주시면 어때요?”라고 제안했고 나는 그것도 차지가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곧 우퍼 박스는 내 차지가 되었다. 초저역을 자랑하는 강력하고 거대한 우퍼.


나는 그걸 들고 10층쯤을 지났다. 무거운 탓인지 숫자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던 것이다. “저기 사모님 댁은 몇 층인가요?” 라고 묻자. 사모님이라는 여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5층까지 올라갔을 때, 설마 이 아파트의 최고층은 아닐 거라고,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부인하며 올라가는데, 그 사모님이 나지막하게 “255층이에요.”라고 아주 짧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흐릿한 고주파 음성을 분명히 들었다. 맙소사!


나와 오디오 업체 직원은 박스를 교대하며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30층 정도 지나가다, 순간 나는 울화통이 치밀어올라, 대체 이런 일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벌겠다고 비굴하게 아파트 계단이나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그 불쌍한 꼬락서니를 생각하니 나라는 인간이 여간 한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순간 욱해서 오른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아주 고가의 우퍼 박스를 난간 사이 계단 아래쪽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었으나, 천만 원이 넘는 가격의 무게를 생각하고 그 치밀어 오르는 욕망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묵묵히 255층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255층에 도착하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오디오 업체 직원은 전문가답게 우퍼를 천정에 예술적으로 설치했고 케이블을 리시버와 연결하더니 예의 그 유명한 Never Ever Land의 Infected Mushroom를 재생했다. 그 소리, 아니 그 진동을 넋을 잃고 가만히 체감하고 있는데 사모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아, 맞다! 식사하셔야죠! 어디 가서 저녁 식사라도 하고 오세요. 여기 봉투 챙겨가시고요. 그리고 엘리베이터 공사는 내일까지 이어진다네요~” 나더러 여기를 또 오르내리라니 이러는 건 정말 곤란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봉투를 열어보고 화들짝 놀라곤 우퍼 설치 기사 몰래 비상계단으로 재빠르게 뛰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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